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의 언어 삶의 속삭임이여!(단양 올산 20230411)
강릉 산불소식이 있었다.
강풍에 휘몰아치는 불길이라는 소식에도 단양 올산
들머리 덧고개에서 출발하는데 산불감시요원이 길을 막았다.
황당했지만 그건 그의 일이니 어쩌랴! 이해한다.
그는 이런 날 산이라니 정신이 있느냐는 핀잔이었다.
어쨌든 구구한 변명 끝에 입산 허락을 받고 출발!
당당하게 오르는데 올산 정상까지 900m라니
그 거리에는 바위가 없었다. 바위산을 타려고 왔는데
비집고 겨우 비집고 만난 바위에 실망을 거듭했음이야!
올산 정상에 올라도 그저 그런 바위에 시쿤둥이었다.
내리막으로 치고 내려서는데 험난한 비탈길이었다.
내리막 저기 나타나는 바위 능선에 조급한 마음에도 천천히
역시 달랐다. 올산의 바위의 정수가 드러남이었음이야!
그래 히프바위부터....
올산 정상을 지나 히프바위로 시작하여 만나는 바위
흔히 정상을 치고 나면 그저 내리막만 나오는데 615봉에 719봉
다시 떡바위 비행접시바위 553봉을 만나고 공기돌바위를 지나 515봉
쉴새 없이 만나게 되는 바위군상에 빠져 바위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기어오르고 주저앉고 저 먼산 그리매에 빠지고
이리도 좋았던가...그저 바쁘기만 했던 지난날의 산행활동이었다.
연륜을 더할수록 보이는 실상이 완연히 다름은 분명함이야!
그리고 거기 거기마다 삶이 또렷하게 보인다는 사실도!
날머리 미노교 가까이의 두꺼비바위와 소나무 한그루!
그 고혹적이면서도 고고한 정경, 삶의 엄숙한 모습아!
오랜만에 참석한 회원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정말 그럴만한 사안이라면 이해하지만 단지 이해(利害)관계로
그래서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은 수긍하기가 힘든다.
더러 나도 그런 미움의 대상이 아닌지 두렵다.
우리 산악회에서도 몇 가지 자제하는 일이 있다.
처음은 잘하는 일이라 여기며 행한 일이 역겨울 수도 있다는 시각
그래서 모른 체하고 만다. 이게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돌아서면 그저 서로 물상의 허망한 존재,
삶이든 뭐든 물상의 모습 바위가 아니더냐!
그저 스스로 예쁘게 살고지고!
그러기에 억년 비정의 바위에 기대나보다.
오늘 만난 바위로 하여 누린 행복
안분자족이로다.
바위는 속삭인다.
삶은 거기서 거기.... 초연하라고 말한다.
두꺼비바위 위의 고혹한 외송이 아니면 어떤가...
주어진 몫에 오로지 행복하라는 속삭임
그래 그 진심을 명심하리다.
계묘년 20230411 단양 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