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중추절은 흐렸다 다시 갰는데,
금년 중추절은 흐리고 또 흐리네.
백년 인생에 호시절은 자주 못 만나는 법,
백발이 차츰 늘어나면서는 특히 더하지.
내 맘속에 원래 밝은 달 간직했으니,
길이길이 둥근 모습 영원히 이지러지지 않으리.
산하와 대지가 그 맑은 빛을 품었거늘,
굳이 중추절에만 즐거움을 누릴 건 아니라네.
―<중추절> 왕수인(王守仁·1472∼1528)
변화무쌍한 인생살이에 호시절은 너무나 짧고 빠르게 흐른다. 늘그막이 되면 그런 느낌은 한결 더할 듯하다. 하나 시인의 심지는 흔들림 없이 꿋꿋하다. 한가위, 하늘은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지만 시인의 보름달은 영원토록 이지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길이길이 둥글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나의 공명정대한 기개, 청정무구한 심지가 살아있는 한 세상 만물은 나와 더불어 언제나 광명한 정기(精氣)를 발산하리라.
옛 시에 등장하는 달의 풍경은 풍요, 향수, 그리움, 음주, 인생무상 따위로 점철되기 마련인데, 이 시는 드물게 시인의 삶에 대한 낙관과 옹골찬 절조(節操)를 보여준다. ‘인간에겐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고, 달에는 흐림과 맑음, 둥긂과 이지러짐이 있는 법’이라 했던 소동파의 달관 못지않게 더없이 활달(豁達)하다. 이론과 실천, 앎과 삶의 합치를 표방하는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창한 철학자의 기품이 풍겨 나는 노래다.
왕수인(王守仁·1472∼1528)은 중국 명나라 중기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로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이다. 양명학은 당시 과거시험 합격에 치우쳐 있었던 주자학(朱子學)을 비판하며 창시되었으며, 당대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양명학을 창시함으로써 이지(李贄), 하심은(何心隱), 나여방(羅汝芳) 등 제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의 나카에 도주(中江藤樹)가 일본에 양명학파를 설립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책에는 《대학문》과 《전습록》이 있으며, 《전습록》은 김동휘란 사람이 신원문화사를 통해 국내에서 정발했다.(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