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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순 교수 © <뉴스 M> |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던 연예인이 장기적으로 폭행을 행사해왔다는 기사를 접한다. 그의 부인은 결혼전부터 받았던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32년간 참으면서 "기도하며 가정을 지켰왔고," "남편을 목사로 만들면 남편이 변화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왜 폭력의 희생자들은 자신의 해방과 자유로부터 등을 돌리는가?' 라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그녀를 32년간이나 그 극심한 폭력을 참게 했는가.
"순종과 희생이라는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ideology)'라는 개념은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하나의 사상 체계 (a system of idea)' 라는 의미로 중성적인 것인 반면, 또 다른 하나는 한 사회의 '지배자의 사상체계' 라는 이미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가정이든 사회이든 그 집단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현상유지'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되며, 그 현상유지를 위해서 어느 특정한 가치체제를 차용하여 '이데올로기화'하여 약자들에게 주입시켜서 저항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기능을 작동시킨다. 이러한 '이데올로기화' 과정은 사실상 한 사회의 '지식 생산과 유통' 그리고 '교육화 과정'을 통해서 재생산되고 강화 되기에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들 스스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정체를 알아차리기란 참으로 어렵다.
예를 들어서, '순종과 희생' 이라는 종교적 또는 사회적 덕목이 폭력적 현실구조를 '유지'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순종과 희생'은 기독교는 물론 한국문화 전반에서 유독 여성들에게만 강조되는 덕목이다. 이러한 '덕목'이 이데올로기화 되면서 기존의 질서체계, 기존의 폭력적 현상들이 '자연적이고, 당연한' 사실로 간주되곤 한다. 교회는 종종 '순종과 희생'의 이름으로 다양한 폭력의 희생자인 여성들에게 꾹 참고 '희생'하는 것이 예수 믿는 신앙심의 한 방식이라고 가르쳐 왔다. 교회를 오래 다닌 여성들에게 폭력에 대한 불감증 또는 폭력을 자신의 신앙에 대한 '박해'로 여기며 더욱 참아내야 한다고 굳게 믿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 이유이다.
"남성중심적 인간관"
가부장제적 폭력이 유지되는데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과 순종, 그리고 희생'이다. '가정'이나 '교회'가 가부장제적으로 구성될 때에, 여성은 가정이나 교회에서 유사한 역할을 하도록 기대된다. 즉 남성을 보조하고 뒷받침하는 '순종과 희생의 어머니/아내/신도'의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을 충실하게 할 때 그 여성은 '교회나 가정의 꽃'이며 없어서는 안되는 '훌륭한 역할의 사람'이지만, '왜' 를 묻거나 그러한 규정된 역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이기적인 여성' 또는 가정이나 교회에 '해로운 악한 여성'으로 낙인찍힌다. 그래서 서구세계든 아시아 세계이든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두 극단적인 모습으로만 표상된다: 성녀 (마리아) 와 악녀 (이브).
그런데 이 두 상반된 여성에 대한 모습은 사실상 동일한 근원, 즉 '남성중심적(androcentric) 인간관/세계관' 에서 연원한다. 오래 전에 사라진 것 같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 또는 '삼종지도 이데올로기' 는 이 21세기에도 한국사회의 입시제도, 문화적-종교적 덕목들, 군사주의, 폐쇄적인 애국주의 등과 같은 색다른 옷을 입고서, 다양한 종류의 폭력을 행사하고 여성들과 같은 경제적, 사회문화적 약자들에게 권력에의 '맹목적 순종'과 '자기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 서정희와 서세원 |
<국제상담학회>가 한국에서 열릴 때 통역을 한 적이 있다.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귀국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니, 참으로 오래 전이다. 그 때 여성과 폭력에 대하여 사례발표를 했던, 한 한국인 연구자의 발제가 여전히 지금도 내 기억속에 남아 있다.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유일한 '위로의 공간'인 교회에서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에게 '상담'을 할 때에 거의 예외없이 듣는 상담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즉, '희생하며 참고 살아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극심한 고통도 참아내었는데 그 정도 고통도 못 참는가,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이라는 것이다. '지도자'이며 '전문가' 들에게 이러한 상담을 받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여성들은 눈물을 삼키며, 지속되는 폭력의 고통을 견디어 내는 삶을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수한 '서정희들'이 존재하는 사회"
"32년간 기도하며 가정을 지켜왔다"는 서정희씨의 진술속에서 나는 그 오래전에 들었던 사례들이 지금도 여전히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확인을 한다. 무수한 '서정희 들'의 얼굴들이 겹쳐서 다가오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은 어떻게 지배 계급이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동의' 에 의하여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가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이러한 그람시의 분석은 어떻게 폭력의 희생자들이 표면적으로 가해자들에게 '자발적 동의'를 주면서 그 폭력적 상황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는가를 예리하게 들여다 보도록 한다.
가정이나 기업들, 또는 종교 공동체들이 '순종과 희생의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다양한 폭력을 '자연적인 것으로" 또는 '참으며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것' 으로 만드는 한, 우리 사회에는 무수한 '서정희 들' 이 각기 다른 옷을 입고서 음지에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희생'하고 '외면' 하면서 고통당하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옷을 입은 '폭력에의 예민성' 을 기르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폭력적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비판적 해체를 하는 것--우리 가정, 종교공동체, 그리고 사회 전체가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긴급한 과제이다.
강남순 교수 / Texas Christian University, Brite Divinity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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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요즘 관심 갖고 이들의 일들을 보았습니다. 서정희는 날마다 새벽기도를 다녔다고 합니다...그런데..무엇을 기도했을까요..하나님은 어찌 보고 계셨을까..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참..안타깝다..라는 생각을 합니다.,ㅠㅠ
자신의 기도를 했겠지요......
우리나라 가부장적인 풍토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한 불평등이 나쁩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소속되어있지만 남편은 부인에게 소속되어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지요.
유감스럽지만, 서정희도 역시 그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과거 경제부흥과 함께 이러한 기복신앙이 설교가 판쳤지요. 60년대와 70년대에 유행이 또 다시 반복 하는 설교에 퍽 염려스러웠습니다. 다행히 일찌기 박살난 것에 대하여 박수를 보냅니다. 이 부부의 기독교적 개념이 제대로 박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서정희 혼자만 애를 쓴 것 같네요. 서세원의 동기는 목사가 되는 것에서조차도 자신의 유익에 중점이 두어져있었을 것입니다.부부의 행복은 혼자만 노력해서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관계만 유지되어져 온 것이지요. 그러나 관계를 유지하려다 끝내 한쪽이 정체를 드러내면 진짜로 깨지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거짓을 드러내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