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수된 백성들 (민 1:2-3)
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찌니 3 이스라엘 중 이십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
서론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모세오경이라고 합니다. 모
세오경은 히브리말로는 ‘토라’입니다. ‘토라’는 교훈,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오경의 스토리를 옛날 이스라엘의 역사라고만 여긴다면 우리는 이 말씀
을 생각하고 우리 삶 속에 적용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모세오경
은 ‘토라’, 교훈입니다. 모세오경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기
록이 되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
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오경의 스토리는 옛날 역
사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의 영적인 자서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
다. 영적인 진리와 영적인 교훈들을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
다. 구약과 신약은 사실상 동일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모형과 그림자로
서 말하고 있는 것이고 신약은 실체로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을 설교하든, 신약을 설교하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과 진리는 동일합니다.
창세기는 창조와 타락기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이 세상
은 어떻게 존재하였는가?’, ‘우리는 왜 이 땅에 살게 되었는가?’ 그 답을 창세기
가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고
통을 겪어야 하며, 서로 싸워야 하며, 전쟁을 해야 하며, 천재지변을 당해야 하며, 오
늘날도 사고와 테러가 많은 사회 속에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원인을 창세기는 우
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
고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는 무슨 책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
는 구원의 책입니다. 출애굽기는 마귀를 상징하고 있는 바로왕과, 죄와 세상을 상징하
고 있는 애굽으로부터의 구원스토리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은 세 가지
입니다. 유월절 사건, 홍해를 건넌 사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사건입니다. 유월
절 사건은 어린양의 피로서 죽음의 사자가 지나간 사건입니다. 어린양이 피를 통해 백
성들이 죽음으로부터 건짐을 받은 사건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지옥형벌에서 건짐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홍해를 건넌 사건은 무엇을 말합니까? 홍해는 침례입니다. 옛
사람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홍해의 사건인 것입니다. 또 구원받고 침례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말씀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시내산에서 말씀을 받은 사건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레위기는 다섯 제사와 일곱 절
기를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하며 살아야 하는가?’, ‘우리 죄인은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민수기의 목적
민수기는 왜 기록이 되었습니까? 민수기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민수기는 영어로
‘Numbers’라고 합니다. 숫자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계수한
사건이 민수기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장은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행군을 시작하기 전에 백성숫자를 계수했던 1차계수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
수기 26장은 40년간의 방황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백성의
숫자를 계수한 2차 계수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장에서는 레위인의 숫자를 계수했
습니다. 모든 백성을 다 계수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20세 이상의 싸움
에 나갈 수 있는 남자의 숫자만 계수했습니다. 레위인들은 계수에서 뺐습니다. 레위인
들은 성막을 관리하는 그런 일들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에 나와 있는 숫자는 레
위인을 제외하고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가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의 숫자를 계수한 것
입니다.
1차 계수를 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의 20세 이상 남자는 603,550명이었습니다. 2차
계수 때의 숫자는 602,730명이었습니다. 4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1차 때보
다 1,820명의 숫자가 감소한 것입니다. 1차 계수할 당시 20세 이상의 남자들 가운데
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2차계수의 숫자
는 1차 계수할 때 20세 미만이었던 어린아이들의 숫자에다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포함
한 수자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신함으로 반항으로 원망으로 살았던 40년 세
월은 인구가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세월은 헛된 것이
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인간이 자기 생각이
나 자기 꾀나 죄성을 따라서 살면 그 인생은 헛된 것이 된다는 것을 민수기는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수기가 기록된 바른 목적일 것입니다. 민수기는 하나님
께서 자기 백성들이 믿음과 감사함으로 살 때는 축복해 주시고, 원망과 불평과 불신앙
으로 살면 형벌을 주신다는 간단한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 믿
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승리하고 성공하려면 하나님의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면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 자기 죄성을 따라서 살면 실패하고 패망하고 형벌 받게
될 것입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가나안 땅을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계속해서 전쟁하고 싸웠습
니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패했지만 가나안 땅에서는 승리한 것이 특징입니다. 성령충
만을 통해 승리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모형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나안 땅입
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나안 땅에는 입
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믿고 구원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성령충만을 통해 승리하는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고 그대로 광야를 방황하다 죽어갑니다. 예수 믿는 참 맛, 예수 믿는 참 재
미를 느끼지 못한 채 광야를 방황하다가 그대로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민수기는 성도들이 광야를 방황하다가 죽는 것으로 삶을 끝내지 말고, 광야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을 반복하지 말고, 요단강을 건널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
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했던 것처럼 성
령의 능력과 충만함을 받아서 가나안 땅으로 입성할 것을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
입니다.
