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로 시작한 박노준.. 하지만 투수로서 이렇다하게 성적을 못거두고 투타를 오가며 계속 방황하게 되죠.. 결국 이광환감독 시절 완전히 외야수로 전향하며 조금은 안정된 모습을 보입니다만.. 아마 시절 그에게 기대하던 거물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광우는 나름대로 기대를 받으며 해태에 입단하지만.. 그의 입단 동기 조계현 이강철 등이 해태 투수진에서 잘 자리잡아가고 있는 동안 경쟁에서 도태된 그는 자리를 못잡고 헤매게 되죠.. 한마디로 '잉여자원'이 된 거죠..
91시즌 종료 후, 전통적으로 좌타가 부족하던 해태는(지금 기아와는 많이 다르죠) 유망주이지만 잉여자언인 이광우를 당시 최약체팀 오비에 넘기고, 박노준을 받아오게 됩니다..
트레이드 초반에는 분명 오비가 손해본 듯이 보였죠..
박노준은 해태에서도 그런대로 활약한 후 1년 뒤 바로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죠.. 꼴찌팀 쌍방울에서 그는 몬스터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94년 3할타율에 20도루를 기록하며 골든글러브까지 받은 시즌이 그나마 그가 '천재'로서의 면모를 보인 시즌이었죠..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불꽃같은 1년을 보낸 뒤 그는 또다시 부상으로 신음하며 라인업을 들락거리다 97년 시즌이 끝나고 초라하게 은퇴하게 되죠.. 뭐 다른 선수 같았으면 결코 실패라 할 수 없는 통산성적이었지만 바로 박노준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시즌이었습니다.
.이광우를 보자면.. 오비시절만 해도 그는 땜빵선발일 뿐이었습니다.. 김상진 강병규 권명철 진필중 등.. 그의 후진들이 급격히 성장하며 역시 뚫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거죠.. 그래도 팀이 필요할 때마다 그 자리를 충실히 메꿔주며 선수생명을 이어나갑니다.. 그의 진가는 98년부터 서서히 빛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진필중은 마무리로 돌고.. 김상진 권명철은 조로 증세를 보이던 오비 마운드에서 그가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주전을 꿰차기 시작한거죠.. 그 다음해 김상진이 트레이드되면서 그의 입지는 더욱 굳어집니다.. 그동안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팀에 기여를 해 온 보상을 받기 시작한 거죠.. 그 대가였을까요.. 00시즌에는 36세라는 늦은 나이에 그의 커리어 처음으로 두 자리수 승수까지 기록합니다.. 오비가 두산으로 바뀌면서 가장 큰 약점은 역시 선발진이었는데(01년까진 그랬죠)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준 선수가 바로 이광우였습니다.. 재미있게도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00년에는 군산상고, 해태 시절의 지기 조계현과 두산에서 또다시 한솥밥을 먹게 되기도 합니다.. 결국 그는 01년까지 두산에서 뒨 후, 02년 엘지에서도 한시즌을 뛴 후 은퇴하게 됩니다..
단기저으로 봣을 때는 분명 해태가 윈이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꾸준히 10년동안 마운드를 지켜준 이광우를 얻은 오비가 분명히 윈이라 할 수 있겠죠..
알다시피 현재 박노준은 해설위원으로, 이광우는 친정팀 기아 투수코치로 활약중이죠..
그로부터 8년 후 일어난 최원호-심재학 트레이드도 그와 너무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잇습니다..
아마시절 둘은 어떤 선수였냐면..
심재학은 충암고-고려대를 거치며 그때 이미 역디로 따져봐도 그를 따를 자가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의 좌타거포였죠.. 프로입단에서는 그보다 1년 선배인 김재현은 자신이 고교시절 가장 동경하는 선수가 심재학이라 밝힌 적도 있습니다.. 94년 독주우승을 차지했던 엘지는 심재학까지 얻어서 완전 겹경사 분위기였던 기억도 나네요(오비는 울며 겨자먹기로 송재용이라는 투수를 선택하게 되고요)..
최원호를 보자면.. 뭐 이 선수도 인천고-단국대를 거치며 나름대로 지역 유망주였습니다.. 인천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이름깨나 있던 선수였죠.. 하지만 심재학의 이름값에 미칠 바는 못됐죠..
프로에 입단한 뒤에는 어땠냐면..
