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답게 관광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지만 의외로 정보가 부족한 장소가 몇 개 있지요.
그래서 정보를 따로 모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역사, 기록에 관련된 장소는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전시관의 팜플렛에서 보는게 제일 좋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만 적혀있는, 사람들이 정말 잘 모르는 알짜배기 박물관이 있습니다.
알짜배기는 알짜 배기인데...
문제는 교통이 정말 안 좋다는 거죠.
제가 걸음걸이가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남들이 걸어서 20분이라고 적어놓으면 나이가 든 지금도 보통 3~7분이면 도착해요.
그런데 여긴 반대입니다.
우선 공식 홈페이지에는 부산 지하철 2호선 '못골'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12분이라고 하지만 이러면 제 걸음으로 27분 걸립니다. 실제 거리가 먼데다 오르막길 투성이라...
그러니 이곳에 오시려면 다음과 같은 플랜을 세우시는 걸 권합니다.
부산박물관 - UN평화공원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 유엔평화기념관 을 세트로 둘러보시길
못골역이 아니라 대화역에서 내려서 위 코스를 둘러보는 식으로 움직이시는게 제일 빠릅니다.
그냥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으로 바로 가셔도 못골역보다는 훨신 가깝습니다.
자... 이렇게 골탕을 먹어놨으니 제 기분은 어떨까요? 당연히 안 좋겠죠?
올라가는 계단이 은근히 분위기 있습니다??
와... 드디어 도착...했구나 싶은데 아닙니다. 27분이나 빠르게 걸어왔는데 한 층 높이를 더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이젠 끝이겠지??? 했더니 아 전시장은 3층~6층이네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2016년 국립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된 곳으로 부산 두 번째 국립박물관입니다.
...라서 사람들이 정~말 잘 모릅니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1939~1945년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전범국인 일본제국주의의 비인도적 강제동원 실태를 조사하고 기록한 자료들을 공개한 최초의 공간입니다. 상당수의 전시물들은 당시 피해자 및 희생자 여러분의 기증으로 이뤄졌습니다.
어쨌든 헐떡이면서 안에 들어가봤습니다만...
와~ 이거 뭐죠?
이 박물관 은근히 보물입니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이 박물관은 소장 자료도 좋습니다. 그런데 소장 자료만 좋은게 아니라 박물관의 구성 자체도 좋아요.
공간 디자인 자체가 <강제징용>이라는 아픈 역사를 전달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저 공간에 들어서서 음악과 <디지털 파사드>연출을 보니 저마저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느낌이 드네요.
일제가 만든 <국민노무수첩> 그 안에서 발견된 희생자, 피해자들의 사진들...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일제강점기때 일본군에 입대하기 위해 자원한 기록이 있죠. 하지만 그때 일본은 그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의 관점에서 <군역>이란 일왕의 은총을 입은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신성한 의무였죠. 그래서 무시하던 조선인들에게 그 자리를 넘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일본 본토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농사만 잘 지어줬으면 됐죠.
하지만 상황이 바뀝니다. 일본에서 터진 경제공황의 여파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만류를 무릅쓰고 청나라에 침공,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세우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꼭두각시 황제로 세우죠. 이렇게 일본은 공업화의 길, 군국주의의 길로 빠져듭니다.
하지만 이렇게되자 문제가 생깁니다. 일본 남성만으로는 병력수를 채울 수가 없는거에요. 장애가 있는 남자 + 빽 좋은 남자 제외하곤 죄다 전쟁터로 몰아넣으니 산업활동을 할 사람이 없는 거에요. 게다가 나중에는 미국과 전쟁을 개시하면서 그 병력마저 부족해집니다.
그러자 이제 허울좋은 명분이고 뭐고 없습니다. 닥치는대로, 강제로 끌어내는 거죠. 국민총동원령의 시작입니다.
조선의 젊은이들을 일제의 야욕을 위해 징집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무였습니다. 조선군 총사령관 이타가키가 직접 징병검사장에서 감독하는 사진도 있지요.
당시 전 세계가 노동연령을 높이고 어린이 교육에 힘쓰는 마당에 이 사람들은 지네 나라 사람 아니라고 어린 학생도 강제로 보내버렸습니다.
저 사진의 아이는 15세에 무려 홋카이도에 버려지는데, 홋카이도에서 일한 사람들은 나중에 소련이 남하할 때 일제에게 버려져서 갖은 고생을 하죠. 특히 사할린에 간 사람들이 최악이었습니다. 일본인을 철수시킬 때 정말 일본인만 싹 데려갔거든요. 조선인과 일본인 부부가 있음 일본인쪽과 그 아이만 데리고 가 버렸어요.
식민사관에 물든 사람들은 일제가 우리에게 많은 투자를 했다고 말합니다...만 그들이 부산에 항구를 짓고 철도를 놓은 건 전부 조선의 쌀을 일본에 실어나르기 위함이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굶어죽는 사람이 더 늘어났고 일본은 식량부족의 위기에서 벗어났죠.
그들에게 징용은 노동력이라는 <물품>을 <공출>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개개인의 사람으로 본 게 아니라 그야말로 물품으로만 본 것입니다.
이런 반동을 줄이기 위해 그들은 일본인과 조선인은 하날는 내선일체를 실시했습니다. 조선어를 말살하고 일왕에게 기도를 올리게 했죠. 하지만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정부에 불만이 쇄도하자 일본 정부는 이 불만에서 눈을 돌리게 하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루머를 퍼트립니다. 그리고 군중속에 바람잡이를 넣어 정부에 대한 울분을 죄없는 조선인들에게 풀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제국주의, 군국주의 행보에 걸림돌이던 공산주의세력을 반발없이 학살하는데 이용하기도 했죠. 덕분에 일본은 별 저항없이 다이쇼 시대의 사상 충돌을 억누르고 군국주의 행보에 들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