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길게 이어진 좁은 오솔길.
상쾌한 산들바람이 한가롭게 발걸음을 옮기는 세 사람의 옷깃을 스쳤다.
"반형(潘兄)! 이거 맨 걸리는 게 흑마방 놈들뿐이니 한바탕 쓸어 버리지 않고
는 걸음을 옮기기도 쉽지 않겠소."
방금도 삼십 명은 족히 넘는 한 떼의 사내들과 스친지라 금사익의 말은 과장
이 아니었다.
"그, 그러게나 말입니다."
엉겁결에 죽은 모친의 성을 따라 반운천(潘雲天)이라고 이름을 댄 통에 졸지
에 봉래신장까지 반씨로 만들어 버린 설운교는 더듬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누가 봐도 몸이 불편한 사람의 행동이었고 금사익은 그 이유까지 알고 있는(?
) 사람이었다.
"허어, 반형의 몸에 아직도 고질병의 기운이 남아있는 모양이니 걱정입니다.
어르신!"
본 가에서 약재가 떨어졌다는 전갈이 와서 내친 김에 북경으로 약을 구하러
간다고 둘러댄 봉래신장 역시 격의 없이 친근감을 드러내는 금사익의 태도가
부담스럽기만 했다.
"안 그래도 걱정이 태산이네."
금사익이 짐작하는 것과 다르긴 해도 봉래신장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필 본가에서 보낸 사람을 피해 설운경을 뒤쫓은 금사익과 마주칠 것이 뭐란
말인가.
봤다는 사람도 없이 갑자기 종적이 끊긴 표행을 찾느라 속이 타는 판에 곳곳
에 흑마방의 인물들이 득실거리지, 금사익을 떼 놓을 방도는 없지…….
봉래신장으로서는 이래저래 걱정이 태산이었다.
강을 건너자마자 펼쳐진 참혹한 지옥도를 대했을 때 비위가 상하고 저절로 탄
식이 새어나왔으나 접전의 흔적이 없는 점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시체들이 모두 폭약에 당했다는 것은 설운경이 아직
무사하다는 반증인 것이다.
봉래신장이 남모르는 탄식을 속으로 삼키는 그 순간.
이미 봉래신장이 다시 보기 힘든 절세 고수임을 알아차린 금사익은 나름대로
결심을 굳혔다.
이들과 함께라면 위험에 처한 자신의 신부를 지키기도 쉬울뿐더러 본가에 돌
아가서 은거기인을 소개하면 아버지의 책망을 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다. 게다가 무슨 약재인지는 몰라도 무적세가에서 손을 쓰면 못 구할 약재가
없으니 이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좁은 오솔길을 떼지어 오가는 또 한 무리의 무림인을 흘끔거리던 금사익이 넌
지시 속내를 드러냈다.
"저…… 이자들이 아무래도 이 근처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 모양인데 반형의
병세가 웬만하다면 한번 알아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흑마방
놈들이 하는 짓이 좋은 일일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봉래신장도 점점 늘어나는 흑마방 무리들이 걱정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떼 놓
는 것은 차차 생각하더라도 설운경의 안전을 지키는 게 우선 이었다.
"제 몸은 그리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놈들에게 먼저 당한 일도 있고 그냥 갈
수는 없지요!"
행여 봉래신장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나올까봐 재빠르게 선수친 설운교가
짐짓 가슴을 쫙 펴며 호기를 부렸다.
봉래신장은 내심 씁쓸한 심정을 가누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 비록 먼 곳에 은거해 산다고 해도 일신에 무공을 익혔으니 무림의
일에 전혀 무관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흑마방과는 우리 천아가 이미 악연을
맺었으니 놈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세."
솔직한 성품을 지닌 젊은이답게 금사익이 금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기뻐할
때 봉래신장의 준엄한 눈길이 설운교에게 향했다.
"너는 아직 온전한 몸이 아니니 절대 함부로 설치지 말고 이 할아비의 말을
따르거라. 알겠느냐?"
"깊으신 할아버지의 뜻, 명심하겠습니다."
설운교는 진심을 담아 다소곳하게 대답했다.
장강을 건너는 나룻배 위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금사익의 이름을 들었을 때,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순간적으로 아득하게 정신을 놓칠 뻔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불쑥불쑥 번갈아 고개를 내미는 적개심과 묘한 호감 따위
는 중요한 게 아니었고 지금 이 순간, 오직 언니의 안전만이 그녀의 심중을
채우고 있었다.
항주의 의원에서 서둘러 떠나온 할아버지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린 설운교인
것이다.
"그럼요! 이렇듯 손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어르신의 뜻이야말로 깊고도 갸륵한
것 아니겠습니까?"
남의 속도 모르고 신나서 떠들어대는 금사익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으니 설
운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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