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녀 2006년부터 경영수업, 최대주주는 25살 막내아들 최병민 회장 세 자녀, 20·30대에 683억원 규모 주식 취득
종합제지회사 깨끗한나라(5,040원▼ 20 -0.40%)가 2020년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병민(65) 깨끗한나라 회장은 올 초 임직원들에게 투자 확대, 연구개발(R&D) 강화, 외국 신시장 개척 등 세가지 키워드를 골자로 하는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며 부직포를 활용한 물티슈나 마스크 등 생활용품 분야에서 다양한 신사업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월에는 테이크아웃용 컵이나 컵라면에 쓰이는 발포컵을 새로 개발했다.
특히 최 회장의 장녀 최현수(38) 전무가 주도하는 아기용 물티슈, 기저귀 등 신제품 확대가 눈길을 끈다. 최 전무는 올해 세살이 된 쌍둥이 자녀의 엄마로, 업계에서는 ‘내 아이가 쓰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최 전무는 회사를 대표해 제지·펄프업계 신년인사회, 종이의 날 행사 등에 참가하는 등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전무가 나중에 경영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깨끗한나라의 최대주주는 최 회장의 1남 2녀 중 막내인 최정규(25) 씨다. 1992년생으로 최 전무보다 13살 어린 최정규 씨는 현재 깨끗한나라에 재직하고 있지 않으며, 미국 유학 외 행보는 알려진 바가 없다.
▲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 /깨끗한나라 제공
◆ 창립 51주년 매출 7000억원 회사로 성장
올해 창립 51주년을 맞은 깨끗한나라는 최병민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최화식 창업주가 1966년에 만든 회사다. 당시 이름은 대한팔프공업. 1991년에 대한펄프로, 2011년에 깨끗한나라로 이름을 바꿨다. 깨끗한나라는 산업용 포장재로 쓰이는 백판지, 종이컵 원지 등을 주로 생산하다가 1985년 금강제지를 인수하면서 화장품, 기저귀, 생리대 등 생활용품 사업으로 저변을 넓혔다.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최 회장은 최화식 창업주가 별세한 1980년부터 실질적으로 회사를 이끌어왔다. 그러다 2009년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와 주력 제품의 공급 과잉, 자금난 등으로 진퇴양난을 겪다 사돈 그룹이자 범LG가로 분류되는 희성그룹의 희성전자에 지분을 넘긴다. 최 회장의 부인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구미정 씨다.
최 회장은 2008년말 깨끗한나라 지분 67.58%를 들고 있었으나 2009년말에는 희성전자가 70.75%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깨끗한나라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냈고, 2008년 말 기준 부채비율이 1495.9%를 기록할 만큼 재무상황이 크게 악화됐었다.
▲ 충북 청주에 있는 깨끗한나라 제지·생활용품 공장. /깨끗한나라 홈페이지
이후 취임한 전문경영인 윤종태 대표는 판매 관리비를 절감하는 등 경영 개선작업을 진행해 2010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최 회장 일가는 2014년 7월 깨끗한나라 지분을 다시 사들여 최대주주 지위를 되찾았다. 최 회장이 2014년 경영에 복귀한 뒤 깨끗한나라의 영업이익은 2014년과 2015년에 전년 대비 각각 66%, 50% 급감했다. 이 때문에 최 회장은 독단적인 경영 스타일로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깨끗한나라는 지난해 당기순이익 83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깨끗한나라의 지난해 매출은 7033억원으로 전년 대비 3.6% 늘었고, 영업이익은 185억원으로 368.8% 증가했다. 깨끗한나라는 최근 1~2년 사이 화장지 신설비와 물티슈 자체 생산 공장을 구축했다. 지난해에는 최 회장이 직접 이란과 베트남 현지 제지 관계자 및 주요 거래선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현재 약 200억원을 투자해 짓고 있는 충북 음성의 패드 설비 공장도 올해 11월 말 준공을 앞두고 있다.
