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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권중서/조계종 전문포교사
최고 성지서 천지 비추는 깨달음 이뤄볼까?
‘다시 말해 마음이 곧 부처인 강서의 늙은이가
부처도 마음도 아닌 경계 밖 노인이 되었구나
날다람쥐의 탄식 속에 나는 홀로 가려고 하네
열반이란 나고 죽는 것이 본래부터 공인 것을’
“각진국사는 입적에 이르러 선상에서 이같이
임종게를 설하고 의젓이 화하니, 자색 구름은
골짜기에 가득, 얼굴빛은 분 바른 것 같았다”
영광 불갑사 대웅전 삼세불. 내부 북쪽 측면에 보단을 설치하고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마타불 목조 삼세불을 측면에 모셔서 실용적인 예경 공간을 만들었다.
‘영광(靈光)’은 <남명전화상송증도가사실(南明泉和尙頌證道歌事實)>의 “한 점의 신령스런 광명(一點靈光)”에서 ‘영광’이라 하였다. “본래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중생이 둘이 아니라서 차별도 없지만 진실로 모든 중생이 무량겁 이래로 선지식을 만나도 견성(見性)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오늘 선지식을 만나 밝게 함으로써 먼지와 때를 털어내니 본래의 광채가 쏜살같이 번뇌를 꿰뚫어서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춘다”고 하였다. 법성(法聖)이란 말도 <어제비장전>에서 “성인은 법으로 미묘한 진리에 통달한다(法聖通微理)”고 했다.
또 ‘불갑(佛甲)’은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天上天下 無如佛 十方世界 亦無比)”로 ‘부처님은 세상에 최고’라는 뜻이다. 영광, 법성, 불갑은 마라난타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한 초전지로 본래의 광체가 번뇌를 꿰뚫고 천지를 비추는 곳에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 첫 포구에는 부처님이 최고인 불갑사가 있다는 의미이다.
백제불교 초전지 영광 불갑사
‘영광군불갑사 만세루중수상량문(萬歲樓重修上梁文)’(1741)에 따르면 백제 침류왕 1년(384) 인도 스님 마라난타존자가 영광 땅에 도착하여 불법(佛法)을 처음으로 편 곳이 법성포였고 가까운 모악산에 불갑사를 세웠다고 한다. 그 후 신라 원성왕 1년(785)에 중창되었고, 특히 고려 충렬왕과 공민왕의 왕사였던 순천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제13국사인 각진복구(覺眞復丘, 1270~1355)스님에 의해 3창되었는데 이때 스님을 따르던 제자 1000명이 몰려와 500여 칸의 전각과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법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달충(李達衷, 1309~1384)이 지은 ‘각진국사비명’에 “각진국사는 입적에 이르러 시자에게 명하여 북을 치게 하고, 작은 선상(禪床)에 앉아서 말하기를, ‘다시 말해 마음이 곧 부처인 강서의 늙은이가(卽心卽佛江西老) 부처도 마음도 아닌 경계 밖 노인이 되었구나(非佛非心物外翁) 날다람쥐의 탄식 속에 나는 홀로 가려고 하네(鼠聲中吾獨往) 열반이란 나고 죽는 것이 본래부터 공인 것을(涅槃生死本來空)’이라고, 임종게를 설(說)하고 의젓이 화(化)하니, 자색 구름은 골짜기에 가득하고, 얼굴빛은 분 바른 것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불탄 사찰은 1608년 법릉선사에 의해 4창 되었고, 1694년에 해릉선사에 의해 5창되었지만 다시 절이 황폐해지자 설두유형(雪竇有炯, 1824~1889)선사가 1869년에 중창하였다.
불갑사 대웅전. 서향의 다포양식으로 전면 3칸의 3분합 소슬빗살문은 어칸에 연꽃과 국화무늬를 아름답게 조각했다.
국화무늬 서향 대웅전…목조 삼세불
17세기 초에 지어진 불갑사 대웅전은 보물로 팔작지붕 다포 양식으로 서향이다. ‘건륭 29년(乾隆二十九年)’이라는 기와 명문이 있어 1764년에 중수한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지붕 용마루 중앙에는 앞뒤로 눈알을 부라리는 귀면 위에 사각형 전각에 지붕을 올리고 보주로 장식하여 대웅전이 부처님을 모신 중요한 건물임을 표현했다. 또 전면 3칸의 3분합 소슬빗살문은 어칸에 연꽃과 국화무늬를 아름답게 조각했다.
