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여행은 고역스럽다. 보기에는 아름답고 좋지만, 여행지까지 운전하기가 너무 고되기 때문. 하지만 기차를 타고 눈을 감상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차가 달리는 길을 따라 소담스럽게 피어난 하얀 눈꽃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태백선의 묘미는 영월부터. 영월에서 태백까지는 한 시간 남짓한 거리로, 여기서부터 눈 덮인 겨울산이 하나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증산과 사북, 추전역 구간은 눈산과 하얀 들판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순백의 세계. 승객들 모두 마치 창밖에 또 하나의 세상을 보기라도 한 듯 시선이 고정되게 마련이다.
태백선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정암터널과 추전역. 길이가 4.5km인 정암터널은 철도 터널 중 가장 긴 터널로 통과하는 데만 무려 8분이 걸린다. 추전역은 해발 855m로 우리나라에서 높은 곳에 있는데, 눈이 한번 내리면 잘 녹지 않고 겨우내 쌓여 있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자마자 새하얀 눈 천지가 펼쳐지므로 누구나 감동하는 최고의 구간이다. 하지만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눈꽃열차’ 상품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면 추전역에 내릴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 열차가 하루에 두 번 정차할 뿐인데다가, 주변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혼자 추전역에 내려 아름다운 눈의 나라를 만끽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태백선 눈꽃여행은 태백산 눈꽃 트레킹을 겸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태백산은 해발 1,567m로 높은 편이지만 산세가 험하지 않아 겨울 눈꽃 트레킹의 최적지로 손꼽힌다. 정상에서는 동해 일출과 백두대간의 장쾌한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태백선 여행 Info / 태백역
1. 태백산 눈꽃 트레킹
해발 1,567m의 명산. 백두대간의 한 자락이자 남한 산들의 모태이기도 하다. 겨울 눈꽃 트레킹 장소로 인기가 높은데, 암벽이 적고 경사가 완만할 뿐 아니라 주목 군락과 어울린 설경이 설화의 극치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부분 유일사에서 시작, 장군봉을 거쳐 정상인 천제단에 오르는 4km 구간을 선호한다. 산행 시간은 왕복 4시간 정도. 맑은 날이면 정상에서 동해를 볼 수도 있다.
미리 비닐 포대나 썰매를 준비해서 천제단 아래 당골광장에서 스릴 만점 눈썰매를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 산행을 할 때는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고, 방한 장비를 단단히 갖추어야 고생스럽지 않다.
* 태백역에서 광장을 지나면 바로 버스 정류장. 태백산도립공원이나 유일사로 가는 상동 방면 버스를 탈 것. 약 1시간마다 운행. 소요 시간 30분.
2. 황지연못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 시내 한가운데 있어서 찾기 쉽다.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며 매일 5,000t의 물이 솟아난다. 가뭄이나 장마 중에도 그 수량이 일정한 것이 신비롭다. 전설에 따르면 황씨 성을 가진 소문난 구두쇠가 노승을 욕보여 집터가 연못으로 변하면서 황지연못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 명수(名水) 100곳 중의 하나.
* 태백역에서 이정표를 보고 걸어서 찾아갈 수 있다. * 소요 시간 10분
3. 용연동굴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지대인 해발 920m에 있는 석화 건식 동굴. 산 아래 매표소에서 용연열차라는 작은 열차를 운행하기 때문에 편리하게 올 수 있다. 동굴의 길이는 834m. 전부 둘러보는 데 약 한 시간쯤 걸린다. 동굴 대형 광장에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리듬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물길이 10m까지 치솟는 대형 분수도 볼 만하다. 계단을 따라 동굴로 내려가면 대략 1억5,000∼3억만 년 전에 생성된 다양한 종유석이나 석순, 동굴산호, 유석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무기의 눈물’, ‘죠스의 무덤’, ‘용의 침실’, ‘지옥문’ 등 재미난 이름들이 눈에 띈다. 동굴이 좁고 낮은게 흠이지만 다른 동굴에 비해 가까이서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 매력.
* 태백역 앞 시내버스터미널에서 용연동굴(화전)가는 43번 버스를 탈 것.
바다 보며 가는 기차 여행 / 강릉 영동선
청량리에서 꼬박 7시간 거리. 지겹도록 긴 시간이지만 그 대가는 확실하다. 묵호항역을 시작으로 찬란하게 펼쳐지는 짙푸른 해안선을 바라보노라면 왜 강릉인지 다시 한 번 확인받는 기분이다.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이라는 정동진역이 있고, 눈부신 일출이 있으며, 약속의 땅 강릉이 있는 이 구간은 그 식지 않는 인기를 증명하듯 사시사철 여행객으로 붐빈다. 원래 강릉은 기차 여행의 명소.
