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890. 동지 기도(231222)
동짓날은 밤이 젤 긴 날이다. 저녁 다섯시가 넘으면 어두워진다.
어릴 적 시골은 전기도 안 들어오니 남폿불과 등잔불로 밤을 밝혔다. 그러니 어둡기 전에 저녁을 먹어야 한다. 소에게 여물을 쑤어 먼저 먹이고 돼지 닭 개 염소 차례로 먹이를 주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먹는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도 일곱시도 안된다. 그러면 잠자기 전까지 참 긴 시간을 가족들이 함께 보낸다. 바느질도 하고 도라지도 까고 콩나물도 다듬고, 새끼도 꼰다. 화롯불 가, 이야기가 등잔불처럼 가물가물 이어진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으로 모인다. 항상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저녁 기도가 끝나면 엄니의 구수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약성서의 하나하나 장면들이 이야기 영상으로 잡힌다.
천지 창조 때부터,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가는 장면과, 노아의 홍수, 이사악이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 출애굽의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등은 한편의 영화였다. 나중에 영화로 보았지만 엄니의 이야기 속에서 홍해가 더 선명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던 안 믿던 구약성서를 다 꿰고 있다. 어쩌다 엄니가 장면을 바꾸어 말하면 동네 사람들이 먼저 알고 틀렸다고 수정해준다.
동짓날에는 방안에 사람들이 앉을 자리도 없다. 이야기는 늘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먹은 야곱과 에사후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장자권은 속임수로 넘어가고 외삼촌네 집으로 도망 가다가 광야에서 천사와 씨름을 하는 장면에서 끝나곤 했다. 이야기가 끝나면 밤참으로 팥죽을 먹었다.
긴 겨울 밤 기도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영화로 끝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