내부 북쪽 측면에 보단을 설치하고 보물 목조 삼세불(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마타불)을 측면에 모셔서 실용적인 예경 공간을 만들었다. 삼세불은 건장한 신체에 무릎이 넓어 편안한 모습이다. 머리에는 정상계주와 계주를 큼직하게 묘사하였으며 네모꼴의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었다. 조상기(造像記)에 무염(無染)스님 등 열 분의 스님들이 1635년에 조성하였음을 밝혀 두었다.
대웅전 불상 대좌의 앙증맞은 사자 모습. 누구에게나 부처님 곁은 항상 편안하고 즐거운 곳임을 느끼게 한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석가모니불대좌에는 대좌 밑에서 나온 용들이 목을 빼서 강한 이빨을 드러내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난간을 물고 부처님을 받들고 있는데 사자좌(獅子座)라서 그럴까? 정작 중앙의 사자는 힘도 들이지 않고 난간에 살짝 손만 대고 잘난 듯 뽐내며 웃고 있어 익살이 넘친다.
항상 편안하고 즐거운 부처님 회상
삼세불 옆 기둥의 숨바꼭질하는 용과 족제비 모습.
이와 더불어 삼세불 옆 기둥에는 불갑사에만 있는 용과 족제비 두 마리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조각 모습이 재미있다. ‘꼭꼭 숨어라 꼬리가 보인다’ 좌측 기둥에는 용이 술래가 되어서 보개 위 대들보 속에서 고개를 내미니 한 마리 족제비가 그만 들키고 말았다. 잡았다! 소리치는 용과 들켜버린 족제비. 이 광경을 우측 기둥에서 보고 있는 족제비 등은 자신들의 놀이에 정신이 없다. 영산회상의 근엄함을 단박 깨버리는 해학과 파격적인 여유는 과연 불교다운 발상이다. 관념화된 질서를 깨트리는 해학적인 안목 역시 우리 조상들만이 할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불갑사 불 대좌와 삼세불 옆 기둥에는 사자의 앙증맞은 모습과 숨바꼭질하는 용과 족제비를 볼 수 있어 부처님 곁은 항상 편안하고 즐거운 곳임을 느끼게 한다.
법화경 예참 선종관련 무수한 전적류
천왕문에서는 조선 중기 때 조성된 화려한 목조 사천왕이 인자한 모습으로 참배객을 맞이한다. 원래 이 사천왕은 폐허로 변해가는 전북 무장 연기사에 있었는데 설두선사와 고창군수의 꿈에 나타나 자신들이 비를 맞고 있으니 불갑사로 옮겨주면 사찰을 지키겠노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선사와 군수는 배 네 척에 사천왕을 나눠 싣고 법성포를 통해 고종 13년(1876)에 불갑사로 옮겨왔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불갑사는 이 사천왕의 영험으로 불이 난 적이 없고 특히 6·25전쟁 때 안전하게 사찰을 지켜 설두선사와의 약속을 지켰다.
사천왕, 명부전 지장삼존, 시왕, 16나한 복장에서 <법화경>, 예참, 선종, 강학관련 자료 등 209건 259점의 무수한 전적이 쏟아져 나와 보물로 지정되어 마라난타존자가 불법(佛法)을 전한 곳임을 실감케 하였다.
각진국사 자운탑. 불갑사를 세 번째 중창할 때 제자 1000명이 몰려와 500여 칸의 전각과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법당이 있었다고 한다.
마라난타존자, 각진복구왕사, 설두유형선사의 정신을 이어온 불갑사는 가을이 되면 부처님을 향한 불타는 열정은 꽃무릇으로 변해 가람을 붉게 물들인다. 사람들은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해 ‘상사화(相思花)’라 부른다. 그러나 잎이 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지만 선지식을 만나도 깨닫지 못함을 나타낸 것은 아닐까?
영광 법성포는 칠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씨알 굵은 참조기도 이곳에 오면 깨달음을 얻어 보리 굴비로 변해 깨달음을 얻었다는데 ‘부처님은 세상에 최고’임을 표방한 불갑사를 찾아 본래의 광채가 쏜살같이 번뇌를 꿰뚫어서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추는 깨달음을 이뤄볼까?
[불교신문 3739호/2022년10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