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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탈원전 반대를 주장해 온 서울대ㆍ카이스트 원자력 관련 인사들을 최근 잇달아 만났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도 만나 탈원전 정책 재검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해 말부터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는 상당 부분 힘을 잃었다. 국민의 탈원전 지지세도 하락하는 추세다. 지난달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등이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자력발전 확대ㆍ유지해야 한다는 의견(68.6%)이 줄여야 한다는 의견(28.7%)을 크게 앞섰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원전을 가동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32개국이다. 이중 탈원전을 공식적으로 밝힌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독일ㆍ스위스ㆍ벨기에 등이다. 탈원전 정책을 펴는 나라 중 정부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곳은 단연 독일이다. 국내 원전 논의에서 독일 사례가 집중적으로 거론돼 왔는데, 탈원전 관련한 한국과 독일의 정책 방향과 속도가 흡사해서다.
하지만 독일의 이웃 나라 영국ㆍ프랑스는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1956년 10월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인 ‘콜더 홀(Calder Hall)’을 가동한 영국은 2010년대 들어서 다시 원전 확대 정책을 펴고 있다. 프랑스는 1970년대부터 원전 일변도에 가까운 공세적 에너지정책을 편 결과 2020년 기준 원자력 발전 비율이 70.6%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유럽은 국가별로 사회경제적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각기 다른 에너지정책을 펴고 있다”며 “우리가 이런 맥락과 여건을 무시하고 유독 독일의 강력한 탈원전 정책을 따르는 걸 두고 원자력 학계에서도 의아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세 강국 영국ㆍ프랑스ㆍ독일은 원전 정책 관련, 어떻게 이렇게 다른 경로를 밟게 된 것일까. 우리는 왜 그 중 독일의 길을 뒤따르는 것일까.
독일은 어쩌다 반원전의 나라가 됐나
원전 이슈가 유럽 사회 전면에 등장한 건 1968년 ‘68혁명’ 때부터였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68혁명은’ 기존 체제에 저항하고 반핵ㆍ반전을 외친 시민사회운동이다. 이때부터 유럽에서 반핵 운동은 사회운동의 큰 줄기를 이루게 됐다. 시대적으로도 반핵운동은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ㆍ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때였다. 냉전 중이던 미국ㆍ영국과 소련이 핵무기를 위시한 군비 경쟁을 벌이면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기술은 대중에게 위협적으로 비쳤다. 대중문화에도 방사선 노출로 만들어진 고질라ㆍ헐크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등 원자력엔 비밀스럽고 위험하다는 이미지가 입혀졌다.
유럽에선 독일의 원전 반대 운동이 가장 거셌다. 1975년 독일 경찰이 뷜(Whyl) 원전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을 물대포로 진압했는데, 이에 분노한 반원전 단체의 시위가 폭력적으로 번지는 일도 있었다. 정부와 시민들의 팽팽한 대치와 폭력 사태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반원전 운동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탈원전 지지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기에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로버트 융크가 1977년 내놓은 『Atom Staat(원자력 제국)』도 독일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융크는 책에서 “원자력이라는 엄청난 기술의 힘을 가진 나라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독재로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치와 히틀러의 전제 정치를 경험한 독일인들은 책의 주장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1979년 5월엔 15만명이 참여한 독일 역사상 최대 반원전 시위가 본(Bonn)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러한 독일의 반원전 움직임은 1980년 녹색당이라는 정당을 출현시켰다. 1980년대부터 반원전 인사들은 주의회를 넘어 연방의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독일은 반원전 정서가 강력한 국가가 됐다.
