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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픔과 슬픔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둠을 사랑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누구에게나 등언저리를 내어주는 산을 사랑한다.
오늘은 강남 9개산 종주산행이 있는 날이다.
퇴근 후 집으로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서 건전지와 이동식을 사왔다.
저녁을 먹은 후 헤드렌턴의 건전지를 교환하고 이동식, 방풍복과 조끼, 구급함과 에어파스
물500ml 4개를 배낭에 넣고 아파트를 나섰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감싸주려는 것처럼 어둠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달리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어둠과 힘겨운 싸움을 하며 내달린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깁밥집에서 김밥을 두 줄 사서 배낭에 넣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부러울게 없다.
버스를 타고 경인교대에서 내려서 관악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관악역에서
다시전철로 바꿔 타고 석수역에 도착을 하여 계단을 내려가니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모여있다가 반겨준다.
늦어지는 일행을 기다리는 사이에 몸을 풀어본다.
산행전의 설레임 때문인지 가벼운 몸의 느낌이 좋다.
옆에서 등산화 끈을 조이시는 여자분에게 등산화 끈매는법과 스틱사용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일행들을 기다리는 사이에 출발시간이 20여분 지나버렸다.
먼저 출발을 하고 나중에 오는 사람들과 산에서 만나기로 한단다.
일본이 진주만 공격을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듯이 석수역앞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우리들의 강남 9개산 종주의 대장정은 시작이 되었다.
한발 한발 산으로 다가가면서 바라 본 산의 실루엣은 아름다운 여인의 허리곡선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등산로 초입에 이르러 간단하게 닉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헤드렌턴을 착용하고
어두운 산을 향해 몸을 던졌다.
어두운 등산로 좌우에 서있는 나무들이 잎을 흔들며 우리들을 반겨주고 선선한 바람은
어머니의 손길처럼 뺨을 어루만져준다.
극장의 핀조명처럼 어둠과 싸우는 헤드렌턴의 불빛이 고맙다.
뒤를 돌아보니 일행들의 긴 헤드렌턴 불빛이 승천하는 용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베드민턴장을 지나 넓고 완만한 산책로를 걷는다.
몇몇 일행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고 선두와 차이가나기 시작한다.
야간 산행은 주간 산행과 달리 위험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등산로를 확실하게 알고 가야한다.
알바를 한두번하면 금방 1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선두와 후미사이가 벌어지면 안된다.
주위가 어둡기 때문에 현재 위치와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장에게 선두를 이끌고 먼저가라고 하고 후미를 맡기로했다.
호압산,삼성산,관악산은 일년에 50회이상 오르기 때문에 손바닥 보듯 꿰고 있기에 자신있게후미를
맡기로 한것이다.
헬기장을 지나고 공원의 산책로 같은 산길을 간다.
발끝에서 전해져오는 느낌이 좋다.
광명시와 구로구,양천구의 야경들이 서서히 눈속으로 빨려들어온다.
이순간 우리들은 야경의 환상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찬(한우물이라고도함)우물에 도착을 하여 호압산 산행을 자축하고 새로운 각오도 다질 겸 약수를 마시며
가슴을 적셔본다.
시경계를지나 삼성산으로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몸들이 풀린 것 같다.
도란도란 속삭이고 웃는 사이 나무아미타불 바위를 지나 거북바위에서 석수역에서 늦게
출발한 2진들과 만나 삼성산을 향해 콘크리트길을 올라 KT송신탑에 도착하여 세상을 향해
가슴을 내밀었다.
우리들의 눈속으로 안양,광명,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머리위에는 다이아몬드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이 박힌 왕관을 쓰고 있었다.
닉을 모르는 일행의 배낭에서 줄줄이 나오는 다양한 드링크병들......
일행들에게 드링크병을 사정없이 나누어준다.
벌써부터 배낭을 비우려 하는 것을 보니 올라 올 때 배낭이 무거웠던것 같다.
삼성산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추억속에 묻으며 무너미 고개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발걸음이 내리막길이라서인지 새털처럼 가볍고 경쾌하다.
순식간에 무너미 고개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는 사이 바라 본 일행들의
얼굴에서 종주산행을 꼭 이루어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학바위 능선을 타고 KBS송신탑을 거쳐 연주대로 오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주관한 산행이 아니기에 묵묵히 따라갔다.
띵~~~~!
최저임금에 해당되지 않는 그 이름도 거룩한 알바......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니......
비탈면과 바위면을 치고 올라 학바위능선 정등산로을 대장에게 찿아 주고 후미를 맡으며
학바위 능선을 오른다.
