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청을 환청 씨라 부릅니다.
조현병은 친구가 생기는 병입니다.
불안이나 걱정은 마이너스 손님.
‘고피한외돈.’이네. 그게 뭔데? 고민이 있을 때, 피곤할 때, 한가할 때, 외로울 때, 돈이 없을 때……
모두 정신장애 당사자가 자기 증상에 대해 이름을 붙이거나 정의한 것들입니다.
참 유쾌하다, 웃기다. 그래서 어쩐지 뭉클해지는 책입니다.
일본의 정신장애인 공동거주시설 ‘베델의 집’.
책을 읽으며 베델의 집 사회사업가 무카이야치 씨가 궁금해졌습니다.
영상 찾아보았습니다.
https://youtu.be/-mzCeqpZo5g?feature=shared
그는 병원에서 신입 사회사업가로 일하던 때 증상이 악화된 환자들이 수 차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보면서 머리를 싸맸습니다.
‘(그들에게)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선 몰랐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말 몰랐다. 모른다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같이 살아보자.’
정신장애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 베델의 집의 시초입니다.
1부 읽고 인상 깊은 부분 발췌하거나 나눈 이야기 정리합니다.
정신장애를 '질병(증상)과 치료’라는 언어로 소통하던 사람들이 '고통(고생)과 연구’라는 새로운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고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생은 내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연구하기 시작한다. 질병과 치료에서 수동적이었던 사람들이 고생과 연구라는 언어를 통해서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된다. (서문)
책에서는 당사자가 겪는 정신질환을 ‘고생’이라 합니다. 고생이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질병이라 하면 그들과 나의 경계가 생기는 듯하지만 고생이라 하면 그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생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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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스스로, 함께
당사자연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안고 있는 고생에 대처하는 일을 전문가나 가족에게 전부 떠맡기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다운 고생을 되찾는 과정을 통하여 '고생의 주역’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료와 경험을 공유하고 전문가나 가족과 연대하여 자신이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생활방식을 모색해 가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탄생한 기본이념이 '자기 스스로, 함께'입니다.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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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은 힘
우리는 약한 부분을 부정하면서 좀더 강한 점을 추구하거나 약한 부분을 극복하여 강함으로 바꾸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연구에서는 약함과 고생을 있는 그대로 공개합니다. 그럼으로써 연대가 생겨나고 각자가 지닌 고생과 약한 부분 그 자체가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힘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약함'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겸허하게 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p21
약함은 힘. 저는 수다회에서 예전에 읽은 책 ‘헨리나우웬의 공동체’ 내용이 생각났고, 신은지 선생님은 여러 성경구절을 공유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당사자와 함께하며 약한 모습을 드러냈던 이야기 나눴습니다. 약함은 힘.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맞는 것 같아요.
열매가 맺히려면 흙이 확 깨져야 한다. 잘게 부서져서 포슬포슬 부드러워야 한다. 그래야 식물이 자랄 수 있다. 흙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새싹이 나올 수 없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서로에게 부서진 흙이 되면 거기서 새 생명이 움튼다. 이것이 친밀함의 아름다움이다. 두 사람이 완전히 연약한 모습으로 무방비 상태로 만나면, 거기서 새 생명이 태어난다. 이 생명은 그들의 사랑의 열매다. (헨리나우웬의 공동체,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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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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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의 보류’를 하다
당사자연구에서는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연구하면 된다'고 입장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비록 그 문제 자체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더라도 마음 속 갈등이 해소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고생의 보류효과'라고 합니다. p22
‘문제가 있어, 문제가 해결 안 됐어.’라고 생각하기 보다 ‘나 지금 그 문제를 연구 중이야’, ‘연구해볼까?’하고 생각한다면 표현만 다르게 했을 뿐인데 조금 더 재밌게 느껴지고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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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이 아니라 「문제」가 문제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연구는 시작됩니다. 갈등이 발생하고 당사자 주변에 여러 곤란한 일들이 쌓여 가면, 어느새 ‘사람'과
'문제’가 하나가 되어 사람을 '문제 취급'하게 되고,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문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람과 문제의 분리'가 중요합니다. p23
저자는 사람과 문제의 분리를 설명하며 “가령 '폭발을 반복하는 곤란한 A씨'는 '폭발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고생을 안고 있는 A씨'(38)”로 바꾸어 표현하는 예를 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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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것
당사자연구에서는 언제나 유머와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유머의 어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것'인 것처럼 '웃는 것'은 궁극의 '살아가는 용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p25
1부에서 가장 좋았던 구절이자 베델의 집을 가장 잘 표현하는 구절이라 생각했습니다. 고단한 삶에서 얻는 강인한 유쾌함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고통을 이겨내려 몸부림 치다 초월인지 체념인지 모를 그 경계에서 얻게 되는 웃음.. 그게 사람을 멋있게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문득 정신장애 당사자에게 고통을 유쾌하게 여기며 풀어가자고 제안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당사자는 자신의 고통을 장난처럼 여긴다고 느끼진 않을지, 기분이 상하는 일은 없는지.. 궁금해집니다. 2부는 정신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고생을 직접 연구하며 작성한 연구기록이 나옵니다. 재밌을 것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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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도 회복을 추구하고 있다
병이나 증상의 신호는 우리를 회복으로 향하게 하려는 중요한 신체의 메시지가 되기도 합니다. p26
병을 의인화한 것 같은 이 표현이 재밌습니다. 살면서 나에게 왔던 병이나 증상들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증상이 없었으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픈지 몰랐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면 나에게 신호를 보내준 병이나 증상이 고마운 존재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려가는 삶의 방식
생명체로서 사람의 인생은 '태어난 순간'의 높이에서 '끝'날 때까지 천천히 우하향으로 내려가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내려가는 삶의 방식이란, 생명을 가진 자연의 '기울기'를 소중히 하는 삶의 태도와 생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28
신은지 선생님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아니라 의료와 복지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을 비판한 이반일리치 주장을 떠올리며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라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더 성장하고 발전하고 자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쇠약져간다고도 할 수 있지 않나요? 그것을 두고 내려가는 삶이라 표현한 것이고, 따라서 내려가는 삶의 방식이란 생명체라면 가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 기울기(노화)를 소중히 하자는 의미가 아닌지.. 하지만 신은지 선생님은 그럼에도 왜 이 내용이 ‘당사자연구 용어의 기초지식’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언급이 된 것인지 궁금해하셨습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앞으로 더 읽으면 알게 될는지.. 질문해주고 함께 궁리해준 신은지 선생님 고맙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