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선거보다 교육감 선거가 더 중요한 이유 - 좌편향 문화 정상화의 첫걸음은 결국 교육현장에 답 있다
이원우 <미래한국 기자> 2014-05-21
교육이 문화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교육의 왜곡이 문화의 편향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파동을 보자. 그나마도 개선할 점이 적지 않았던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하면 천안함 문제에 대해 ‘북한의 폭침’이라고 제대로 짚어 말한 책은 없었다. 이 왜곡의 퍼레이드에는 재벌이 운영하는 출판사 두산동아의 교과서도 동참했다. 북한의 폭력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아이들이 문화 소비자로 등장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는 대로다. 이미 인터넷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스탈린, 히틀러와 비슷한 반열에 올라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호치민의 탄생일(5월 19일)에 맞춰 그의 인생과 사상을 미화하는 글을 메인화면에 띄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체 게바라의 인생을 미화한 동화책을 2013년 우수교양도서로 선정했다.
인터넷에서 이승만-박정희는 스탈린-히틀러와 비슷한 취급
그런데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고, 문제 제기하는 이도 거의 없다. 비정상과 왜곡이 정상의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문화판의 비정상을 바로잡으려면 결국 귀결점은 교육 현장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유로 나는 교육감 선거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있는 시장(市長) 선거보다 중요하다고 감히 주장한다. 학생들이야말로 미래와 문화의 결정권자이며 교육감이야말로 현장의 색채를 바꿀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교육감 선거를 치르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6월 4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각 행정구역의 교육감 선거는 지금이 2014년이라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많은 허점을 갖고 있다. 대다수의 교육감 후보가 빚을 질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비극은 그나마 잘 알려져 있다. 승자도 패자도 그러한데, 후보 등록을 위해서는 4,000만 원의 공탁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정 비율 이상 득표하면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비용을 돌려주지만 전부 주는 건 아니다.
그나마 투표가 끝난 뒤에 준다. 즉 상당 액수의 리스크를 오롯이 감수할 배짱이 없으면 언감생심 교육감의 꿈을 꿀 수 없다는 얘기다.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후보들이 사전에 선별되는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유권자들이 헷갈릴 만큼은 충분히 후보가 난립한다. 어느 정도 성향이 비슷한 후보들끼리는 스스로 단일화를 하겠다고 기구도 만들어 보지만 약속이야 언제든 깨면 그만이다.
교육감 선거 무관심은 교육현장의 불확실성 높인다
투표용지에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인쇄된 후보들이 표를 많이 가져가는 이른바 ‘1번 효과’ ‘2번 효과’에 이르면 낯이 다 뜨거워진다. 휴일의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투표장에 간 것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가서는 ‘도장 찍기 연습’을 하고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교육감 후보의 난립은 무관심을 불러왔고 그 무관심은 교육현장의 불확실성을 높여놓는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절반에 해당하는 서울과 경기의 교육감선거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를 보자.
세월호 참사는 뜻밖에도 한국인들이 교육감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 이 참사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교육감에 대해서는 별 말들이 없었던 것이다. 모두의 아쉬움을 무한대로 배가시켰던 ‘전원 구조’ 오보의 진원지 중 하나가 경기교육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몇이나 될까.
대통령 퇴진론이 불거진 것과는 달리 김상곤 前경기도교육감이 도지사 경선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는 아예 ‘무상버스’라는 공약까지 내걸었던 터였다. 뿐만 아니라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무상급식 등 교육현장을 정치의 격전장으로 만든 수많은 정책들이 그의 손에서 나온 바 있다. 지금 경기도는 각종 좌파 교육정책의 원산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곤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경기도교육감 후보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의외의 거물 이재정 前통일부장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재정에 대해 ‘통일부 장관 출신이 교육에 대해 뭐 아는 게 있겠냐’고들 말하는데, 뭘 모르는 소리다. 이재정은 다른 누구와 비견해도 절대 지지 않는 업적 아닌 업적을 갖고 있다. 바로 성공회대학교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 학년 학생 숫자가 100명에 학과도 2개밖에 없었던 이 신학교는 이재정 부임 후 약 20년 만에 어엿한 ‘좌파의 씽크탱크’가 됐다.
경기도는 좌파 교육정책의 제1번지?
교수진만 해도 통혁당의 신영복을 포함해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 좌파 역사학계의 대부인 한홍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딸이자 노동운동가인 백원담, 마르크스 경제학 대부인 김수행 등이 군집해 마치 좌파 인물 올스타 쇼를 보는 느낌이다. 변호사 시절 박원순 시장은 “나는 성공회대 학생이고 싶다”는 글을 쓴 적도 있는데(2010년), 이 모든 게 우연일 리 없다.
