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전설
흥복이가 지은 절이라 흥복사라 불리는 경내에는 1,000년이 넘는 느티나무에 뚫어진 구멍 속에 수백 년 묵은 뱀이 살고 있다고 믿는단다. ‘콩 심는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난다’라는 인과의 이치를 언급하면 당연히 “그렇게 나쁜 짓만 하던 놈도 떵떵거리고 잘만 살더라!” 반문이 나온다. 그러나 복은 복대로 가고 죄는 죄대로 간다. 우주의 대차대조표는 정확하다. 이는 용수철 같아서 구부린 만큼 펴지게 되어있단다. 시공과 관계없이 결과가 나타난단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인과의 그물이 엮어내는 천변만화의 과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수들은 그저 고수들의 이야기를 믿는 수밖에 없다. 백제와 고구려, 불교와 도교의 사연이 깃들어 있는 곳이 흥복사다. 역사는 1,300년 전이다. 창건 당시 절 이름는 승가사였다. 백제 땅에 고구려 승려 ‘보덕 화상’이 와 창건했다. 연개소문은 불교를 개혁하기 위해 도교를 도입하려 한다. 국가 정책으로 도교를 받아들이려 하자 불교는 반발한 것이다. 보덕이 백제로 온 이유다.
조선 인조 때 김제 고을에 흥복이라는 욕심 사나운 원님이 살고 있었다. 남이 가진 물건은 무엇이든지 자기 것으로 만드는가 하면, 세금을 두 배로 거두고 날마다 기생들과 어울려 술타령을 일삼았다. 착취와 수탈이 심해지자 고을 백성의 원성은 높아만 갔다. 그러던 어느 해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배고픈 백성들은 나무껍질과 풀뿌리로 겨우 목숨을 이어 갔다. 욕심 많은 원님의 곳간에 쌓인 쌀은 한 톨도 나누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흥복의 아내는 남편이 잠시 이웃 고을로 출타한 틈을 타 곳간 문을 열고 고을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 아내는 곳간의 쌀가마를 남김없이 나누었다. 동헌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흩어졌다. 사또 흥복은 일을 마치고 들판을 건너 갯다리에 이르렀는데, 몸이 으슬으슬하고 산속마저 들었다. ‘내가 고뿔이 들었나!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다리 밑을 바라본 흥복을 까무러칠 듯 놀랐다.
다리 밑에는 기둥만큼 커다란 먹구렁이가 머리를 치켜들고 금방이라도 흥복을 삼킬 듯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사람 살려! 흥복은 힘을 다해 외쳤지만, 마음뿐 도무지 말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노려보던 구렁이가 똬리를 풀고 숲속으로 사라지자 그제야 발을 움직일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 이랑 긴 논밭을 지나 주막에 다다랐다. 쉬어가려고 땀에 젖은 옷을 벗으며 살짝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네 이놈 흥복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느냐?” 그 노인은 머리에 구렁이 탈을 쓰고 검정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조금 전에 네 놈이 보았던 구렁이니라.” “그렇다. 이제 이 탈을 나 대신 네놈이 써야겠디. 네가 지은 죗값이니라,” 노인은 머리에 쓴 구렁이 탈을 벗으려 했다. 그러나 머리에 쓴 구렁이 탈이 벗겨지지 않았다. “아니 이럴 수가. 억울하다. 네 놈의 부인이 이 탈을 벗지 못하게 만들었구나! 죄 많은 네 놈과 모습을 바꿀 때가 되었는데 억울하다!” 꿈에서 깬 흥복은 그동안 저질은 자신의 업장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집에 온 흥복은 아내에 감사하며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불타 버린 승가사를 다시 지었다. 이런 연유로 인조 3년 1624년에 흥복사로 다시 세워졌다.
흥복사를 방문하는 신자들은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보면서, 먹구렁이를 생각하고 흥복의 참회를 떠올렸을 것이다. 매년 한 차례씩 막걸리를 서 말 정도 이 느티나무에 붓곤 했단다. 나무에 영양분도 되고 나무 밑동의 구렁이도 먹으라는 뜻에서다. 선인 선과, 악인 악과의 이치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사례다. 복은 복대로 죄는 죄대로 가는 이유다. 전생에 쌓은 복은 이생에서 받는 것이고, 남을 가슴 아프게 한 죄업은 내생에서 꼭 받게 마련이다. 악인이 잘 사는 것은 악인이라도 전생에 쌓은 복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씨 착한 사람이 지지리 고생하며 사는 이유는 그 사람이 전생에 악한 일을 많이 하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잘못을 뉘우치고, 깊은 참회를 하였기 때문이라고 들었단다.
