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
1962년 10월 5일
이언 플레밍 원작 첫 007 영화 ‘살인번호’ 개봉
‘007시리즈’의 산파는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1908~1964)이다. 그는 로이터통신 기자와 주식 브로커 등의 일을 하다가 1939년 7월 영국의 해군정보국 장교가 되어 2개월 뒤에 터진 2차대전에서 탁월한 첩보능력을 발휘했다.
플레밍은 1941년 뉴욕에 소재한 영국이 해외정보국(MI6) 지부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장차 ‘007’ 소설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주요 인물들을 만나고 새로운 첩보 훈련을 경험했다. 캐나다 토론토 인근에 있는 미국의 전략정보국(OSS) 극비 훈련장에서도 각종 훈련을 받았는데. 이때의 경험은 훗날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지칠 줄 모르는 정력가로 7년 동안 활동하던 플레밍은 2차대전이 끝나자 첩보원 생활을 그만두고 주식 브로커로 돌아왔다. 그러나 짜릿하고 변화무쌍한 삶을 살던 그에게 주식 브로커 생활은 고리타분했다. 플레밍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책을 쓰기 시작했고,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첫 007 소설 ‘카지노 로얄’을 1953년 4월 출판했다. ‘죽느냐 사느냐’(1954), ‘문 레이커’(1955) 등을 잇따라 선보였으나 판매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가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55), ‘위기일발’(1957) 등이 나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제임스 본드 붐이 일기 시작했다. ‘Dr. No’(1958), ‘골드핑거’(1959), ‘유어 아이즈 온리’(1960), ‘썬더볼 작전’(1961), ‘나를 사랑한 스파이’(1962) 등이 출판된 뒤에는 스파이 소설의 대명사가 되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의 애독서에 ‘위기일발’이 포함되었다는 미국의 ‘라이프’지 기사가 나간 뒤에는 더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본드의 인기가 높아지고 그래서 플레밍이 더욱 열심히 소설을 쓸수록 플레밍의 건강은 나빠졌다. 그런데도 1962년 10월 5일 첫 007 영화 ‘살인번호(Dr. No)’가 영국에서 개봉된 것에 고무되어 후속작을 계속 쏟아냈다. 결국 4편의 시리즈를 더 쓰고 1964년 8월 눈을 감았다. 그때까지 플레밍이 쓴 007 시리즈는 ‘옥토퍼시’(1966)를 마지막으로 총 14편이었다.
첫 007 영화 ‘살인번호’는 자메이카 근해 외딴 섬에 비밀기지를 구축해 미국의 인공위성과 미사일의 진로를 방해하려는 중국계 박사 닥터 노의 음모를 본드가 차단한다는 내용이다.
테런스 영 감독이 연출하고 숀 코너리가 본드로 출연했다. 숀 코너리는 ‘살인번호’의 순조로운 흥행과 뒤이어 개봉된 ‘위기일발’(1963), ‘골드핑거’(1964), ‘썬더볼 작전’(1965) 등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는 플레밍의 손을 떠나 숀 코너리가 연기하는대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한국에서는 첫 007 영화 ‘살인번호’가 먼저 개봉되지 않고 두 번째 영화 ‘위기일발’이 1965년 4월 개봉된 후 1965년 8월 개봉되었다.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해 사악한 악당의 음모를 처단하는 본드의 활약상은 작품마다 늘씬한 미녀로 상징되는 본드걸, 기기묘묘한 첨단 장비,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들이 부른 주제가 등 이목을 끌만한 화제성을 담아 현대 영화사상 최다 관객과 최장수 시리즈라는 숱한 기록을 수립했다. 특히 끊임없이 소개되는 첨단 과학장비들은 007 영화가 스파이물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늘의 인물]
1983년 10월 5일
레흐 바웬사, 노벨평화상 수상
