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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도 더 폴아야제
이름도 몰러, 성도 모른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정갑숙(67) 할매.
"얼릉얼릉 사가라고. 한나라도 더 폴아서 돈 벌어야제. 오늘은 헛개를 많이 팔아야겄어"
새벽에 싸 온 된장국에 흰 쌀 밥이 할매의 점심메뉴다. 식은 밥을 국물에 훌렁훌렁 말아먹고 다시 오고가는 손님에게 눈을 돌린다.
밥을 먹고 나자마자 손님이 물건을 사고 주고 간 만 원짜리 한 장을 흔들어 보이며 고쟁이 속주머니에 넣는 할매.
"건강에도 존 놈들이제. 나는 장사해야됭께 못 먹어도 요놈을 자식들한테 싸주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당께. 장사도 장사지만 애들 줄라고 존 놈만 골라서 추래놨어. 어미가 돼갖고 뭣이까 싶어서 늘 떳떳하들 못한디. 요렇게라도 뭔들 해주고 싶응께"
없는 것 빼고 다 팔제
콩나물, 두부, 당근 등 저녁 밥상에 오를 법한 싱싱한 채소를 팔고 있는 홍정자(53) 아짐.
"오메, 어째 오랜만에 온 것 같수?"
한번 물건을 구입해준 손님은 되도록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는 아짐은 지나가는 사람 한사람 한사람에게 넉살좋게 인사를 건낸다. 그 덕분에 아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단다.
"장사를 할라믄 요렇게 해야된당께. 처음에 장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할 때는 말 한마디를 못하는 쑥맥이었는디. 하다본께 요렇코롬 변했제. 나의 장사 노하우여" 다리가 아파도 자리에 앉아서 손님들을 맞지 않는다는 아짐.
"요기서는 난 새댁이랑께. 다들 어르신들이라 나는 애기여 애기. 젊은께, 젊은만치 더 많이 움직이고 뭐라도 더 열심히 해야된다고 생각한께 이러제"
갈 때 사셔도 되야 한바꾸 둘러봐
인심 좋기로 소문난 과일천사 강갑임(76) 할매.
"물건 한나 폴때마다 사람냄새도 풍겨야제. 장에서만 느낄 수 있당께. 내것 놈 주믄 다 내한테 복으로 도로와"
수줍음이 많은 할매는 자신이 터득한 장터에서의 법칙을 슬쩍 알려줬다.
금귤 한 바구니를 팔 때도 손님에게 봉투에 더 담아가라고 말하는 할매.
할매가 건네는 검은봉투에는 늘 사과 한 개, 배 한 개가 더 들어있다. 덕분에 손님들은 물건을 사고 덤까지 얻어가는 재미를 늘 맛본다.
한번 이 재미를 맛본 손님은 할매의 단골이 된다고 하니 날로 할매의 손이 커질 수밖에 없단다.
"오늘 폰 돈으로 생선 두어마리라도 사들고 들어가야긋어. 나도 폴고 또 놈의 것도 사는 것이제"
마수는 해야 할껀디
율무, 현미, 보리 등 잡곡류를 앞에 두고 쭈그려 앉아 있는 이정술(77) 할매.
아침 7시에 나와 장바닥에 물건을 펼친 지 4시간이 지났건만 마수를 못해 걱정이라는 할매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대목이 아니면 요놈은 사람들이 별로 안 찾드라고. 그래도 평소에는 요쯤되믄 2되씩은 팔리던디. 어째 오늘은 장사가 안될랑가 어찡가 시간이 지나도 주머니에 들어오는 놈이 없네. 다들 물어만 보고 가고…"
유난히 장사가 안 되는 날이면 몸도 마음도 추위를 느끼게 된다는 할매.
쭈그러진 작은 통으로 만들어 둔 난로만이 할매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매는 오늘 집에 들어갈 시간에 기약이 없다고 말했다.
엄니들은 날씨가 조금 더 풀리면 요놈저놈 존 것들로 치려서 산나물도 들고 나오고 묘목도 들고 나오고 집에서 직접 만든 메주도 들고 나와야겠다며 5일시장의 봄맞이에 한껏 들떠있었다. 해남읍5일시장에서는 밥상에 올라갈 콩나물, 쪽파, 고등어 등 싱싱하고 맛 좋은 놈들이 엄니들의 푸짐한 인심과 함께 검은색, 파란색 등 봉투에 담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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