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통해 성경을 배운다
나는 꿈을 통해 성경을 배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번은 어떤 꿈을 꾸었는데 잠에서 깨어나면서 모두 잊어버렸다. 하지만 히브리어 단어 하나는 기억이 났다. 그것은 “게난”이란 단어였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서 들어보았지?”라며 성경을 찾아보니 아담의 족보에 나오는 이름이었다.
창5:9을 보면 게난(קֵינָן 케이난)은 에노스의 아들이다. 에노스(אֱנוֹשׁ 에노쉬)란 “사람”이란 뜻으로 아나쉬(אָנַשׁ)에서 파생된 단어다. “아나쉬”란 “약하다. 병들다. 깨지기 쉽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注 : 사도 바울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며 사람을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비유한 것은 정확한 비유였다.(고후4:7)
에노스는 왜 아들의 이름을 “케이난”이라고 지었을까? “케이난”란 “둥지를 틀다”는 뜻이다. 병약했던 에노스는 아들을 통하여 어떤 둥지 틀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케이난이 자식의 이름을 지은 데서 드러난다. 창5:12을 보자.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하랄엘(מַהֲלַלְאֵל)은 두 단어의 합성어로, 마하랄(מַהֲלָל)은 “찬양”, 엘(אֵל)은 “하나님”이란 뜻이다. 따라서 “마하랄엘”이란 “하나님 찬양”이란 뜻이 된다.
여기에서, 병약했던 “에노스”가 꿈꾸었던 가정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둥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약하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부족함이 없다”, “나는 약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의지하게 된다. 즉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 아닌 鐵 그릇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필히 이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보배는 질그릇에 담기는 것이지 鐵 그릇에 담기는 것이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