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 [아침시산책]老母
老母
/문태준
밤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처럼 참 아름답다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먹는다
서울 맥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
-문태준 시집 ‘가재미’
노인 인구가 늘고 있다. 하지만 풍족해진 물질문명에 비해 각박해진 세태로 간혹 노인학대 소식을 듣는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그런 충격적인 일들은 우리를 심히 부끄럽고 안타깝게 한다. 노모와 밥을 먹는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구겨지는 입가가 온통 주름살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 주름살을 참 아름다운 골짜기라 한다. 노모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무와 맑은 샘물과 구름그림자와 으름덩굴을 다 불러와 받아먹으며 나에게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노인의 생애 속에는 그 나이를 살아보지 않은 이들이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깊고도 넓은 세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니, 선한 이 시처럼 우리는 온 우주를 주름살로 품고 있는 노인들을 참으로 귀하게 대접해드려도 부족한 것이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