일단 심재학.. 뭐 나름대로 매해 15홈런에 6~70타점정도 올리며 4번타자 역할은 해줬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누구입니까.. 바로 '심재학'이었기에 그의 활약상은 입단 당시에는 터무니없이 못미치는 것이었습니다.. 암튼 심재학의 타격능력에 실망한 것이었을까요.. 엘지는 그를 투수로 전향시키는 대실수를 하고 맙니다.. 결과는 팀에나 개인에게나 안좋게 돌아갔죠..
최원호를 보면.. 나름대로 기대를 받으며 현대에 입단했으나.. 정민태 김수경 정명원 위재영.. 그가 들어가기에 현대 마움드의 벽은 너무 두터웠습니다.. 결국 앞에서 말했던 이광우마냥 현대에서는 잉여자원으로 남게 되죠.. 물론 98년 10승을 거두며 현대우승에 일조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결국 투수진의 붕괴 때문에(뭐 엘지 코치진이 자초한 일이지만요) 99시즌 6위에 머문 엘지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투타에서 애매해졌다 생각한 심재학을 내주고 최원호를 데려옵니다.. 당시에 봐서는 누가 봐도 엘지가 미친짓 한거였죠.. 저도 반대했던 기억이 나고요..
첫 2년간은 과연 엘지의 손해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심재학은 현대에서 시즌초반 맹타를 휘두르며(시즌 막판 침체로 타율은 그리 높지 않게 마감합니다만) 팀 우승에 일조한 후.. 01년 시즌 개막 전 두산의 간판타자 심정수와 맞트레이드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죠.. 그리고 그 시즌은 심재학이 지대로 미친 시즌이었고요.. .344의 고타율을 선보이며 두산의 우승에 큰 기여를 하며.. 심정수 없이는 못살거 같던 두산팬들에게서 잠시나마 심정수라는 존재를 잊게 합니다.. '심재학 가는 팀에 행운이 있다'는 말도 나오게 되죠..
반면 최원호는 첫2년간 부상과 컨트롤 난조 등으로 거의 등판하지 못하며 팀 마운드에 별로 보탬이 되지 못하고요..
하지만 02년부터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합니다..
불꽃같은 01년을 보냈던 심재학.. 하지만 그의 화려한 시절은 그 때가 끝이었습니다.. 02,03년 언제 그랬냐는듯 2할5푼에도 못미치는 타율에 연일 삼진,병살로 두산팬들에세 '심죄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그리고 03시즌 종료 후.. 한때는 간판타자 심정수와 맞먹을 정도의 가치이던 그는(물론 두산의 보복성도 있엇지만) 박진철, 황윤성이라는 무명선수 둘과 맞바꿔져 기아로 가게 되죠.. 기아에서도 그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심죄악'으로 불리는 상황이며.. 최근 행보를 봐서도 재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의 10년선배 박노준이 걸었던 길과 너무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거죠.. 선수생활이 얼마 안남은거 같습니다..
최원호를 보자면.. 02년 6승11패로 그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엘지 선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포스트시즌에서도 좋은 피칭을 선보여 그의 존재를 더욱 더 각인시키게 되고요.. 이후 03,04년에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엘지의 선발진을 책임지게 되며, 성실하게 야구해온 보상일까요.. 05년, 그는 33살이라는 나이에 13승을 거두며 '에이스'라는 칭호를 달게 됩니다.. 비록 지난해에는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습니다만.. 올해는 선발진에서 꿋꿋이 버티며 거의 새 얼굴들로 채워준 엘지 선발진에서 축의 역할을 해 주고 잇습니다.. 물론 최근에 부진하긴 하지만.. 그의 성실하고 꾸준한 자세로 볼 때 당분간 은퇴 걱정은 없어 보입니다.. 뭐 도 혹시 모르죠.. 내년에 36살이 되는 그가 이광우마냥 늘그막에 또한번 10승 할지(사실 이광우와 비교하며 최원호가 10승 한번 해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 트레이드도.. 당장은 엘지가 손해였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 화려하지만 그 기간이 짧앗던 심재학보다는.. 화려한 맛은 없지만 꾸준히 자리를 지켜준 최원호를 데려간 엘지가 윈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도 팀케미면에서 최원호>>>넘사벽>>>심재학이죠.. 그 당시에는 반대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 트레이드에 아쉬워하는 엘지팬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