평일에도 자주 정체되는 영동고속도로 때문에 직접 차를 몰고 1박 2일의 빠듯한(?) 일정으로 찾기에는 너무 먼 것이 그 이유다. 또 영동선 흥전역과 나한정역 사이에 우리나라 유일의 스위치백(Switch-Back) 구간이 있는 것도 이 여행만의 색다른 묘미. 이 구간은 험준한 산악 지형이라 고도 차이가 크다 보니 철로를 일 자로 만들지 못하고, Z 자형으로 만들어 전진·후진을 반복하여 오르도록 했다. 즉 열차가 뒤로 가는 놀라운 구간인 셈.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 경험이다.
장장 7시간의 기차 여행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야간 기차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 이때는 정동진역 표를 끊는 것이 현명하다. 새벽 7시경, 정동진역에 도착하면 황홀한 일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정동진역에서 강릉까지는 불과 20여 분 거리이므로 정동진해수욕장 풍광을 충분히 감상한 후, 강릉으로 향하면 된다. 정동진역과 강릉역 사이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는데 4,000t급의 대형 함정이 바로 그것. 1996년 북한의 잠수함이 남침했던 자리에 설치한 함정전시관이다. 강릉은 역 주변 대중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버스를 이용해 유명 관광지로 갈 수 있도록 적절하게 배려해서 그야말로 기차 여행의 적지. 오너 드라이버의 확실한 휴가를 책임진다.
영동선 여행 Info / 강릉역
1. 경포해수욕장
6km에 달하는 길고 넓은 모래밭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지친 도시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차가운 바람을 피해 연인의 손을 잡고 거닐기 좋은 코스. 바다를 보며 커피를 즐기는 전망 좋은 카페가 많으므로 따뜻한 커피숍에 앉아 겨울 바다를 감상해도 좋다. ‘보헤미안(033-644-1826)’은 제대로 된 커피를 내는 집. 경포호, 경포대, 경포해수욕장이 한 곳에 모여 있어서 얼마든지 걸어서 다닐 수 있으며 인기 관광지답게 나이트클럽, 식당, 숙박지 등의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경포해수욕장 역시 일출이 아름다운 것이 특징.
* 강릉역 광장을 가로질러 우측으로 가면 바로 버스 정류소. 이곳에서 202번 버스를 타면 경포해수욕장 앞에 내릴 수 있다.
2. 오죽헌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율곡 이이가 태어난 생가이자 외가. 오죽헌(烏竹軒)이란 이름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烏竹)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찬바람에 ‘스삭’거리는 오죽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청명한 느낌. 반듯한 건물이나 정갈한 마당은 보는 것만으로도 곧은 성품이 저절로 우러나는 듯 착각이 들 정도다.
특히 빼놓지 말고 둘러보아야 할 곳은 신사임당이 율곡의 태몽을 꾸었다는 몽룡실. 크기는 자그마하지만 고풍스러움이 한껏 묻어나는 전형적인 조선 초기 별당 건물로 보물 제165호로 지정돼 있다. 이외에도 문성사, 자경문, 어제각 등의 건물이 있다. 오죽헌 바로 옆에는 강릉오죽헌시립박물관(033-640-4457)이 있으니 함께 둘러볼 것.
에디슨이 1877년 발명한 축음기 틴호일에서 최신형 오디오까지 1,600여 점의 축음기를 전시하는 박물관. 자그마한 겉보기와 달리 재미있고 신기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외장형 원반축음기와 내장형 나팔축음기는 물론, 다양한 라디오와 옛날 텔레비전, 전축과 오디오가 전시되어 있으며, 10만여 장의 음반을 소장하고 있다. 한쪽에는 음악감상실도 있어서 축음기 소리에서 현대의 CD, LD까지 감상할 수 있다.
* 경포해수욕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222, 223, 224번 버스를 타고 삼익맨션 앞에 내리면 된다. 맨션 뒤편에 위치 * www.edison.or.kr
강 따라가는 기차 여행 / 삼랑진 ~ 구포 경부선
오전 11시에 서울을 떠난 기차가 대구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추수 끝난 겨울의 풍광이 차창을 지나간다. 청도 감나무밭과 밀양 자갈밭을 지나 기차는 어느 새 삼랑진역에서 기적을 울린다. 낙동강과 밀양강이 합쳐져서 또 한 물결을 이룬다는 삼랑진에서 기차는 푸른 살빛의 낙동강을 만나 구포역까지 31.1km를 줄곧 함께 달린다. 이산 저산에 부딪히면 부딪히는 대로 돌아 흐르는 강을 따라 굽이돌면서 기차는 갈대 서걱이는 원동과 물금을 지나 바다가 지척인 구포까지 간다. 때로는 새끼 품은 어미처럼 옆구리 가까이에 강을 끼고 달리고, 때로는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는 아비처럼 강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달린다.