2. 민수기의 3大 구조
민수기는 3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민수기는 전체적으로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할 수 있도록 진형
을 갖추고 행진을 시작하는 준비를 한 것이 1-1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에 하
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가지 은혜를 주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다.’ ‘Presence’의 은혜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해
주신다.’ ‘Protection’의 은혜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해 주신
다.’ ‘Guidance’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성막은 이스라엘의 진영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은 구
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
다. 또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12지파를 세 지파씩 나누어서 동서남북으로 성막에 배
열했고, 진행할 때는 동남서북의 순서로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외적의 침입으
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보
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보호할 수 있는 체제와 진영과 질서를 갖추도록 하
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동을 밤에는 불기둥을 주심으로 함께 하신 것은 이스
라엘 백성이 가야할 길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구주
로 믿고, 성령 충만한 삶,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때로
죄로 넘어지고 패배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 세
가지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계시
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임재하시고,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의 갈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임재와
보호와 인도의 3대 은혜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때로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 나는 죄가 큽니다. 그런데 나와 함께 계십
니까?” 예,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 나는 허물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보호해
주십니까?” 예, 보호해 주십니다. “내가 바르게 살지 못하고 실패하고 죄악이 많습
니다. 그런데 나를 인도해 주십니까?” 예,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국은 우리
의 삶을 인도하셔서 천국까지 끝까지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한번 은혜를 주시고 우리
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은 그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시고, 천국에 들
어갈 때까지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신 사람은 하나님
이 손으로 꼭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그 사람을 빼앗아갈 존재는 하늘의 존재든, 땅의
존재든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승리하지 못하고 성령충만을 받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3대 은혜를 지금도 베풀고 계시다는 사실을 먼저 마음속에 확신하셔야 될 것
입니다.
두 번째로 11장부터 21장 전반까지 10장에는 주로 원망과 반역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
습니다. 출애굽한지 제 이월 이십일에 구름이 성막위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
엘 백성들이 시내광야를 행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행군의 역사
는 불평과 원망과 반역의 역사였습니다. 백성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고도 불평이 많습
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불평 많이 하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한 것은 대체로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환경에 대한 불평입니
다. ‘왜 만나가 맛이 없는가?’, ‘왜 물이 없는가?’, ‘고기를 못 먹어서 사는 재
미가 없다.’, ‘마늘 부추를 못 먹어서 힘이 약해졌다.’, ‘왜 편안한 길을 놔두고
험한 길로 가는가?’, 만나라고 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맛없게 먹었을지는 몰라
도 그것은 고단백 영양식입니다. 그것을 먹고 당뇨병 걸린 사람도 없고, 고혈압 걸린
사람도 없었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도 없고, 그것을 먹고 심장병 걸린 사람도
없었습니다. 만나는 건강식이요 천사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것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영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만 그것을 먹게 되면 젖
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
성들이 원망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 할 때 그 때 먹던 것이 좋았
고, 고기도 먹고 부추도 먹고 좋았으니 애굽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것이 그들의 불평
원망 아닙니까? 애굽에서 노예생활 할 때에는 아들을 낳으면 강에 던져 죽여야 했습니
다.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 아닙니까? 그러던
때가 언제인데 나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원망불평하고 애굽이 좋았다고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참으로 오늘날 우리의 심령을 보는 듯 하지 않습니까?
