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당대 최고의 SF작가인 아서 클라크의 원작을 몇 년 전 타계한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화했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2001 Space Odyssey)'는 SF 장르뿐만 아니라 영화사 전체를 통 털어도 손꼽히는 걸작의 하나로 거론된다. 이 작품은 1969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여러 첨단과학기술들이 소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느 통속적 SF영화들과는 달리 미래 과학기술에 관한 묘사가 허황되거나 그릇된 부분들이 거의 없어서 오늘날 다시 보아도 여전히 감동을 선사할 정도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른바 ‘HAL9000’이라 불리던 인공지능 컴퓨터이겠지만, 우주여행에서의 인간 동면 기술 역시 선구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즉 몇 년에서 몇십 년 이상의 오랜 세월을 우주선 안에서 보내야하는 우주비행사와 여행객들이 그동안 신체적인 노화를 늦추며 시간을 버는 동시에 식량을 비롯한 생활자원 등을 아낄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일부 동물들처럼 ‘겨울잠’을 자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주여행을 소재로 한 여러 영화에서 이 기술이 등장하는데, ‘에이리언(Alien)'에서 여주인공인 시고니 위버가 인공동면용 캡슐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밖에 ’행성탈출(Planet of the Apes)' 등에서도 인간 동면 장면이 나오는데, 다만 '로스트 인 스페이스(Lost in Space)'에서의 장면을 보면 단순한 동면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훨씬 낮은 온도로 완전히 냉동을 시키는 것인지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운데, 이 둘 사이에는 좀 차이가 있다. 즉 인간 동면 기술은 개구리, 뱀 등의 변온동물이나 곰, 다람쥐 등이 겨울잠을 자듯이 약간 낮은 온도에서 에너지의 소모량을 줄이는 것이므로 호흡이나 맥박 등은 낮으나마 유지가 되는 상태이다. 반면에 ‘인간 냉동’ 기술은 인체를 완전히 꽁꽁 얼려서 모든 기능이 정지된 채로 장기 보관하는 기술이다. 인간 냉동 기술이 소개되는 대표적인 영화로는 근육질 스타인 실베스타 스텔론 주연의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이 있다. 미래 사회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 단순히 감옥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신체가 얼려진 상태로 ‘냉동 감옥’에서 형기를 채우며 세뇌 프로그램을 통해 두뇌를 개조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범죄자인 웨슬리 스나입스를 체포해 냉동감옥에 보낸 형사 실베스타 스텔론 역시 업무상 중과실치사 혐의로 냉동감옥 70년형을 선고받고 갇히지만, 수십 년 후에 깨어난 범인과 형사가 미래사회에서도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계속한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에서도 역시 냉동인간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는데, 냉동에서 해빙된 주인공의 모습이 매우 코믹하게 그려지고 있다. 먼 훗날 냉동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물론 냉동 이전의 신체 상태를 그대로 지니며, 오랜 세월을 단숨에 뛰어넘은 탓에 심대한 문화적 충격과 여러 장벽 등을 느끼게 마련이다. 영화는 아니지만 최근 지상파 방송에서 방영된 모 드라마에서는 젊은 여성이 불치의 병에 걸려 냉동되었다가 세월이 지난 후에 살아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담은 바 있다. 그 여주인공이 깨어난 후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남자가 바로 냉동되기 전의 연인 관계였던 이의 아들이라는, 야릇한 애정구도가 전개된다.
