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삼생(三牲) 이야기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 때 천태종을 세운 대선지식 천태지자(天台智者) 스님은
어느 날 천태(天台)산에서 지관 삼매(止觀三昧)에 들어 계셨다.
그때 스님의 앞으로 산돼지 한 마리가 황급히 지나가더니, 뒤이어 활을 든 사냥꾼이 쫓아와서 여쭈었다.
“산돼지 한 마리가 이리로 지나갔는데,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아십니까?”
스님은 대답 대신 사냥꾼을 앉게 한 다음 한 수의 노래를 불렀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져 뱀의 머리가 부서졌도다.
죽은 뱀은 돼지가 되어 돌을 굴려 꿩을 쳤다네.
죽은 꿩이 포수가 되어 다시 돼지를 쏘려 함에
빈승이 인연을 밝힌 원한을 풀어주려 하네.
지자대사는 노래를 부르신 다음,
지관(止觀) 삼매에 들었을 때 관찰한 사냥꾼과 돼지의 삼생인연(三生因緣)을 일러주셨다.
엽사(獵師)여, 지금부터 삼생 전에 까마귀 한 마리가 배나무 가지 위에 앉아 놀다가,
무심코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때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다 익은 배가 떨어져 배나무 아래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의 머리를 때렸다.
이 때문에 죽은 뱀은 다시 멧돼지로 태어나 풀뿌리를 캐 먹으며 살았고, 까마귀는 죽어 꿩이 되었다.
어느 날 꿩은 떨어진 나무 열매를 주워 먹다가,
멧돼지가 칡뿌리를 먹기 위해 땅을 뒤질 때 건드린 돌이 굴러떨어져 맞아 죽고 말았다.
엽사여, 그 꿩이 죽어 이번에는 그대가 된 것이다.
그대는 지금 반드시 활로 멧돼지를 잡고야 말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그대가 작정하고 멧돼지를 쏘아 죽이면,
멧돼지 또한 원한을 품고 죽어 앞날에는 더욱 무서운 과보(果報)를 받게 되느니라.
엽사여, 이제 그 활을 던져 버려라.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악연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영원히 악연 속에서 떠돌아다니게 되느니라.
지자대사의 말씀을 들은 사냥꾼은 깨달은 바가 있어 그 자리에서 활을 꺾어 버리고,
지자대사의 제자가 되어 도를 닦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烏飛梨落)는 속담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잘못된 인과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우쳐 주고 있다.
육도 윤회의 세계 중 지옥, 아귀, 축생의 몸을 받았을 때는 지은 업에 대한 과보(果報)를 받기만 할 뿐이다.
스스로 업의 고리를 푼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만 스스로 의지로 맺힌 업을 풀어,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 일타 스님 법공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