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3년차가 본 고향의 빛 -병원에서-]
아내와 함께 고향에 내려와 인부들을 데리고 집을 짓고 힘든 농사로 무리를 했던지 20년전에 수술했던 발목이 저리고 아파서 광주 동아병원에 15일간 입원하게 되었다.
수술 후 입원한 5인용 병실에는 나잇값 못하는 60대 환자가 있었다.
간호사를 함부로 대하고, 시끄럽게 쌍스런 말투를 입에 달고 사는 못난 놈이 퇴원하자 병실은 비로소 평화를 찾았다.
"난 고향이 장흥 월평인디 선생은 어디요?"
"아이고~ 저는 장흥 관산 동촌입니다, 어르신~"
고향이란 강하고 묘한 자력이 있나보다.
호감이 안가는 어르신과 이틀만에 형님동생하기로 한 것은 내 생전에 처음 겪는 이상한 일이다.
그것도 아부지뻘 연배인 87세의 마르고 왜소한 체격의 정홍섭 어르신!
더불어 인사하게 된, 육중한 체격의 옆 침대 어른은 무릅을 수술한 무안의 대농출신으로 연세가 76세라 자연스레 내 작은형님이 되었다.
함자는 홍광희, 무안바닥에서 유명하다는 별명은 홍탁형님! ㅋㅋ
이렇게 만난 우리는 허물없는 형님동생이 되어 문병자들이 들고 온 맛난 음식이나 남(여자)들이 들으면 홍안이 될 속엣말도 밤 늦도록 거침없이 나누는 막역지우가 되었다.
까칠한 성격의 검찰청수사관 출신과 순박한 농사꾼 사이에 낀 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본 도시인이었던 만큼 적절한 농담과 윗트를 섞어 친구처럼 두분을 주물러대니 우리 병실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자 들락거리는 간호사들도 생글거리며 살갑고 정답게 간호해준다.
이순이 넘도록 간사스런(?) 서울말씨에 물든 나에게, 젊고 예쁜 간호사들이 발산하는 정겨운 전라도사투리는 청량한 벽계수요 폭포수같아 매일 귀가 즐겁고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걱정했던 수술은 완벽하고, 병원음식은 입에 잘 맞았으며, 산전수전으로 통달한 형님들의 회고담까지 내가 담을 최고의 문학소재들이니...아내가 결정한 동아병원 입원과 주치의 선택은 하늘이 나에게 선물한 크나큰 귀향선물이나 다름없었다.
더우기 입원 전에 심하게 나를 괴롭히고(한방치료 한달, 근육주사 후 앙방/물리치료 2주일 등) 걱정을 시키던 어깨통증증후군(회전근개파열)이 왼발 통기브스를 한 채 퇴원 후 며칠이 지난 어느날 문득 왼팔이 별 통증없이 자연스레 움직여지자(완치된 것은 아님) 나는 다행스러움과 놀라움에 탄성을 지르며 방 안에서 홀로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내가 환생한 화타선생을 만났구나...!
(이 문제를 주치의 우성환 선생님과 상담했다. 우선 어깨주사를 맞고 발목수술을 한 후 입퇴원, 치료상황을 봐가며 어깨수술 일정을 잡자고... 간호사에게 물으니 수술비는 발목과 비슷(400여만원)하고, 통증이 심한 어깨수술 후에도 고통이 심한 장기간의 물리치료를 해야한다기에 앞날이 캄캄했었다.)
화기애애한 세사람만의 병실.
전대법대 출신에다 정의로운 법조인인만큼 평생을 공부한 큰형님은 공직에 있는동안 겪었던 소설같은 경험담들을 재미나게 들려주시고, 한학에도 조예가 깊은만큼 -산수에서 망백으로-란 한시저작을 한권씩 나눠주시며 퇴원 후에 꼭 다시만나 좋은 친구가 되자고 당부하신다.
학문에 무관심한 홍탁형님은 무심히 듣고만 계셨지만, 우리의 대화(특히 나의 질문)는 고금과 시대를 넘나들었기에 15일간이란 입원일이 못내 아쉬워 서로 입원을 연장하자는 우스개말까지 나왔다.