잠깐만 참으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며칠 동안만 만나를 먹고 있으
면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줄 것인데 조금의 인내심도 없이 원망
불평했던 것입니다. 고기 없다고 불평해서 하나님이 메추라기떼를 하늘로부터 내려서
1개월 동안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코에서 메추라기 냄새가 난다고 불평했습
니다. 많으면 많다고 불평이었고, 적으면 적다고 불평이었습니다. 애굽 노예 시절부
터 아예 불평원망이 체질화되고, 인격화 되고, 안에 뿌리박혀서 없앨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불평이 많으십니까? 직분이 많으셔서 불평이 많
으십니까? 직분 많이 맡으신 것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 죽
습니다. 여러분 50년 뒤에 여기 앉아 계실 분이 몇 분인지 잘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
데 돌아가실 때 남는 것 무엇입니까? 내가 이 땅을 살 때 무슨 일을 하며 무슨 자리
에 올라갔는가는 한줄 기록하고 마는 것입니다. 남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무
엇을 했는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내가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
는가? 사랑의 열매를 맺은 것이 있는가? 그것만 남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
로 교회에서 많은 일을 맡아서 한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한 결과로 얻은 것은 세 가지입니다. 다베라에서 불평하다가 불
에 맞았습니다.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는 무엇을 맞았습니까? 불평하다가 역병을 맞았습
니다. 불뱀을 맞았습니다. 결국 불평원망하면 그들의 삶에는 이 세 가지로 상징되는
수난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불과 역병과 불뱀으로 상징되는 갖가지 수난이 오게 되
는 것입니다. 이렇게 손해 보는 짓을 왜 합니까? 불평은 큰 손해를 가져다준다는 것
을 민수기 11장으로부터 21장까지의 스토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환경에 대
해 불평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살고 있는 환경 때문에 어려우십니까? 불평하지 마시
기 바랍니다. 지금의 어려운 환경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한 잠깐의 광야입니다. 그
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사건입니다. 광야에 있을 때에 불평하지 말고 감사와 믿음으
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 것에 대해서도 불평했습니다. “가나안 땅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으니 너희는 그것을 차지해라.” 했음에도 불
구하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을 보냈더니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나머
지는 뭐라고 했습니까? 그 땅을 악평하면서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라 그 땅에
는 거인들이 많아서 우리는 그들 보기에 메뚜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이 먹으라고 한 것도 불평했던 것입니다. 축복을 주어도 불평하고 차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광야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의 특징이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
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믿
는 그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거기서 그만 다 죽
고 장사지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노예근성으로 사는 것 불평, 원망, 육신, 죄성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한 결과는 어떤 것인지 그들은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권위와 지도력에 대해서 불평했습니다. “모세와 아
론 네가 무엇인데 우리 위에서 우리를 인도한다고 하느냐?”하면서 비판했습니다. 모
세가 여자를 취해서 살면 “왜 그런 여자와 사느냐?”하고 불평했습니다. 아론과 미리
암이 그렇게 불평하다가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은 모
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너희만 지도자냐 나도 지도자다. 나도 할 수 있
다.”라고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지진을 내어서 땅을 갈랐고 그들은
그대로 땅에 파묻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권위에 도전하는 불평원망에
대한 심판이 가장 컸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라 편에 서서 하나님께 향을 드리
던 280명의 지도자들은 불이 나와서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백성
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왜 백성을 죽입니까?” 모세 아론이
죽였습니까? 하나님이 죽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평으로 말미암아 백성 중 14,700
명이 죽었습니다. 죽고도 정신 못 차리고 불평을 계속하니까 하나님께서 결국은 이스
라엘 열두지파를 모두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른 지팡이 하나씩을 다 기지고 나오
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나는 사람에게 권위를 준 것이니 그 사람
의 말에 순종해라고 말씀하셨고,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
게 하셨습니다. 그 열매는 살구열매였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세워주셨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직업은 불평하는 자입니다. 아침에도 투덜, 점심에도 투
덜, 저녁에도 투덜거립니다. 다른 하나는 장례입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시간 동안
에 20세 이상의 남자만 60만이 죽었고, 여자와 어린아이를 포함하면 200만이 죽었습니
다. 200만이 40년 동안 다 죽었으니 계산해 보면 하루에 82명씩 죽은 셈입니다. 그러
니 일주일에 네 건 장례지내기도 힘든 것인데 하루에 82건 장례를 치른 셈입니다. 그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매일매일 온통 장례행진이 되었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보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광야의 이스