“성공회대는 캠퍼스도 작고 대학 규모도 작다. 양으로 따지면 그렇다. 그러나 질로 따지면 대한민국에서 아주 큰 대학이다. 거기에는 좋은 교수님과 좋은 커리큘럼이 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헌신하게 만드는 미래의 비전이 있다. 내가 다시 젊어 대학을 간다면 나는 성공회대 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훌륭한 업적은 물론 공짜로 완성되지 않았다. 이재정과 성공회대의 성장에 자금을 지원한 것은 한화그룹이다. 1997년부터 한화의 김승연 회장은 성공회대 이사장을 겸임했다. 그래서 성공회대의 대학본부 건물 이름은 지금도 ‘승연관’이다. 反재벌 담론형성에 여념이 없는 ‘씽크탱크’를 키워놓은 재벌이 바로 한화다.
한화건설은 성공회대의 새천년관 건립공사를 해주는 과정에서 10억 원을 깎아주는 호의를 보인 적도 있다. 그런데도 이재정은 한화와의 친분을 부인한 일이 있다. 한화그룹으로부터 대선 불법자금 10억 원을 양도성예금증서(CD) 형태로 수수 받아 노무현 후보 캠프에 전달한 혐의를 받았을 때 “내가 한화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것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사제 출신 이재정이 한화와의 친분을 부인한 것도 꽤 충격적인 사실 아닐까.
박원순 시장 “나는 성공회대 학생이고 싶다”
오히려 이재정이 어떻게 통일부장관이 됐는지가 사실 더 의문이다. 그는 장관 청문회 당시 이재정은 북한인권과 관련된 질의에서 “저 내용들(북한인권 유린)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해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재정이 출마한 시점에서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재정 후보가 긴 시간 너무 많은 거짓말로 한국사회에 너무 깊은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좌파 인사로 꼽히는 서강대학교 손호철 교수도 이재정에 대해 출마를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성공회대의 영향력은 서울교육감 선거로도 이어진다. 현재 좌파진영 단일후보로 추대된 조희연 후보가 바로 성공회대 교수다. 신영복에 이어 영입된 그는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일반 유권자들에게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인물임에도 그가 좌파 교육감 단일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이다.
서울 교육감 후보들의 위험한 곡예
그가 서울교육감 출마를 선언했을 때 행사장에는 이재정 前 통일부 장관을 비롯해 김상곤 前 경기도교육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김중배 前 참여연대 대표, 안경환 前 국가인권위원장,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등의 좌파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성공회대로 대표되는 이들의 끈끈한 인맥은 이번 선거에서도 상당한 조직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많은 유권자들은 ‘조희연이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었나’ 놀라게 될 것이다.
반면 서울교육감의 우파 후보는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대립의 두 축은 현직 교육감 문용린과 새롭게 등장한 고승덕 변호사다. 물론 이 중에서 고승덕 변호사를 ‘보수’ 후보로 볼 수 있느냐는 다소 의문이다. 한나라당 당적으로 금배지를 달았다는 점 때문에 보수 인사로 분류되고 있지만 그가 의원 시절 발의한 법안을 보면 굳이 우파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고승덕 의원은 고교 무상교육 추진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몇 안 되는 교육관련 법안인데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고교 무상교육에 대한 생각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면 오히려 조희연 후보 쪽에 가까이 서 있을 가능성도 낮지 않다(문용린 후보는 고교 무상교육 반대/조희연 후보는 찬성). 다만 고승덕 변호사는 출마 이후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애당초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좌파와 우파를 모두 비판하며 ‘진영 논리’에 섞일 것을 거부하고 있는 고승덕 변호사가 문용린 후보와 단일화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어부지리로 조희연 후보가 득을 보는 상황 속에서 위험한 외줄타기가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선거의 재탕인가? 당시 득표율이 34.3%에 불과했던 곽노현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파 후보가 6명이나 됐다는 비밀이 숨어 있었다.
서울교육감이 집행하는 예산이 무려 7조 원
서울교육감이 집행하는 예산이 7조원임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상황이다. 서울과 경기권의 학생 숫자를 합치면 대한민국의 절반이다. 교육감은 이와 같은 무관심의 음지에서 멋대로 뽑히고 활약하도록 둬도 될 정도로 간단한 자리가 아니다. ‘교육 대통령’이라는 별명에 준하는 막대한 예산과 인사권은 교육현장의 정체성과 문화의 흐름 그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시장선거보다 중요한 교육감 선거는 건강한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을까. 시장을 잘못 뽑으면 현재를 망치지만 교육감을 잘못 뽑으면 미래를 망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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