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승조스님
병아리도 닭인가?
- TV나 방송을 보면, 스님들께서 '깨달았다' '견성했다' 하실 때 어떤 강렬한 체험을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그런 체험을 하기 전과 이후는 어떻게 다른가요?
세상이 달리 보이나요? - 아주 많이 달라 보입니다. 그것은 마치 병아리가 계란을 깨고 나와 세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계란 속에서 보는 세상과, 나와서 보는 세상은 확연히 다릅니다. (알=에고)
- 그런 체험을 한 번 하고나면 깨달음의 완성인가요?
돈오돈수나 돈오점수와 관련해선 어떤가요? - 그런 체험(깨달음)을 '돈오'라고 할 때, 대개 아직 습(習)은 남아 있습니다. 담배 피면 안 된다, 철저히 깨달았지만 그 습관이 남아 있는 것처럼..
- 그럼 아직 업식이 완전 정화된 것은 아니군요. 8식을 완전히 넘어서진 못했군요.
강렬한 체험이 상당한 무아(無我)의 체험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무아의 경지는 아니군요?
- 그렇지만 그런 상태만 되면 완전한 깨달음까진 확실히 갈 수 있습니다. 마치 알을 깨고 나와 '병아리'만 되면, 머지 않아 '닭'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병아리가 닭이 되지, 참새나 뱁새가 되지 않은 것처럼..
그런데 이 병아리를 닭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의 문제입니다. 아직 날지도 못하고 알도 낳지 못하고 그런데 관연 '닭'이라고 할 수 있느냐..
우리가 '병아리'라는 말을 별도로 사용하고 있는 건 역시 그 차이점 문입니다. 병아리가 참새나 뱁새가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모든 병아리가 꼭 닭으로 성장하는 건 아닙니다. 중간에 죽을 수도 있고..
그래도 닭이다 → '돈오돈수' 병아리는 그냥 병아리일 뿐이다. 더 자라야 '닭'이다 → '돈오점수'
돈오하여 이치를 깨달음은 부처와 같지만 다생으로 익혀온 습기는 오히려 생생하구나. 폭풍은 잠잠하나 아직 파도는 남아 솟구치듯 이치는 분명해도 제 버릇 그대로일세. <경허스님>
- 그런 체험 후 쭉 수행을 해서.. 예를 들어 '아라한'의 경지 부처님 10대제자 수준의 경지에 까지 갔다고 할 때.. 그 '아라한'과 '부처님'의 깨달음은 같은 수준인가요? 아니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 그 능력에 있어서 월등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아리가 다 자라서 완전히 성장한 닭이 된 것을 '아라한'이라 한다면
'부처님'의 경지는 닭의 최고 능력 이상.. 닭이면서도 꿩보다도 더 월등한.. 그런 능력을 보이는 경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알(범부중생)] → [병아리(깨달음의 체험)] → [닭(아라한)] → [닭이상의 능력(부처님)]
- 명상이나 기도 중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왜 그럴까요? - 마음이 맑아지면서 업식이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보통 땐 업식이 가만히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지내는 것을 아주 힘들어합니다. 마음이 조용해지면 자신의 업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걸 두려워해서 그걸 덮기 위해서 마음을 산란하게 합니다. TV나 쾌락을 추구하면서..
탁한 물을 조용히 두면 점차 맑아지면서 바닥에 쌓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게 보기 싫어서 물을 확 휘저어 더 탁하게 해서 바닥의 오물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처럼..
그러나 똥을 비닐로 덮어 놓으면 당장은 냄새가 안 나지만 속으로는 계속 썩어 들어가 결국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참고 참고 참다가..
그런데 그런 업식은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면 드러나게 됩니다. 불법으로 마음이 맑아지면서 업식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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