무릅에 인공관절을 망치로 쳐서 수술한 홍탁형님은 약기운이 떨어졌는지 밤새 신음소리를 내며 잠을 설치기에 어느날 수술부위를 어루만지며 반야심경을 염송해 드렸더니 황홀하게 좋아하셔서 내친김에 절에 다니시는 큰형님께도 쾌차를 기원하는 육자진언(옴마니반메훔) 기도를 세번 올려 드렸다.
숙명과 운명의 인연으로 엮어진 변화무상한 인생은 만남과 선택에 의한 관계론적 인드라망에 의해 정해지고 유지되며 소멸하기도 한다.
막내인 나 또한 적잖은 나이인만큼 앞으로 이 두분과는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법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나에게 -일송-이란 시호를 주신 고향어르신과는 조만간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만나는 재회의 기쁨을 누릴 것은 명백하다.
"큰 형님 작은 형님, 찾아뵐 때까지 부디 건강하십시오!"
ㅡ카톡으로 쓴 글을 옮김ㅡ
첫댓글 사랑하는 님들 안녕하십니까?
참 오랜만이군요.
그동안 저는 서울살림을 정리하고 새 인연으로 만난 아름다운 나주댁 아내와 함께 고향에다 집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집 주변의 문전옥답과 텃밭을 가꿔보았으나 왕초보라서 그런지 농사란 워낙 힘들고 수입을 보장받을 수 없는 실정이더군요.
기초생활비인 연금(국민, 개인)이 그나마 좀 쪼매 있기에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안빈락도를 실현하며 초야에 묻혀 문학과 서예를 꿈꾸며 노년의 삶을 살고 있지요.
혹시 저처럼 귀향 귀촌 귀농할 의사가 있어 문의하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연락하십시오.
위 사진은 제 작품이며, 아래사진은 딸집이 있는 안성의 테마파크입니다.
귀향하셨다니...참으로 부럽습니다...부디 건강하시길 기원 합니다...
존경하는 광명스님을 다시 뵌듯 무지 반갑습니다~^^
위대한 컴이 손바닥폰으로 바뀐 변화무상한 시대라 예전에 예서 활동하시던 열혈불자님들도 미제는 손바닥세상으로 이사가신듯 하군요.
그래봐야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우주를 나르던 부처님 손바닥인데 말이죠...^^
곹 찿아뵙겠습니다
저는 나주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동안 가끔씩 들락거리며 구경했는데, 넘넘넘 재밌는 사천왕 향광님 모습이 보이질 않군요.
안그래도 처남이 사는 처가집(금성산 아래 나주향교 부근)에 갈 때마다 자명님 생각을 했습니다.
꽃피는 봄날에 기쁠사 서로 만나 소산봉 아래 소산자연에 동동주를 띄워놓고 부침개를 나누며 만담을 즐기고 싶습니다~♡
아이고야
살아있었네요 !
방가
방가!
^^
타고난 넉살과 좋은 인상으로 어디를 가도
누구에게나 환영받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글솜씨는 아직도
웬만한 문인 빰치시게 탁월하시고요
고우신 보살님과
알콩달콩
새로운
전원생활을 하신다니
한편으로는 부럽고
그 기백에 안성맞춤이란 생각도 듭니다
워낙 호연지기
싸나이 대장부 기운이시니요
존경하옵는 태산님
항상 건강하시고요
늦게 만나신 소중한 인연
아낌없이 사랑해주시고
늘 소요자족하시면서
행복하게 사실것같습니다
소식주셔서 무지무지 반갑습니다
어익후~ 먼저 합장 _()_
죽지않고 살아있어 죄송함다~ ㅎㅎ;;
흠모하는 광명스님의 원력 덕분인지 노년기에 제가 원하는 알흠다운 나주선녀를 만났지요.
존경하는 단현님을 봐서라도 이제부터는 가끔씩 들러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죽으나 사나 부처님과 광명스님의 은덕을 잊지않고 이제부터는 보다 더 잘 살겠습니다~ 또 합장.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