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통해서 육신을 따라 살게 되면 사망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는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여러분, 지금
우리가 비록 성령충만해서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다고 할지라도, 광야에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우상숭배하며, 죄짓지 마시기
를 바랍니다. 광야에서 긴 시간 방황하다가, 광야에서 죽는 여러분 되지 마시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하고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살면 광야
기간은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
어갈 수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민수기의 마지막 부분 21장부터 36장까지는 일부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승리한
사건입니다. 아모리왕 시혼을 쳐부수고 바산왕 옥도 쳐부수었습니다. 그리고 발람이라
고 하는 거짓 선지자가 모압왕 발락에게 뇌물을 먹고 이스라엘을 세 번씩이나 저주하
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저주를 바꾸어서 축복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발람이 이스
라엘을 저주하려고 갈 때에 당나귀가 가지 않고 버티자 발람은 당나귀를 때립니다. 그
러자 하나님께서 당나귀의 입을 여셔서 뭐라고 하십니까? “나는 네가 평생에 타고 다
니던 나귀가 아니냐? 내가 네게 이렇게 했던 법이 있었느냐?” 나귀가 입을 열어서 히
브리어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니까 내가 그렇
게 하는 것이 아니냐? 보라 네 앞에 천사가 칼을 들고 네 길을 막고 있는데 내 눈에
도 그것이 보이는데 선지자인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여러분, 모압왕 발락이 아
무리 저주하려고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시고 오히려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
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승승장구합니다. 미디안 다섯 왕도 죽이고 발람도 죽이고 요단
강 동편을 차지하고 세 지파에게 나누어 주고 계속 승리해 나갑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불평불만, 불순종, 반역을 해도 하
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결국은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가셨
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허물 많고 죄 많고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때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징벌도 받고 징계도 받고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떠
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한번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결
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광야 40년의 민수기 스토리를 요약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기는 했어도 불평과 반항과 불순종으로 아직까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은 참으로 낭비의 세월이요, 끈임 없는 사망의 행군을 계속
한 세월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불평과 원망과 불순종과 반항과 간음과 우상숭배
를 버려야 하겠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죄를 반복하지 말아야 하겠습
니다. 그런 죄는 성도의 삶에 실패와 심판과 사망을 가져다주고 인생을 낭비하게 만드
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지만 그런 실패 중에도 성령님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다시 의존해야겠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빨리 떠
납시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갑시다. 요단강에서 침례 받으신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
한 것처럼 오늘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다시 한번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부흥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
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침례받으실 때 볜???임했던 것처럼 성령의 능력이 임하
여 주옵소서 가나안 땅에서 승리의 삶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시는 여러
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오순절을 다시 보기 원합니다. 성령이 폭포수처럼 부어
지는 것을 꼭 다시 보기 원합니다. 제 마음 속에는 그것이 비전이요 소망입니다.
우리 이제 광야의 세월을 줄입시다. 광야의 죄를 반복하지 맙시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떻
게 살면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저지른 죄와 반대되는 삶을 살면 되
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던 사람은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불평하던 사람은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잘못하셨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십니까? 지
옥 갈 사람 건져 천국가게 하시고, 죽을 사람을 살려주시고, 영벌을 받을 사람에게 영
생을 주셨는데 하나님이 무엇을 잘못하셨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불평을 버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불신앙을 버리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서로 싸우고 다투고 갈라지면 하나님이 함께 계실 수 없습니다. 우리
는 믿음으로 한 하나님을 모시고 한 성령을 모시고 한 믿음, 한 구주를 섬기고 있으므
로 일치단결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요단강도 우리 앞에 갈라질 것입니
다. 그리고 우리는 젖과 꿀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광야의
세월을 줄이고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