탈원전과는 거리가 먼 프랑스ㆍ영국
반면 프랑스는 반핵 운동의 시작점이 독일과는 달랐다. 프랑스에도 반원전 운동이 벌어지긴 했지만, 시민운동의 주축은 ‘반핵실험’으로 기울었다. 프랑스는 1950년대부터 핵무기 보유국들이 국제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겪자 독자적인 핵실험을 감행하며 핵 개발에 나섰다. 1960년대엔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 인근 사막에서 핵실험을 했으나, 알제리 독립 이후엔 1990년대까지 프랑스령 태평양 섬나라에서 핵실험을 계속해 왔다. 이 때문에 프랑스 시민단체의 반대는 물론 세계적인 반핵 여론에 부딪혔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프랑스 정부는 1973년 오일 쇼크를 겪자 원자력발전소를 확장해 나갔다. 반핵 운동에 부딪혔지만 정부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특히 1997년엔 국가공공토론위원회를 만들어 3억 유로 이상 사업에 대해 지역주민ㆍ시민단체와 정부ㆍ사업자가 협의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사업 진행 여부를 가리는 제도를 시행했다. 원전 사업은 주민들 승인을 받고 그대로 추진된 경우가 많았다. 시민운동 자체도 반원전보다는 반핵실험에 기울면서, 프랑스는 탈원전과 가장 거리가 먼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을 가동한 영국은 1990년대까지도 원전을 활발히 이용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1985년 영국은 원전 발전량 53.8 TWh로 세계 7위 국가였다. 하지만 1989년 영국 정부가 원전을 포함해 전력 사업을 민영화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이 탓에 1995년 건설 예정이었던 원전 계획이 취소되기도 했다. 당시엔 영국 인근 북해에서 석유도 나던 터라 원전을 줄여도 국가 에너지 수급에 큰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영국은 20년간 ‘경제성 부족’이라는 이유로 탈원전 행보를 걸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저탄소 발전이 필요해짐에 따라 원전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2015년 영국 정부는 원자력을 미래 에너지 안보를 위한 중요 에너지원이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현재까지 원전 신규 건설을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20년간 탈원전의 길을 걸은 뒤 원전 산업 기반이 약화돼 애를 먹고 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영국과 같은 나라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프라가 증발해서 원전 산업을 다시 살리기 힘들어졌다”며 “자의든 타의든 탈원전 이후에 원전 인프라가 사라지면 회복하기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확연히 갈라진 3개국
독일ㆍ프랑스ㆍ영국 3개국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대응에서도 크게 달랐다. 그 결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독일은 지리적으로 체르노빌과 가장 가깝고, 반원전 여론이 가장 강한 나라인 만큼 체르노빌 사고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주 정부 별로 방사능 위험 여론을 연방정부에 쏟아냈다. 1986년 환경ㆍ자연보존ㆍ원자력안전부를 창설하기도 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보수 성향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끌고 있던 독일은 바로 탈원전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98년 사회민주당과 반원전 색채를 띤 녹색당이 권력을 쥐자 독일은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기하는 탈원전 정책을 본격적으로 펴나가기 시작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노후 원자로 8기를 즉시 중지시켰다. 동시에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한다는 내용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발표하면서 탈원전의 길로 들어섰다. 노동석 연구위원은 “독일은 다당제로 운영되는 국가라 연정의 형태로 정권이 꾸려진다”며 “독일의 탈원전 행보도 1998년 연정에 참여한 녹색당의 탈원전 주장을 다수당이 정치적 타협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탈원전의 대가도 치러야 했다. 독일은 지난 5년간 신재생에너지에 1600억 유로를 쏟았지만 풍력ㆍ태양광 효율이 저조해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현재는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해 쓰는 처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가정용 전기요금은 MWh 당 333.9달러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으며 우리나라(MWh 당 102.4달러)의 3배 수준이다.
이 때문에 독일 내에선 무리한 탈원전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의 요헨 비트너 수석 논설위원은 지난해 초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독일 에너지 실험은 기술 발전에 여지를 두지 않는 이 나라(독일)의 종교적인 반핵 정서로 인한 것”이라고 썼다. 세계적 석학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도 “독일의 탈원전 결정은 편집증적”이라고 비판했다.
독일과 달리 프랑스와 영국은 체르노빌 이후에도 원전을 꾸준히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왔다. 지금도 기후변화 대응의 한 축으로 원전을 고려하고 있다. 프랑스는 한때 원자력 의존도를 75%에서 50%로 낮추겠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마크롱 대통령 당선 이후 감축 시점을 2030년 이후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원전회사 프라마톰(Framatome)을 방문한 자리에서 “원자력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프랑스 ‘에너지 다변화’ 전략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영국 역시 체르노빌 사고 이후 원전 감축 논의는 없었다. 현재 영국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일환으로 총 부지 6곳에 원전 13개를 새로 건설할 예정이다.