바쁠것도 없고 힘들것도 없다.
오늘만 하는 산행이 아니고 3일에 걸쳐서 하는 산행이 아니던가.
강남 9개산 산행이 끝나면 바로 이어서 불수사도북으로 이어지는 무박 3일의 산행이기에 철저한
자기관리와 체력안배가 매우 중요하기에 후미를 이끌며 여유있게 오름을 이어간다.
학바위 능선에 있는 국기봉에 오르지 않고 우회하였기에 펄럭이는 희미하게 보이는 국기를
스쳐지나간다.
KBS송신탑에 이르러보니 오늘따라 송신탑이 웅장하고 당당하게 보인다.
새로운 힘이 생기고 느낌이 좋다.
항공기 충돌예방 경고등의 불빛도 힘차게 깜빡거린다.
이번 종주산행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연주암 위에 있는 효령대군 사당으로 가기전에 좌측으로 돌아 제3깔딱 고개을 지나 말바위능선으로
오르며 바라 본 기상관측소의 지붕은 어린시절 골목길에서 공차기를 하며 놀던
축구공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웃음이 피어난다.
이렇듯 산은 묻어두었던 추억을 되살려주는 타임머신과도 같은가보다.
연주대로 오르는 돌계단이 정겹다.
한발 한발 오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 같다.
관악산 표지석에서 사진도 찍고 동작,반포,한남대교와 남산타워의 불빛과 서울의 야경에
산행의 피로와 졸음을 잊는다.
동서남북에서 불어오는 바람에게서 단풍냄새가 난다.
단풍의 계절이 우리곁에 다가왔음을 느낀다.
땀이 식어서 체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관악사지를 거쳐 과천시에서 토끼를 방사한 곳을
지나 559봉을 휘돌아 사당방면으로 내림을 이어간다.
야경을 보며 하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산로 옆에 텐트을 치고 누에고치처럼 침낭에서 잠은 자는 등산객의 모습에서 비박산행시 내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난다.
마당바위에 도착을 하여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출발 전에 사온 깁밥을 먹고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라면, 그리고 사과에 이르는 만찬을
즐기는 사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정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피곤해 하는 여자분을 위해 돗자리와 베게를 드렸더니 피곤하신지 금방 잠에 빠져든다.
자리를 정리하고 출발하려는데 주무시고 일어나신 여자분이 체온이 떨어진 것 같다.
잠을 자면 체온이 2~3도정도 내려가기 때문에 일어나면 추위를 더 느낀다.
겨울철 잠을 자다가 새벽에 초소근무를 나갈때의 추위를 군에 갔다 온 남자라면 모두
알것이다. 점퍼을 입고 점퍼에 달린 모자를 쓰고 계시는데도 추워하시는것 같아 배낭에서 조끼를 꺼내 드렸다.
사당역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관악산의 명물 남근바위을 일행들에게 알려주는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일행중에 여자분들이 계셔서 그런것 같다.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공룡(먹깨비 바위라고도함)바위를 지나고 하마바위을 지나 헬기장에 도착을 하여 관음사 방면으로
산길을 가는데 선두가 보이질 않는다.
잠시 기다리니 선두가 우리가 지나 온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또다시 알바를 한 것 같다.
사당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선두는 군인아파트 위에 있는 국기봉과 약수터를 거쳐서 하산을하고 우리일행은 관음사 위에 있는
국기봉을 거쳐 사당역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서서히 여명은 밝아 오고 있었고 굳은 의지로 가득 찬 일행들의 얼굴은 서서히 세상에 공개되어가고 있었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우리들은 그렇게 3개산 종주를 한 것이다.
사당역에 도착을 하여 밤새워 고생한 헤드렌턴을 재우기 위해 배낭속으로 넣었다.
이산가족처럼 떨어져서 따로 하산한 일행들을 만나 용변을 본 후 우면산을 향해 가기위해
우성아파트앞 횡단보도를 건넜으나 일행중 네분은 신호에 걸려서 뒤에 쳐지셨고
그렇게 또 이산가족이 되어 우면산 산행을 시작하여 산불감시 초소에서 상봉을 하고
공군부대 철조망을 휘돌아 체력단련장과 약수터를 지나 소망탑에 도착을 하기전에
몸이 안좋은 한분이 하산을 하셔서 서운하고 아쉽다.
소망탑에 도착을 하여 산책을 오신 할머니와 이야기를 주고 받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다리가 불편한 일행에게 에어파스를 뿌려주고 내무릎에도 뿌렸다.
공기속으로 흩어지는 파스냄새처럼 무릎의 피로도 훨훨 날아가는 느낌이다.