삼랑진을 떠난 기차가 원동에 닿는 건 늦은 오후 무렵이다. 옆구리께로 바짝 파고드는 강물에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기차가 들어서는 원동역은 ‘낙동강의 정동진역’에 해당하는 간이역. 한낮에는 은빛 강물이 은어처럼 차창을 타고 오르고 황혼 무렵엔 붉은 갈대밭 사이로 물새 떼 날아오르는 국내 강변역의 백미다. 손금 위로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원동의 은빛 강물을 뒤로하고 기차는 또 달린다. 강으로 뿌리를 내린 토곡산 자락을 넘어 물금 충적 지대에 자리 잡은 물금역을 지나 양산천 호포철교를 건넌다. 햇살 잦아드는 오후 4시경. 드디어 기차는 낙동강 철길 여행의 종착역인 구포에 이른다. 하지만 기차는 더 이상 강을 따르지 않는다. 오랜 시간, 먼 데서 흘러온 강은 강대로 기차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을숙도를 거쳐 부산 다대포 앞까지 흘러간 후에야 강은 바다에 몸을 누인다. 낙동강 기차 여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인 삼랑진 ~구포 구간을 여행할 때는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를 이용해도 되지만, 낙동강의 운치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대구에서 부산을 잇는 기차로 갈아타는 것이 좋다.
경부선 여행 Info / 원동역·구포역
1. 원동역
플랫폼에서 낙동강의 잔잔한 풍경이 보일 정도로 강과 역이 가깝다. 그래서 누군가는 원동역을 ‘속세와 피안 사이를 오가는 문’이라고 했던가. 원동역이 끼고 앉은 낙동강, 그 강가에서는 아침마다 안개가 주인 노릇을 한다. 시정 거리가 1m도 안 될 정도로 아득하고 막막한 안개 속. 안개 걷히고 물안개 피어오르면 강물은 어느 새 갈치 비신흥사 영축산 기슭에 자리한 신라시대 고찰.
최대 볼거리는 국보 제1120호로 지정된 대광전. 소박하고 고풍스런 아름다움이 절 안을 은은하게 채운다. 대광전 안의 관음삼존벽화 감상도 잊지 말것. 관음보살이 물병 대신 물고기를 들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고려시대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을 감싼 주변 풍광과 산세도 빼어나다. 늘 같은 은빛이다. 지난 여름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갈대밭이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낙동강과 영포천이 만나는 원동철교 아래 강변에서 원동역으로 이어지는 갈대밭은 여전히 고운 얼굴로 객을 반긴다.
2. 신흥사
영축산 기슭에 자리한 신라시대 고찰. 최대 볼거리는 국보 제1120호로 지정된 대광전. 소박하고 고풍스런 아름다움이 절 안을 은은하게 채운다. 대광전 안의 관음삼존벽화 감상도 잊지 말것. 관음보살이 물병 대신 물고기를 들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고려시대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을 감싼 주변 풍광과 산세도 빼어나다.
태백에서 시작된 낙동강물이 굽이굽이 흘러 닿는 마지막 땅 부산. 역 자체 풍광보다 역을 벗어나 만나는 구포시장이 더 정겹다. 왁자지껄한 부산 사투리와 함께 만나는 정겨운 인심이 초겨울의 한파를 녹일 정도. 인근 금정산성과 을숙도에 가보는 것도 좋다. 해 질 녘에 구포역에 도착했다면 은빛 갈대와 철새의 군무가 있는 을숙도가 제격이고, 한낮이라면 금정산성에 올라보자.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도보 10여 분 만에 금정산성과 낙동강의 풍광을 담을 수 있다.
4. 갈대와 새들의 천국 ‘을숙도’
‘새가 많고 맑고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을숙도. 낙동강 하구언 준공과 갈대밭의 무분별한 개발로 주변 환경이 나빠졌지만 최근 철새가 다시 찾아들기 시작했다.
황오리, 가마우지, 흰죽지, 논병아리 등이 많지만 운이 좋으면 천연기념물인 황새, 저어새 등도 볼 수 있다. 탐조는 을숙도 주변 어디에서나 가능하다. 하구언 부근, 휴게소 서쪽 물길, 장자도 등이 주요 탐조 포인트. 해 질 무렵 갈대밭 위를 무리 지어 나는 철새의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구포역에서 사하구 하단행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 하단역에서 하차 후 20여 분 걸으면 된다.
첫댓글 어찌 이리 아름답고 좋은 곳을 ...단풍공주님 멋져부러~~~~~
^^...사진구경잘했어요~~.역시..눈올때..강원도..최고...ㅎㅎ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