2025년 2월 5일 수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도녀과하'(渡女過河)라는 선설(禪說)의 얘기가 있습니다. 탄산이라는 나이 든 스님이 젊은 스님과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강가에서 한 여인이 친정어머니가 아프다고 빨리 친정에 가야 하는데 강을 못 건너 동동거리고 서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탄산 스님이 “제가 건네 드리죠.”하고 그 젊은 여인을 번쩍 안아서 강을 건너 주게 되었고, 그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친정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한 세 시간쯤 계속 길을 걸어갔는데 젊은 스님이 말하기를 “우린 출가인(出家人)이라 여색을 가까이 할 수 없는데 왜 젊은 여인을 안아서 건네주었소?” 하면서 따졌습니다. 탄산 스님은 젊은 스님에게 “음 그 여인 말인가? 나는 오래 전에 내려 놨는데 넌 아직도 안고 있느냐?”하고 반문했답니다. 강을 건너 준 탄산 스님은 심중에 여색을 지니지 않은 채 담백하여 걸릴 것도 없는데 오히려 여색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몇 시간이나 쭉 안고 있었던 젊은 스님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잘 안다는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목수생활을 하던 2-3년 전의 모습만 생각하고 우리 모두의 영원한 스승이고 구세주이며, 그리스도이심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50여 년 전에 유행했던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용서하시며 죄를 묻지 않으셨고, 십자가에 달려서도 십자가 오른 쪽 도둑의 죄를 묻지 않으셨고, 또한 목수로 살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로 살고 있는 주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오십 년 백년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호흡지간(呼吸之間)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더 실감이 납니다. 지금의 예수님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어 지금도 우리와 같이 울고 웃으며 친구가 되어주고, 우리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매 순간 우리와 같이 호흡하며 현존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 분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고 인간적인 친밀감으로 더욱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언자는 존경받아야 마땅합니다. 그 당시에 존경 받는다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예언자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랬고, 엘리야도 그렇고, 모세도 그랬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사람에게서 존경과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나병환자를 고치고, 소경을 눈뜨게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수많은 기적과 진리의 가르침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으며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유행했다면 고향에서 아마 서로 예수님과 가깝다고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까지 데리고 고향에 가셨으니 당신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을지 모르고 고향사람들도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존경과 믿음을 기대 하셨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어느 누구도 예언자로 존경하지도 않았고 행한 기적조차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과거의 집착에 빠진 사람들의 절대적인 냉소와 냉대를 받지만 사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것입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 현재의 사실을 직시하고, 호흡지간의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기를 바라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어제 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새 술은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하고 헌 옷에 새 헝겊은 대고 꿰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현재에 없는 주님이 아니라 날마다 부활하시어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 사람들을 볼 때나 내 가족을 대할 때나, 사랑하는 자녀를 대할 때 우리의 눈을 새롭게 하야 성급한 판단으로 이웃을 함부로 대하고, 사람의 자격을 논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있는 그대로 이웃을 보며, 그 이웃을 통해서 더욱더 가까이 주님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고향에서 냉대를 받으신 주님!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한 사람들처럼 저희도 눈을 감지 않고 살게 하시어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당신을 뵙고 사랑을 느끼고 겸손하게 다가가게 하소서. 과거의 흔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없도록 진실의 눈으로 이웃을 보게 하여 주소서. 자비의 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