공산 폴란드 최초의 자유노조인 ‘연대’의 전국위원회 의장을 지낸 레흐 바웬사가 1983년 10월 5일 폴란드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80년 8월 14일 1만6000여명의 노조원이 파업 중인 폴란드 그단스크의 레닌조선소 담을 넘어 자유를 부르짖었던 한 사내가 있었다. 바로 10년 전 이 공장에서 해고된 전기공 레흐 바웬사였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비록 초등학교와 직업학교 교육만 받은 그였지만, 1967년 레닌 조선소 전기공 시절, 거리 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폴란드의 참된 자유노조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결국 바웬사는 1980년 파업을 주도하면서 동구공산권에서 최초로, 지금은 불법화된 자유노조를 탄생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후 바웬사는 1990년 마조비에츠키와 대결해 압도적인 표차로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개혁의 부작용으로 실업이 증가하고 경제난이 가중되는 등 국민의 불만과 시위가 확산되자 의회를 해산하고 1993년 9월 총선거를 실시, 신정부를 출범시켰으나 1995년 대통령선거에서 전 공산당원 A.크바스니에프스키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45건
ㆍ2015년 · '안타 제조기' 이치로, 투수로 깜짝 변신
ㆍ2005년 · 로버트 김, 9년 8개월만에 미국 법원으로부터 형집행 종료 판결
ㆍ2001년 · 미국 ‘탄저균 테러’ 공포 확산
ㆍ2000년 · 유고 시민혁명으로 밀로셰비치 대통령 축출. 코스투니차 대통령 집권
ㆍ1998년 · 영생교도 7명 강원도 양양에서 집단자살
ㆍ1996년 · 이화여대 사범대 초대학장 김애마씨 별세
ㆍ1995년 · 노벨문학상에 아일랜드 시인 셰무스 히니 선정
ㆍ1991년 · 로널드 코우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
ㆍ1989년 · 달라이 라마,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ㆍ1988년 · 16년 만에 국정감사 재개
ㆍ1986년 · 제10회 서울아시안게임 폐막(1위 중공, 2위 한국, 3위 일본)
ㆍ1984년 · 재일교포 1천여명, 지문날인집회 거부
ㆍ1983년 · 국내최초 가스발전소 평택화전 3~4 호기 준공
ㆍ1983년 · 레흐 바웬사, 노벨평화상 수상
ㆍ1982년 · 5차 세계언론인회의 개막
ㆍ1982년 · 볼리비아 대통령에 수아소 선출
ㆍ1972년 · 미국 산업 디자이너 헨리 드라이푸스 사망
ㆍ1971년 · 경비사령부 장병 30여명 고려대 난입, 학생 5명 연행
ㆍ1969년 · 골프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킨 미국의 프로 골프선수 월터 헤이건 사망
ㆍ1968년 · 자연보호헌장 선포
ㆍ1962년 · 한국-에콰도르 국교 수립
ㆍ1958년 ·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ㆍ1955년 · 미국, 인공위성 제작 발표
ㆍ1950년 · 동구 5개 공산국, 한국문제 공동결의안 유엔에 제출
ㆍ1949년 · 여객선 평해호 침몰, 120명 사망
ㆍ1947년 · 코민포름 결성 발표
ㆍ1945년 · 미군정장관 고문에 한국인 11명 임명(위원장 김성수)
ㆍ1943년 · 부관연락선 곤륜호 미국잠수함에 의해 격침. 544명 사망
ㆍ1934년 · 원작 ‘품행제로’의 감독, 장 비고 사망
ㆍ1925년 · 경성운동장 준공
ㆍ1922년 · 경성부립도서관(현 남산도서관) 개관
ㆍ1922년 · 한국보이스카웃 운동의 모체인 소년척후단 조직
ㆍ1920년 · 일본군, 북간도 한국인 2,285명 학살
ㆍ1919년 · 인촌 김성수, 경성방직주식회사 설립
ㆍ1915년 · 불가리아, 러시아에 선전포고
ㆍ1911년 · 이탈리아군 트리폴리 점령
ㆍ1910년 · 포르투갈 공화제 선언. 국왕 마누엘2세 영국에 망명
ㆍ1908년 · 불가리아 독립선언. 루마니아 병합
ㆍ1904년 · 황실제도 정리국 설치
ㆍ1898년 · 포르투갈 식민지영토에 관한 영국-독일 비밀조약
ㆍ1864년 · 프랑스 카메라 기술자 루이 뤼미에르 출생
ㆍ1789년 · 파리 시민들이 빵을 달라며 시위하고, 베르사유 행진을 벌임
ㆍ1713년 · 백과전서학파의 디드로 출생
ㆍ1313년 · 우리나라 최초의 인구조사 실시(고려 충선왕 5년)
ㆍ1101년 · 대각국사 의천 입적
[출처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