갈길이 멀기에 내림을 서둘러 교육방송국 방면으로 하산을 하며 스틱을 이용 앞사람의
발뒷꿈치를 찌르기도 하고 알밤을 줍는 행운도 누려본다.
교육문화회관 야외 공연장을 지나 순대국 집에서 뼈다귀 해장국을 주문해 놓고 그 사이에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정수기에서 물을 채워 배낭에 넣고 식사를 한 후 화장실에서 세수을하고 옷을 갈아 입은 후 회비를 걷어서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서 청계산을 향해 힘차고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날씨도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 주는 듯 화창한 것이 약간 덥기까지하다.
화물터미널 앞 횡단보도를 건너자 중간합류를 하기위해 모여 있던 일행들이 반겨준다.
모두 30대 전후로 보인다.
밤을 지새우며 산행을 하여 피곤한 우리들은 젊은피가 수혈되자.
새로운 활력이 넘친다. 서로 안면이 있는 듯 웃음꽃이 피어난다.
청계산 등산로입구에서 또다시 닉과 이름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산이 아닌 흙산이기에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지루한 산길이 광교산까지 이어질 뿐이다.
발끝에서 전해져 오는 흙의 느낌이 좋다.
청명한 가을하늘을 머리에 이고 좋은 사람들과 오르는 산행이라서인지 행복하기 그지없다.
출발전에 내게서 스틱사용법을 배운 여자분이 오름을 이어가는 동안 오는발과 오른쪽
스틱이 같이 나간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
뒤을 따르며 하나 둘! 하나 둘! 참새! 참새! 구렁을 붙여주며 스틱연습에 힘을 실어주었다.
옥녀봉에 도착을 하니 수많은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쉬고 있어 쉴 만한자리가 없다.
옆으로 자리를 옮겨서 자리를 잡고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해본다.
이대로 영원히 있고 싶다.
꿀맛 같은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매봉을 향해 가는데 이게 왠일인가.
허걱~~~~
매봉으로 향하는 계단을 방부목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한다고 우회하란다.
띵~~~~
우회해서 매봉까지 갈려면 3배나 긴 거리를 가야하기에 밤새워 산행을 한 우리들에게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터덜터덜 걸어서 우회을 하는데 마음이 무겁다.
계단대신 우회를 택하여 매봉에 올랐다.
역시 등산객들이 많다.
청계산 정산은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바로 산행을 이어나간다.
산책로 같은 등산로를 따라 룰루랄라 걷다가 석기봉으로 오르는 깔딱을 치는데 뻐근한
다리의 느낌이 좋다. 등에서는 땀이 솟는다.
배낭의 무게도 느껴진다. 일행들의 무릎에 보호대가 채워져 있고 손수건으로 묶은 사람도 눈에 띤다.
서서히 피로가 누적되고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석기봉에 올라 바라 본 세상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저 멀리 관악산의 연주대가 청계산까지 무사히 산행을 한 우리들에게 부처님의 잔잔한
미소처럼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고 이수봉이 우리들에게 어서오라고 손짓을 한다.
내림을 이어가다보니 선두는 벌써 자리를 펴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사온 깁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잠깐의 꿀맛 같은 휴식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비탈을 한걸음에 달음질쳐 내려와 이수봉으로 향하는 언덕을 오르는데 지나가는 등산객이
스틱연습을 하며 오르는 여자분에게 스틱을 제대로 사용한다고 하면서 지나간다.
4개의 산을 오르면서 많이 익숙해진것 같다.
산에 오르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한 여자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능선에서 아이스크림을 단체로 사서 하나씩 물고 이수봉을 향하는 발걸음이 아이스크림
처럼 시원 시원하다.
이수봉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국사봉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지금부터 광교산까지는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지루한 산길이 이어진다.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며 터덜 터덜 산길을 꿰며 걷는다.
일행들의 표정도 많이 그늘져 있는 것으로보아 체력도 떨어져가고 졸음이 몰려오는것 같다.
국사봉에 도착하여 흩어졌던 일행과 다시 만나 우담산을 향해 지친 발걸음을 내딛는다.
하오고개 방면은 내리막이라 체력과 시간을 단축 할 수 있어 한결 마음이 가볍지만 바짝
마른 등산로에서는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나 등산화와 바지가랑이를 누렇게 만들고
눈과 콧속을 간지럽힌다.
작은 구릉에 묘지와 철탑들이 있고 칡넝쿨들이 무성하게 자라 뒤엉켜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는 토끼들이 살지 않는 것같다.