물론 유럽에선 에너지 전략에 혹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를 해결해줄 긴밀한 전력 네트워크가 있다. 정용훈 교수는 “유럽은 전력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어 독일이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위주 정책을 펴도 프랑스ㆍ덴마크ㆍ폴란드 등 주변국들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이 전력이 부족할 때는 프랑스로부터 사오고, 남아돌면 덴마크ㆍ체코ㆍ폴란드 등에 팔아서 전력 과잉 혹은 부족으로 인한 정전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한 나라들
체르노빌 사고 직후 독일 못지않게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는 독일보다 체르노빌에 더 가까웠던 이탈리아와 스위스다. 두 나라는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했다. 이탈리아는 체르노빌 사고 직후인 1987년 국민투표를 시행해 당시 가동 중이던 원전 4기를 폐쇄했다.
이후 이탈리아는 프랑스로부터 전력을 수입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적자국이 됐다. IEA에 따르면 2007년 이탈리아의 국내 전력 수입량은 1837 TWh로 생산량 307 TWh의 6배에 달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는 다시 원전 재가동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진 뒤 다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4%가 반대표를 던져 탈원전 정책을 되돌리지 못했다.
스위스 역시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반원전 시위가 거셌다. 이 영향으로 1990년 국회가 신규 원전을 짓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정했다. 이후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되면서 탈원전 국가가 됐다.
스웨덴도 국민투표를 시행했다는 점에서 앞선 두 나라와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스웨덴은 스리마일섬 원전사고(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일어난 원전 멜트다운 사고) 직후인 1980년 국민투표를 시행했다. 하지만 스웨덴은 국민투표로 정책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만 활용했다. 이후 스웨덴은 진보 내각이 들어서면 탈원전 기조를 띠지만, 보수 내각이 들어서면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는 등 내각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원전 정책이 바뀌는 편이다.
대만 역시 현재 진보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민주진보당 정권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대로 진행될지는 불투명하다. 대만 내 모든 원전을 2025년까지 중단하기로 한 전기사업법을 놓고 실시한 2018년 국민투표에서 59%가 반대하면서, 법안에서 ‘2025년’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사실상 반쪽짜리 탈원전인 셈이다. 대만은 오는 8월 국민투표에서 제4원전 건설 재개 여부를 가리는데, 재개가 결정되면 사실상 탈원전 정책이 좌초된다.
한국의 탈원전, 미래는?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을 열면서 탈원전에 돌입했다. 당시 문 대통령의 기념사를 보면 이번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는 근거 2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국민의 안전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안전한 대한민국은 세월호 아이들과 맺은 굳은 약속”이라고 했다. 다른 하나는 청정에너지 산업의 육성이다. 문 대통령은 “탈원전과 함께 미래 에너지 시대를 열겠다”며 “신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을 비롯한 깨끗하고 안전한 청정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원전을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이겠다”면서도 동시에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겠다”며 탈원전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월성 원전 1호기의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감사원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정부가 무리하게 탈원전을 강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졌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월성 원전 수사팀장이 인사 조처되면서 사건 전말이 어떻게 밝혀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검찰 수사 여부와 관계없이 정부의 탈원전 행보는 사실상 멈춰선 상태다. 그러다 보니 정부ㆍ여당도 ‘탈(脫) 탈원전’을 조금씩 준비하는 모양새다. 최근 들어 이낙연 전 총리 등 여당 인사들이 “탈원전을 재고해야 한다”는 취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야권 대선 후보들은 탈원전 반대 의견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권 성향에 따라 원전 정책 방향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에서 우리 상황은 독일보다는 스웨덴ㆍ대만과 비슷하다. 노동석 연구위원은 “다른 나라에서도 에너지 정책이 정권 성향에 따라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며 “국가 에너지 정책은 향후 수십 년을 좌우하는 것이니만큼 정치적 셈법이 아닌 과학적 접근을 통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중앙일보, 이정봉 기자
[출처: 중앙일보] ‘초스피드 탈원전’ 한국, 영국·프랑스 말고 왜 독일 따라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