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봄...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부르짖던 봄이란 놈은 어느새 우리 뼛속 깊이 들어와
이미 뿌리를 내려버렸나 봅니다.
아니 민들레는 벌써 꽃을 지우고 씨앗를 날리고 있더군요.
언제부턴인가 봄과 함께 찾아오는 황사라는 불청객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있는 이때에 우리님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
오랜만에 나타나 두서없는 글로 서두를 꺼내 봅니다.
오늘아침 저는 봉천동 어머니댁에서 눈을떳습니다.
새벽 5시반 봉천동 날망 그것도 22층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아침은
어제밤 꼬리를 물던 현란한 빛의 무리들은 간곳이 없고,
마냥 조용하기만 합니다.
남쪽 응접실 커다란 창을 통해 내려다보니 서울대를 품은 관악산이 코앞에 다가와 있고
동쪽 창문사이로 하늘이 밝아옵니다.
어제 퇴근후 봉천동 어머님댁에 왔는데 하룻밤을 자야 했답니다.
롯데쇼핑 분당점 식품부 차장으로 있는 남동생 내외는 롯데그룹 최우수 간부직원으로
선정되어 제주도 단체 여행중이고 어머니는 이곳 봉천동 성당에서
기도원에 가시는 바람에 제가 집지기로 혼자남은 조카와 하룻밤 보내기로 한것입니다.
그동안 제 신상에 대해서 조금씩 꺼내놓기도 했지만 모두는 잘 모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6,25 사변의 희생물로 돌아가셨으니 나에게 형제가 없다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지만 때로 세상에는 변수가 등장하기도 하지요.
저에게 위로 2살 터울의 누나가 있으며 바로 밑으로 여동생 그리고 지금 어머님과
함께 사는 롯데쇼핑 남동생 그리고 그밑으로 대전에 여동생이 살고 있답니다.
사실 6,25로 아버지를 잃고 여자혼자 살기가 힘든시절이다보니 어머니가 재혼을 했던겁니다.
위에 누나는 어머니가 재혼하기전 의부의 전처의 딸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제 어렸을때 그누이와 많은 갈등을 겪으며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내나이 8살때 어머니가 박씨 집안에 재혼을 하셨으니 내 성은 분명 박씨가 아니라는
것 친아버지가 아니다는것 쯤은 염두에 두고 살았던것 같습니다.
깊고깊은 옥천 어느 산골에 성도 근본도 모른체 성장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렇게 낯선 동네에 뿌리를 내린 나는 누구에게도 무엇이던 지지않는
오기로 똘똘 뭉친 사내아이로 자랐습니다.
설령 패치기(종이로 네모나게 접은것) 다마(구슬)치기 등 누구든 무엇이던
나한테 따가지고는 집으로 갈수 없었던 패배를 모르는 아이였답니다.
내가 초등학교 부터 중학교 졸업할때까지 제 노트한장 손실이 없을정도였습니다.
어제 저녁 퇴근하여 오면서 봉천동 사는 누이 매형과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에
풍천장어집에서 닭다리 꼼장어 안주를 준비하여 누이네 집에서 쇠주한잔 했지요.
어렸을때는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같이 자란 의리라고나 할까
피하나 섞이지 않았어도 지금은 친누이처럼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외 여동생 둘은 의부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결혼식때 내가 손을 잡아주길 원했고
남동생 역시 내말이라면 잘듣는 착한 동생들 이랍니다.
그렇게 십여년동안 의부밑에서 한번도 아버지의 따스한 손길 느껴보지 못하고
자랐어도 돌아가신후 십몇년동안 벌초 기제사등 한번도 잊고 지나간적이 없답니다.
누이와 동생들 그 중심에는 내가 항상 역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 할무렵에서야 비로소 나는 성(하씨)을 찾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내 호적문제가 걱정이 되어 무주에 사시는 고모님께 편지를 쓰기에 이르렀고
고모님은 무슨소리냐 그애는 호적에 이미 하씨로 등제 했으니 보내달라 내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서신 왕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후 고모님과 상봉 하면서 우리집안 내력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4남매 그리고 사촌들 모두 6,25 사변으로 인해 죽고 몇몇 사촌누이 형들은 레닌주의
사상이었는지 북한으로 넘어가고 남은것은 고모님과 사촌형 한분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나는 사촌형에 비하면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사촌형은 천애고아로 세상에
내팽겨쳐저 있던것입니다.
