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6부 - 인간이 죄의 결과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와 죄의 책임을 유전적으로 물려받는다는 오해
응애, 응애!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우렁찬 울음 소리는 생명의 태동을 알린다. 죄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기! 그런데 만일 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가정해 보자.
조상의 원죄를 타고났기 때문에, 아무리 죄도 모른 채 잠깐 숨쉬다가 죽었다 할지라도, 이 아기는 영원히 타는 지옥 불 속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아기에게는 아담의 죄가 전가되었기 때문이다. 이 논리가 도대체 이치에 맞는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과 신학자가,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죄가 후손에게도 전가되었으므로, 아담의 자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정죄 받은 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그 원죄 때문에, 태어나 한 번도 죄를 지어본 적이 없는 아기든, 죄를 많이 지은 어른이든, 다 지옥에 떨어질 죄인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원죄설의 유래
원죄설은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여 주창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어거스틴(354년)은 마니교도인 아버지와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났다. 마니교는 3세기경 바빌론에서 태어난 마니에 의해 창설된 종교로써, 우주에는 빛과 어둠, 선과 악처럼 대립된 두 원리가 공존한다는 철저한 이원론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교의 하나이다.
그는 교육열 높은 아버지 덕택으로 이태리, 로마와 카르타고 등지에서 교육을 받았고, 젊은 시절 동안 방탕한 생활을 살며 혼란을 겪던 차에, 암부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기독교 사상에 눈을 뜨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철학과 신플라톤주의 서적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니교의 사상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다가 교부가 되어서 그는 저서를 통해 많은 이교의 오류들을 기독교에 들여오는 장본인이 되었다. 그는,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아담의 죄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는데, 죄는 십계명을 범하는데 달린 것이 아니고, 존재 상태, 바로 그것이 죄라고 주장하였다.
어거스틴은 갓 태어난 유아도...물로써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의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원죄의 죄책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갓 태어난 유아들은 구원을 위해서 성별 되게 특별히 제정한 성례전을 통해 신자가 되지 않는다면 어둠(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의 원죄설은 당시의 많은 사람을 설득해 모든 인간에게 외적 통제, 즉 제국의 지지를 받는 교회가 필요하다는 관념을 심어주어, 로마제국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인 효과를 가져왔으며, 원죄설은 기독교 안에서 아담의 타락 은 곧 사람의 타락 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고, 기독교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고 사회 현실에 항거하기보다 원죄와 복종을 강조하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억울하심 풀어 드리기
원죄설을 믿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순투성이가 되고 만다. 그리고 원죄설 속에서 하나님은 매우 불공평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분으로 나타난다. 조상 한 사람의 불순종과 잘못된 선택의 죄로 인해 태어나는 후손들이 선택의 여지 없이 모두 다 죄인이 된다는 사상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의 편에 있어서도 매우 억울한 것이다.
또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원죄설은 우리의 마음 속에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고 죄를 이기게 하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평가절하하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 곧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의 능력,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보혈의 능력, 우리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죄의 유혹에 쓰러지지 않도록 우리를 붙드시고 힘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과소평가하게 한다.
1.원죄설에 사용되는 로마서 5장 12~18절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2~18절)
이 성경 절이 시사하는 바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람이 다 죄인이 되었다는 것이나, 또 그 사실을 강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죄 때문에 야기된 사망의 힘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의 선물의 능력과 힘이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기술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성경절을 잘 분석해 보면, 비록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의의 선물이 더욱 넘치므로, 즉 주님의 은혜의 능력이 더 크시므로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2. 에스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포
어떤 성경절에서 신학적인 사조와 교리를 추려 내려면, 그 사상이 성경 전체가 말하는 진리와 들어맞는가 하는 것을 추리해 내야 한다. 만일, 신학자들이 바울이 말한 로마서 5장 12~18절에 의해 아담의 원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으므로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한다면, 에스겔 18장 20~24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 18:20)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로 멸망을 하는 것이지, 조상의 죄로, 아버지의 죄가 전가되어 죽는 것이 아니라고 선포하셨다. 또 다른 구절을 보자.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겔 18:21~22)
만일, 신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오래 전부터 가르쳐져 온 교회의 교리대로, 아담의 죄가 전가되어서 우리가 죽는다면, 범죄한 그 영혼은 그 사람만 죽으리라. ,아들이 아비의 죄를 담당하지 않으리라. 는 에스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 에스겔 18장 2절에는 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이 구절은 죄를 조상 탓으로 돌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교훈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렘 31:29도 참조할 것)
3. 바울이 말하는 요점
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여기서 첫째 아담을 통해서 죄가 들어왔다는 뜻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이 죄의 결과와 영향과 속성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음으로 연약해져서 죄를 쉽게 짓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악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인 죄의 성향을 타고났다는 말이다.
