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가수
가수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목놓아 더 울게 된다. 움켰던 눈물이 철철 시냇물 흐르듯
흘러내리게 하는 것이 가수다. 이념만 중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쁨과 슬픔의 한가운데서
두 마음을 만나게 하는 것, 그 적절한 만남이 얼마나 심오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수는 많은
대중에게 인기있는 직업일 것이라고.
오장육부에 나오는 힘이 소리화될 때 그 순간만으로 점점이 이어왔다. 그 인생은 토끼띠 51살에
이르렀다. 한번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떠나지 않았다. 고향은 해남군 화원면 길마인데 아주 큰
소나무가 있다. 어릴 적 그 소나무 밑에서 동무들과 노래를 부렀다. 고향에 푸른 소나무는 그녀가
가야할 방향을 가르켜주었다. 중학교는 화원에서 맞치고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닐 때 노래
실력을 인정받아 교장선생님 추천으로 유명한 합창단에 들어갔단다. 처음 국악을 전공했다.
남도민요를 걸쳐 경기민요의 창법을 완수해 서로 통합하는 창법을 써 그녀에서만 느끼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가수 김은경씨는 결혼을 일찍했다. 결혼도 음악 때문인데 그때 시아버지가 음악에 관련된 문화관광부
에 근무하고 있었다. 시아버지의 낙점으로 생판 모른 신랑을 만나게 됐다고.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단다. 노래를 그리 힘쓰지 않는다. 그녀는 자녀 셋를 낳아 자식
교육에만 힘쓰기 위해서다. 노래도 틈나는 대로 하였지만 자식교육만큼은 우선으로 했었다.
교육은 성공적이었다. 딸 둘은 항시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고 아들은 엄마의 장래을 책임진다고
안심시킨다고 한다. 아들은 연세대를 나와 포스텍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받고 있단다.
노래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자식사랑으로 인해 더욱더 에너지가 생겼다고.
그녀의 노래는 세월이 길다. 그리고 노래의 깊이는 삶이 묻어난다. 단 여자의 길을 충실하게 걷다 보니
기회가 비켜났다. 그러나 이에 대해 후해가 없어보인 그녀의 당당함이 앞으로 희망이 보였다.
현재 가수 김은경 씨는 메들리 40곡 시디 두장으로 실어있다. 물론 거의 모든 곡들은 남의 노래지만
그녀만 색깔로 실어져있다. 경쾌한 리듬으로 불러진 노래이지만 들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삶이란다. 고향에 큰 소나무 아래서 노래에 꿈을 키웠던 김은경 가수는 많은
유혹과 기회가 있었던 것은 그녀의 노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단독 취입을 못한 상태다. 이것만 되면 방송에 나가자마자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생각된다.
엊그제 큰언니가 5년 전에 수술을 받았는데 다시 제발 해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한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보살펴주었는데 이렇게 큰 이별을 앞에 두고 있다"고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산에 가면 새타령, 들에 가면 꽃타령, 사람들을 만나면 사랑 타령을 부른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노래가
있고 삶이 있었다. 노래는 종합예술이다. 눈물과 기쁨, 사랑과 이별 등 노래는 그녀의 삶 전체이다.
목포 요양원에 있는 큰언니를 들리고 고향 화원면 질마에 부모님 산소를 들렸다. 언제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를 보았다. 그 많은 세월에 그도 흔들렸는지 막걸리를 부어주었다.
앞으로 더 푸르게 자라 가수 김은경 씨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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