언제 어디글인가에 사촌형님에 대해서 잠시 언급한바 있으므로 기억하시는
님들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형님은 자수성가 하신분으로 지금의 환일 당시 균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하고
내가 처음 형님을 만났을때 형님은 청진동 진학사라는 회사 사원으로 계셨습니다.
그후 광고부장 편집국장을 하시다가 퇴직을 하셨지만
형님은 술을 드시고 나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은 자신은 고아처럼 자라 우울하고
내성적 이었는데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외향적 성격으로 개조 했노라고...
그후 '시조사' (국정교과서) 출판업을 운영하면서 문교부 장관등과 골프회동등 어께를
나란히 했으며 호탕한 성격과 사람을 좋아해 어느자리에서건 선두에 서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 이셨습니다.
그 영향인지 저역시 처음 공무원에 입사했을때 나 없으면 조직이 마비가 될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던 때도 있었답니다.
그제인가 고백 쥔장님 올린 글 내용중 괴 문자를 받은 주인공은 바로 저 산내들 입니다.
처음 누가 무엇때문에 이런 문자를 보냈을까 하고 불쾌감도 없지 않았으나
생각해보면 이유야 어떻던 제가 당연히 내야할 회비를 내지 않았기에 빚어진 일인데
누굴 탓하고 원망하겠습니까.
그렇게 한번 잘못된 과오가 꼬리표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으며
아무데에도 쓸모없는 감정의 찌꺼기인지 그것들을 다스리지 못한 제소치 입니다.
아무튼 그로인해 우리카페내 불신 모드 분위기로 전환된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사과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글씨 하나 하나 참 잔잔하고 진솔하시고 참 좋습니다. 아마도 저를 비롯한 50년대 연령층에 있는 사람들, 그 가족사사연 하나 하나 들어가 보면 사연없는 사람 드뭅니다.저 역시 산내들님 못자않은 사연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입니다.말로 하고 글로 쓰기만 할려고해도 눈물부터 먼저 나옵니다.
산내들님, 과거의 역사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이렇게 뜻뜻하게 잘 살고있지 않습니까? 과거의 한이나 덩어리에 뭐땜에 우리가 억메일 필요가 있습니까? 자, 우리를 지금까지 존재케 해 준 그 한을 위하여 건배하십시다 ! 앞으로도 산내들님과의 좋은 우정 그대로 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오늘저녁에 한잔합시다.
산내들님의 인생 드라마를 티비연속극 보다 더 생생히 더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을 개척해온 사람만이 성공의 길을 가는 것이란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음미해 봅니다. 하잖은 일로 오해의 불신을 싹 틔운 일시의 멋적음을 이슬이에 타서 마시고 상큼한 기분전환으로 무지개의 사랑을 합창합시다.
첫댓글 아직도 그런소문땜시 마음 고생하고 계시나요? 걍 소주한잔으로 털털하게 잊으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늘 행복하게 지내세요. 마음고생오래하면 빨리 늙는데요.
글씨 하나 하나 참 잔잔하고 진솔하시고 참 좋습니다. 아마도 저를 비롯한 50년대 연령층에 있는 사람들, 그 가족사사연 하나 하나 들어가 보면 사연없는 사람 드뭅니다.저 역시 산내들님 못자않은 사연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입니다.말로 하고 글로 쓰기만 할려고해도 눈물부터 먼저 나옵니다.
산내들님, 과거의 역사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이렇게 뜻뜻하게 잘 살고있지 않습니까? 과거의 한이나 덩어리에 뭐땜에 우리가 억메일 필요가 있습니까? 자, 우리를 지금까지 존재케 해 준 그 한을 위하여 건배하십시다 ! 앞으로도 산내들님과의 좋은 우정 그대로 잘 간직하고 싶습니다. 오늘저녁에 한잔합시다.
산내들님의 인생 드라마를 티비연속극 보다 더 생생히 더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을 개척해온 사람만이 성공의 길을 가는 것이란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음미해 봅니다. 하잖은 일로 오해의 불신을 싹 틔운 일시의 멋적음을 이슬이에 타서 마시고 상큼한 기분전환으로 무지개의 사랑을 합창합시다.
인생사 유전이라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흘러 간다는 말씀이겠지요.....산내들님이 주신글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안 좋은 기억들은 담고 있는 것 보다는 흘려 보내는 것이 마음편한것은 아닐런지요..... 감사합니다. 소생 추석 배상.
사람은 어디서든지..어떠하든지간에...자기 할 탓이지요 인생을 개척하셧군요
음~ 언젠가 말씀하셨던것 같습니다. 이제 마음 훌훌 털어버리시고 마음가볍게 즐겁게 지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