하오고개로 내려서서 공터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여자분이 돗자리를 달라고 하신다.
베낭에서 돗자리를 꺼내주자 길건너편으로 가서 도로경계석 뒤에 펴더니 신발도 벗지않고
그대로 누워버린다.
많이 피곤하고 지친것 같아 안쓰럽다.
잠시 쉬는 사이 자리를 깔고 누운 사람, 도로경계석 위에 아무렇게나 몸을 얹어서 휴식을
취하는 일행들의 모습에서 특전사 천리행군을 보는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꿀맛 같은 20여분의 휴식 후 로프를 타고 왕복 6차선 도로로 내려섰다.
작년에는 중앙분리대가 끊겨 있었는데 지금은 프라스틱 분리대을 설치하고 줄을 매어놓아 횡단을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지친 상태라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다.
차량통행이 뜸한 틈을 이용하여 전력을 다해 뛰어서 왕복 6차선 도로를 순식간에 가로질러 횡단을 했다.
그 모습이 아픈 무릎에 보호대를 하고 파스를 뿌리던 사람들 같지가 않다.
도로의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지루한 깔딱을 올라야한다.
뻑뻑한 다리는 몸의 균형을 흔들고 배낭은 뒤에서 당긴다.
바람이 말려 준 등산복이 땀에 다시 젖는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관계로 낙엽이 쌓여 있어 걸을수록 뒤로 밀린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송신탑에 올라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송신탑 우측을 휘돌아 우담산으로 이어지는 넓고 평평한 숲길을 꿰며간다.
다른 등산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직 우리 일행들만이 산길을 걷고 있었다.
뻑뻑했던 다리도 평지를 걸으면서 안정을 찾고 젖었던 등산복도 마르기 시작한다.
나뭇잎들은 햇살을 막아주고 바람은 얼굴을 맛사지 해주며 발밑에는 작은 꽃들이 눈의
피로를 풀어 준다.
댓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기만 하는 자연의 인자하고 넉넉한 품을 우리는 지금 파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산 같지 않고 언덕 같은 우담산에 올라 나무 의자에 동그랗게 않아 고즈녁한 가을 풍광에 여유로운 웃음으로 답을 한 후
바라산을 향해 오름과 내림을 이어간다.
백운호수로 갈라지는 4거리에 이르자 오리소리가 들린다.
오리소리를 응원가 삼아 가파른 깔딱을 오르는데 숨이 턱에 닿는다.
수없이 산행을 하며 갈딱을 올랐지만 지금처럼 힘든 적이 있었던가.
체력도 떨어져 가고 내년이면 나이가 불혹이니 힘든게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새삼 세월 앞에 장사없다는 생각이 들자 서글픈 생각마져든다.
‘안되면 되게하라.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라는 구호를 되새기자 스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한발 한발 오름을 이어갈수록 다가오는 하늘이 정겹다.
비탈면에 좌우로 서있는 나무들의 사열을 받으며 바라산에 올랐다.
저멀리 보이는 광교산의 군기지들이 어서오라고 손짓을 한다.
산행의 끝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한다.
기다려라 광교산아......
바라산에서 반잔의 오렌지쥬스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감에 젖는다.
큰 것에 대한 행복보다 순간 순간의 작은 행복이 긴 여운을 남긴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소리없이 흐르는게 시간이라고 했던가.
태양은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우리들에게 일몰의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녁을 향해 가고 있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
광교산에서 하산과 동시에 전철을 타고 상계역으로 가 불수사도삼 산행에 참여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급하고 해서
백운산을 향해 먼저 출발을 했다.
한걸음 한걸음 걷는 거리만큼 어둠은 주위에 내리고 있었다.
백운산 전에 있는 작은 언덕에 오르자 이미 두분이 와계신다.
졸고 있는 남자에게 돗자리를 펴서 일행들이 도착할때까지 잠시나마 쉬도록 했다.
옆에서 여자분은 애인에게 문자를 보내는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다.
어둠은 이미 우리를 삼켜버리고 오늘은 안 쓸 것이라 여겼던 헤드렌턴을 배낭에서 꺼내서
옆에 놓고 휴식을 취해본다.
어둠속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의 몸짓이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잠시 후 일행들 맨앞에서 오던 사람이 쉬고 있던 여자분을 보고 흠짓 놀란다.
핸드폰의 불빛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 여자분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란 것이다. 순간 웃음이나서 한참을 웃었다.
웃음이 보약이라고 했던가 한차례 웃고나니 힘이 생긴다.
어두운 바다속에서 진주를 찾듯 어두운 산속으로 몸을 던졌다.