◆ 최대주주, 10년 넘게 근무한 맏딸 아닌 25살 막내아들
▲ 최현수 깨끗한나라 전무. /깨끗한나라 제공
최 회장 일가는 2014년에 깨끗한나라 지분을 되사는 과정에서 최 회장의 막내아들인 최정규 씨를 전면에 내세웠다. 최정규 씨는 올해 3월말 지분 16.04%를 가진 최대주주이고 최정규 씨의 두 누나인 최 전무와 최윤수(35) 씨는 각각 7.7%의 지분을 보유한 2, 3대 주주다.
최 회장의 지분은 1.62%에 불과하고 구미정 씨는 4.92%를 들고 있다. 최 회장의 차녀 최윤수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나라손(0.08%), 나렉스(0.05%) 등 2개 업체를 포함한 최대주주 측 지분율은 38.11%다.
지분율로 보면 깨끗한나라의 3세 후계자는 최정규 씨다. 하지만 일찌감치 경영 수업을 시작한 건 최 전무다. 현재 총괄사업본부장을 역임 중인 최 전무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2006년 마케팅 부서에 입사해 2013년 말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어 2015년에는 등기임원에 선임됐다. 지난해부터는 제지사업 및 생활용품사업을 총괄하는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깨끗한나라가 올 초 선보인 2017년형 ‘보솜이 프리미엄 천연코튼’도 최 전무의 작품이다. 해당 제품의 ‘우리 아기 첫 순면 속옷’ 콘셉트를 고안한 것이다. 2014년 전체 매출의 8%를 차지했던 기저귀 비중이 지난해 5%까지 떨어지면서 신규 투자 및 신제품 개발에 집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전무는 또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워너비’로 꼽히는 탤런트 박수진을 공식 모델로 발탁하고 자사 생리대 브랜드 ‘릴리안’을 잇달아 리뉴얼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깨끗한나라 측은 “올해 출시된 고품질 제품 및 신제품들이 1분기 매출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깨끗한나라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816억원으로 전년 동기(1735억원) 대비 약 4.7% 증가했다.
최 회장이 경영권을 누구에게 물려줄지는 미지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보수적인 재계 분위기상 후계자는 최정규 씨가 유력하지만 나이가 어려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하더라도 (최 전무가) 일선에서 물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제지업계는 오너 가문의 여성 구성원들이 경영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해 수년 뒤에는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 최 회장 세 자녀 수백억 지분 취득자금 출처 논란
최정규 씨가 최대주주가 된 과정은 여전히 논란이다. 희성전자는 2014년 7월 25일 깨끗한나라 주식 1166만주를 최정규씨 등에게 시간외매매로 넘겼다. 당시 최정규씨는 우선주 8주만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때 보통주 597만1526주(18.28%)를 매수하면서 단번에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취득 단가는 주당 5840원으로 최정규씨의 총 취득금액은 349억원에 달한다. 깨끗한나라 측은 “최정규 씨가 자기자금으로 주식을 취득했다”고 밝혔지만, 당시 22세였던 최정규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최정규씨 외에 최 전무와 최윤수 나라손 대표가 깨끗한나라 지분을 어떤 자금으로 취득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최 전무와 최 대표는 2014년에 각각 깨끗한나라 주식 286만8704주, 286만7326주를 매입했다. 취득금액은 각각 약 167억원에 달한다. 당시 최 전무와 최 대표는 30대 초중반의 나이였다.
업계에서는 세 자녀가 부모로부터 인수 대금을 지원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은 2009년 2월 5일 깨끗한나라 주식 499만2720주를 주당 3200원에 희성전자에 넘겼다. 처분금액은 총 159억7670만원. 이후 최 회장은 2014년에 희성전자로부터 주식을 살 때 69만7932주만 40억7592만원에 매입해 120억원 가까운 차이가 난다.
구미정 씨는 깨끗한나라 주식 183만921주 외에 LG(74,900원▼ 800 -1.06%)주식 135만9600주(0.79%), LG상사 주식 5만6963주(0.13%)를 갖고 있어 매년 20억원 안팎을 배당으로 받고 있다. 최 회장 세 자녀의 주식 취득과 관련해 깨끗한나라 측은 “자세한 사실관계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