비록 아담이 범죄한 영향력으로 사람은 썩을 몸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우리가 죽는 것은 아담의 죄 때문에 멸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죄로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지은 죄 때문에 우리가 정죄 받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이다. 우리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며, 자기 죄 때문에 사망과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 첫째 아담이 범죄하므로 자동으로 죄의 책임과 정죄를 받고 죄인 된 것이 아니라, 그 죄의 속성과 연약성이, 죄의 결과와 그 영향이 우리에게 들어온 것이다.
È 존재 자체는 죄가 아니다 - 만일 사람이 태어난 자체가 죄라면(원죄 때문에), 죄의 영향, 즉 죄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당연한 결과인 사망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믿음의 조상들의 경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에녹과 엘리야는 살아서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다. 그들은 사망을 이기고, 사망을 맛보지 않고 승천했다.
만일 태어난 자체가 죄라고 한다면, 그들은 원죄 때문에 사망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승천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에녹과 엘리야는 구세주가 필요한 사람이었고 구세주의 속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기정된 사실이다. 그러나 에녹과 엘리야가 죄 없는 하늘에 들어간 것만 보아도 태어난 자체가 원죄이기 때문에 멸망 받을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È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 이 성경 절에서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고 하고 있다. 그 다음 계속되는 성경절에서도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두 다 의롭게 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이 다 정죄를 받았다거나, 아담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구속 사업도 모든 사람을 다 의롭다 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구속 사업을 믿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 의롭게 되는 것이다.
È 원죄설의 개념을 가지고 이 성경절을 읽으면 - 첫째 아담 때문에 사람이 무조건 죄인이 되었다면, 둘째 아담인 예수님 때문에 태어난 사람은 무조건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서게 된다. 즉, 첫째 아담 때문에 사람들이 다 죄인이 되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받아들이든지 받아들이지 않든 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다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첫째 아담을 통하여서는 죄가 들어 왔으나,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는 의가 들어왔고, 그러므로 죄의 힘보다 더 강한 은혜가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쓴 것이다.
È 원죄설을 믿을 때 야기되는 죄의 정의와 예수님의 본성 문제 - 죄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그 자체가 죄 라는 개념을 가지게 될 때, 죄는 결코 이길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되며,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죄에 대한 정의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잘못된 개념도 따라오게 된다. 죄를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본성 그 자체라고 가정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인성을 취하셔야만 한다. 죄인은 구세주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원죄설은 또 하나의 오류를 들여왔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것(천주교의 무염시태설을 통하여)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와 똑같은 본성을 입으시고 우리의 모본이 되신 예수님을 말하고 있다. 만일, 죄를 선택으로 믿지 않고 조상의 죄가 전가된 존재 자체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죄를 승리하고 이기는 마지막 백성, 곧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고 성경에 묘사된 하나님의 참 백성이 나올 수 있겠는가?
ÈÈ 지금은 하나님의 복음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하나님을 변호해 드릴 마지막 참 백성이 필요 되고 있는 시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진리와 복음을 알고, 이해하고, 진리로 성화된 한 백성을 모으고 계신다. 마지막 오순절의 놀라운 성령을 받고 나아가 큰 소리로 바벨론의 오류와 죄악을 폭로할 사람, 흑암과 오류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불러낼 증인을 부르고 계신다. 오해 받고 계시는 하나님의 억울함을 풀어 드릴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마지막 증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변화되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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