체력도 마닥을 치고 물도 거의 떨어졌다.
산행을 계속해야할지 하산을 해야할지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할 상황이다.
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산에서의 물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산행은 계속 이어간단다.
백운산으로 오르는데 어둠속에서 40대 후반의 남자 2분과 여자 2분이 내려오는데 축 늘어진
여자분을 남자분이 힘겹게 끌고 내려온다.
탈진을 하여 쇼크상태다.
배낭을 열고 구급함에서 아스피린을 꺼내 먹이고 평평한 곳에 눕힌다음 떨고 있는 일행에게 편해지도록 허리띠를 풀게하고
귀와 목에 손을 대어보니 열이나서 뜨겁다.
쓰러진지 시간이 얼마나 됐냐고 묻자 20분정도 지났다고 한다.
물도 떨어지고 헤드렌턴도 없이 어두운 산길을 탈진한 사람을 끌고 왔다는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야간산행 준비가 미흡하면 해지기전에 하산을 했어야한다.
또한 탈진과 쑈크상태로 쓰러진 사람은 즉시 그 자리에 눕히고 허리띠와 같은 몸을 조이는 것들을 풀어서 편하게 해주고
보온을 위해 옷을 덮어 주는 등의 응급조치을 취하고 구조를요청(119 등)을 해야하는게 상식이다.
쑈크상태에 있는 사람을 20여분 동안 끌고 내려 온 무지에 어이가 없다.
옷을 벗어서 덮어 주도록하고 119에 신고 구조 요청을 하고나니 일행들이 보이질 않는다.
아주머니가 무사하시길 기원하며 걷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무거워서인지 배낭도 무겁게 느껴진다.
백운산에 올라 바라다 본 광교산과 야경들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각자 남은 물을 한곳에 모으고 광교산을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분이 군지기에 가서 물좀 달라고 하면 안되겠냐고 한다.
헐~~~
한국군이 아닌 미군기지에 가서 물을 얻을 수 있을런지......
지루한 군기지의 울타리를 휘돌아 걸어서 광교산 시루봉에 도착을 해서 보니 시간이
20시가 넘었다. 일행들도 뿔뿔히 흩어져 버렸다.
불수사도삼을 하기위해 22시까지 상계역으로 가야되는데......
산구름돌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광교산 시루봉이라서 22시까지 상계동으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시루봉에서의 휴식도 잠시 하산을 서둘렀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자칫하다가는 서울로 가는 버스와 전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여
귀가를 못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산길에 대장이 전화를 받더니 일부의 일행들은 수원 방면으로 하산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림을 계속이어서 수지읍 신봉동으로 갈라지는 사거리에 도착을 했다.
시간을 보니 21시가 훨씬 넘어있었다.
등산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대장에게 많이 지쳐있고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길로 해서
신봉동 방면으로 하산을 하자고 해도 이리저리 살피기만 할뿐이다.
일행 중 한분이 콘크리트길을 따라 하산을 하고 뒤이어 일행들이 도착을 했다.
10여명이 넘었는데 어느새 8~9명만이 남았다.
콘크리트길로 하산하여 차를 타고 오리역으로 가자고 하였으나 굳이 산길을 고집한다.
내리막길을 가야하는데 오름을 계속 하고 있다니......
불수사도북은 늦은 시간으로 인해 실패를 했지만 집으로 가는 차편이 걱정스럽다.
다른분들은 찜질방에서 잘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산행대장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 또다시 일행들은 둘로 나누어져서 하산을 하게 되었고
우리 5명은 배드민턴장으로 하산하여 약수터로 내려와서 갈증으로 타들어가던 가슴 가득
약수물을 채워주었다.
22일 22:20경에 석수역을 출발하여 23일 22:20경에 끝난 강남 9개산 종주산행이
24시간만에 끝난것이다.
알바로 마무리를 하고 여유 있는 귀가시간을 배려 받지 못한 산행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격려의 눈빛으로 서로에게 응원을 해주던 산우들이 있어 보람된 산행이었다.
시계을 보니 22시 30분을 넘어가고 있다.
서울 가는 전철은 끊겼을 것이고 버스를 이용하여 서울로 가기로 하고 일행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같은
관악구에 거주하는 여자분과 버스에 몸을 싣고 강남역에 도착을 하여
2호선 마지막 전철로 갈아 타고 서울대입구역에서 여자분과 헤어져서 버스을 타고아파트에 도착을 하여
계단을 오르는 내 어깨위로 9개의 별이 살포시 내려와 앉아 있었다.
산행에 함께하신 모든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