삶은 화려한 것인가, 뻔한 것인가, 고생만 실컷 하다가 가는 것인가? 삶은 가슴 설레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인가? 알 수 없는 신비가 아직 우리 인생에 남아 있는 것인가? 기쁨도 수수께끼지만, 고통마저도 수수께끼이다. 선문선답은 반사적으로 나와야 한단다. 그래야 그동안 연마한 내공을 총집중한 답변이 된다. 가없는 너른 들녘은 태어나서 죽어가는 생사의 광야이니 그곳으로 사방에서 불어오는 불길은 생로병사의 불이요, 우물은 황천이며, 미친 코끼리는 무상한 살귀요, 나무는 사람의 몸이며, 칡넝쿨은 사람의 목숨이며, 검은 쥐 흰 쥐는 해와 달이요, 세 마리의 이무기는 탐.진.취 삼독심이며, 네 마리의 뱀은 지. 수. 화. 풍 사대요, 꿀은 오. 욕. 락을 상징한다.
이 화두를 저자는 절친에 말했단다. 연대보증을 서 주었다가, 집도 날리고, 월급도 압류당하고, 마누라도 도망을 쳐 어린 세 자식을 데리고 찬 바람 부는 황야에서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의 친구였다. 칡넝쿨은 끊어지려 하고 밑에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을 때, 자네는 어찌하겠는가? 삼십육계가 최고다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보다는 이리 답을 했다는 저자는 그래도 인생은 달다고 외친 선사를 생각해본 것 같다.
조선은 후대에 오면서 명당에 부모를 모시려고 삼국시대부터 찾아낸 엄청난 명당에 있는 사찰 터를 탐내는 사대부나 권력자의 이야기를 종종 본다. 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려고 가야사를 불태우고 승려를 죽이고 내쫓은 내력은 익히 알지만, (그만은 못해도 여러 군데서 흔적이 있다. 인접한 개심사의 앞에도 거대한 사대부의 묘가 있다. 사찰을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안다리는 건 것이다, 천안의 어사 박문수의 묘도 사찰 뒤에 있다, 밭다리 정도는 건 것이다.) 그런데, 전라감사가 제 아비 무덤을 쓰려고 관군으로 승려를 죽이고, 절을 불태우고 묘를 쓴 이야기가 있다. 소요산 ’연기사‘는 폐사지다. 사연인즉 유생들의 ’음택풍수‘의 신봉에서 비롯된다. 조선 후기의 실질적인 종교는 유교가 아니라 풍수교라 해야 옮는단다. 풍수교가 주는 매력은 다른 종교와 같이 죽은 후, 내세에서 복을 받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세에 복을 받자는 것이다. 조상의 묘를 잘 쓰면 하루아침에 천석꾼이 되고 정승과 판서도 가능하다. 명당찾기는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적 측면도 내포된단다. 1630년 즈음에 장성 부사를 지낸 아버지의 묏자리를 쓰기 위해 전라감사가 연기사를 파괴했단다. 100칸이 넘는 절에 승려가 100명은 되는 대찰을 관군과 승려의 전투에서 참혹하게 제압한 모양이다. 그리고 태우다 남은 사천왕를 불갑사로 옮겨졌단다. 장수강 강가에 버려진 사천왕이 영광군수와 불갑사 주지에 동시에 현몽하여 “나를 옮겨 달라” 외치니 해로를 통해 영광 불갑사로 옮겨 모셨단다.
인명을 살상하면서 대가를 치른 문제의 장성 부사의 묘는 현재 어찌 되었나? 절터에서 30m 위에 올라가면 있다. 소요산의 주맥이 내려오는 지점이다. 묘석에는 장성 부사의 묘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봉분의 크기도 보통 묘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현재는 잡초가 무성하고 여기저기 퇴락한 모습이다. 과연 발복을 했을까? 답사한 스님의 이야기로는 발복이 안 되었을 것이란다. 인과의 법칙으로 볼 때 그렇게 많은 살생을 치른 묘가 제대로 발복을 할 리가 없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묘에는 뱀 구멍이 하나 있다. 1991년 어느 땅꾼이 구렁이 두 마리를 잡았는데 길이가 두 발이라고 한단다. 그 구렁이를 약장수에 팔았는데 약장수는 돈을 잘 벌었다고 한다. 약을 팔기 전에 구렁이를 보여주고 팔았는데 그러고 나면 약이 많이 팔렸다는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약 장수는 그 원인이 이 구렁이 덕이라고 믿는단다. 살생의 죄업을 쌓은 관찰사는 ’금사망보‘를 받아 구렁이로 환생했고, 그 업보를 갚기 위해 구렁이는 약장수에게 팔려 가, 돈을 벌게 해 주었고 약장수는 그 돈으로 절을 지어서 다시 구렁이의 업보를 갚아 주는 것이라고 한단다. 금사망보는 누런 금줄을 몸에 두른 구렁이로 태어나는 업보를 의미한다. 지금은 연기사 터가 앞에 만든 저수지로 침수되었지만 당간지주도 주춧돌도 침수됐다. 그러나 화장실은 홀로 남아 있단다.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지사 중 여당인 국민의 힘이 12시도, 더불어서 민주당이 5시 도를 획득했다, 226개 자치단체 중 국민의 힘 145시군, 더불어서 민주당 63시군. 무소속 17시군. 정의당 없음 글을 쓰는 시점의 우리가 산시대 정국의 풍경도 기록으로 남긴다.)
2022.06.02.
조용헌의 사찰기행-2
이가서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