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노는 동네(daum 진주 윈드서핑 클럽)에 올린 글 입니다***
사람 출입이 잦은 외국 바다에는 “high surf"라는 표지판이 가끔 있다.
그것은 “이곳은 수심이 깊고 위험하오니 수영을 금합니다. “라고 알림판을 설치한
우리의 여건과 비슷해 보인다.
그렇지만 주의보 내렸다고 절대 불가를 선언하는(행정 편의주의) 이 땅과
위험하지만 조심하며 즐길 수 있다는 그 동네의 유연성과는 대별된다.
마치, 근사해 보이려고 머리를 기르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었는데
나라에서는 타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며 경범죄의 가위를 들이대었던
차이라고나 할까?
금지와 통제의 차이다.
여기선 통제의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듯하다. ‘입산통제’, ‘출입통제’...
통제를 금지의 의미로 쓰지만 실제는 후자의 개념인 것이다.
“high surf"는 파도가 높다는 경고의 뜻이지 금지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높은 파도(겨울철 하와이에서 나오는 10미터 정도의 파도를 ‘조스’라고 하던가.
그 진원지는 일본이고...)를 기다린 서퍼에게 그 파도를 즐기지 말라는 것은
포르쉐나 페라리를 가진 사람에게 아우토반에서 살살타라는 얘기와 같다.
그러함은
모험가가 추앙받고 자국의 지폐에도 등장하는 사회적 정서와
‘와석종신’을 미덕으로 삼는 이 땅 유교의 전통과 대비된다.
그런 파도를 즐기는 일을 서핑이라 하니 돛을 달고 타는 게
윈드서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니, 뜻으로만 본다면(윈드서핑의 여러 종목: 코스 레이싱, 슬라럼, 수퍼 크로스
프리스타일, 웨이브 라이딩 등) 윈드서핑은 웨이브 라이딩에 해당된다.
한때, 윈드서핑과 보드세일링을 병용한 적이 있지만 요즘은 쓰지 않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롱보드를 탔던 시절에는 요트와 마찬가지로 돛을 통한 여행,
바람을 통한 항해가 가능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대거보드를 수납할 수 있었던 롱보드와 대거보드가 몸통에 굳은살처럼 붙어 있는 요트는
그런 면에서 자매지간인가?
그런 항해사가 세일러이고 세일러가 얼마나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면
여학생들의 교복을 세라복(세일러복의 속칭)이라 했을까?
뽀빠이도 “세라복‘을 입고 활약했다. 그의 알통은 시금치의 산물이고...
(그 시절 시금치가 과잉생산 되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시금치를 많이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는 언론플레이의 소산이었다)
“폭풍 속으로”라는 영화가 있었다.(패트릭 스웨이지, 키아누 리브스 주연)
원제는 "point break". 포인트 브레이크는 파도의 정점을 말한다.
그에 대비되는 말로는 쇼어 브레이크(shore break)
쇼어 브레이크는 피스톤의 흡입, 압축, 폭발, 다음 배기에 속한다.
포인트 브레이크와 쇼어 브레이크로 단락 난 삶.
도 아니면 모 인가? 어지자지인가?
비단옷 입고 “궁륭”이 있는 유택에 누우나
가마니에 싸여 잡초 밭에 누우나 진토 되기는 마찬가지라는
권주가를 들었을까?
짐 드레이크, 호왈 슈와이츠 두 선생이
윈드서핑을 창안한지 올해로 40년이 되었다 합니다.
요트를 타고 난 뒤 설거지가 귀찮아 꾀(?)를 낸 게
요트의 돛과 서핑보드의 보드를 합쳤다는 윈드서핑.
시야를 국내로 좁히면 오늘 윈드서핑을 시작한 사람도
아직까지는 윈드서핑 1세대입니다.
포인트 브레이크이던 악 소리 나는 플레이닝이던
서핑하며 바라보는 세상.
태평성세로구나!
첫댓글 플레이닝은 뭐인가요? 바람이 없는 상태인가?
ㅎㅎㅎ 그놈의 폴레이닝 때문에... 마약하는 사람이 그놈의 뽕때문에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스포츠는 그놈의 뽕이 다있는 것같아요...낚시꾼들은 손맛이라고 하고...
저번주 대부도에 승마하러 갔다가 한국에 윈드서핑과 스노보드를 처음 들여왔다는 분을 만났습니다....윈드서핑 1세대이시더군요....지금은 시화호에서 승마장을 운영하시면서 서핑도 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