그러면 이처럼 SF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나오는 인간의 인공 동면과 냉동 인간 기술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먼저 인공 동면부터 보자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으며, 어찌 보면 이미 인공 동면과 매우 유사한 원리를 의학에서 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물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뱀이나 개구리와 같은 변온동물들만 동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고등한 동물, 즉 곰, 두더지 등 인간과 소속이 같은 포유류의 여러 동물들도 동면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외과의 심장 수술 등에 활용되고 있는 ‘저체온 수술법’도 체온을 낮추어서 인간의 신진대사를 거의 멎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인공 동면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수술을 끝낼 수 있는 1-2시간 정도가 저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현재의 수준이며, 그 이상은 견디기 어렵다. 따라서 장거리 우주여행 등에 이용될 정도로 몇 년 이상씩 동면을 취하여 수명과 에너지를 아낀다는 것은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아직은 먼 이야기이다. 다만 동물의 동면에 관하여 동면을 유도하는 호르몬 등에 관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밝혀내고 이를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확립한다면, 미래에는 동면을 통하여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 동면과 유사하면서도 훨씬 온도가 낮은 상태로 보존하는 인간 냉동기술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인간의 몸 전체를 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성의 정자를 냉동 상태에서 보관한 후에 여성의 난자와 수정시키는 기술은 1950년대부터 가능해졌다. 냉동 인간에 관한 이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에팅거 교수인데, 그는 인간을 냉동시켜서 보존한 후에 해동하면 되살릴 수 있다고 학계에서 1964년에 발표한 바 있다. 1967년에는 냉동인간이 사상 최초로 탄생하였는데, 신장암을 앓았던 미국의 심리학자 베드포드 박사가 자신의 희망에 따라 사망 직전에 냉동 상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75세였다. 이론적인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아직까지 인간을 냉동시켰다가 되살리는데 성공한 적은 없지만, 이후로도 냉동인간이 되기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그려지듯이, 불치병에 걸렸거나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의학이 훨씬 발달했을 먼 미래에 부활할 것을 꿈꾸며 냉동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냉동인간 사업을 하는 곳은 미국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알코어 생명연장 재단(ALCOR Life Extension Foundation)이다.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장래를 기약하며 캡슐에 냉동상태로 잠들어 있고, 계약자만 400명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냉동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여야 하는데, 계약자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지만 사회저명인사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데몰리션맨 등의 영화를 보면 인간을 냉동시킬 때에 순식간에 꽁꽁 얼리는 식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냉동기법이 SF에서처럼 단순한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체액이 얼면서 세포가 파괴되어 곧바로 완전히 사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냉동인간을 만드는 첫 프로세스는 체온을 서서히 내리고 섭씨 3도 정도의 저온 상태에서 혈액을 비롯한 인체의 수분을 모두 제거하는 일이다. 그리고 혈액 대신에 동결방지 기능이 있는 냉동생명 보존액을 주입하는데, 겨울철에 자동차가 냉각수의 결빙으로 인하여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부동액을 넣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보존액의 주입이 끝나면 더욱 낮은 온도로 급속 냉동시킨 후, 장기 보존을 위하여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캡슐에 넣어 보관하게 되는 것이다. 냉동인간이 나중에 해동되어 되살아나는 과정은 물론 그 역순이 될 것이다. 액체질소 캡슐에서 꺼낸 후 서서히 온도를 높인 후, 동결방지 보존액을 빼내고 혈액과 체액으로 대체한 후에, 전기 충격 등의 심폐소생술을 써서 살리게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냉동인간이 나중에 성공적으로 깨어나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사람을 대상으로 마음대로 얼리고 녹이는 실험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냉동과 해동은 참으로 구현하기가 어려운 기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생체의 냉동과 해동에 관한 신비가 모두 벗겨진 것은 아니지만, 냉동기술은 꾸준히 발전하여 최근에는 항온동물인 개나 토끼도 얼린 후에 해동하여 살리는 것이 가능한 수준이라고도 한다. 또한 인위적인 실험이 아닌 사고였지만, 예전에 캐나다에서는 13개월 된 아기가 영하 20도의 날씨에 밖에 나가서 눈에 파묻혀 꽁꽁 얼어붙었지만, 10시간 만에 발견되어 구조된 후 의료진의 예상을 뒤엎고 극적으로 살아난 예도 있었다. 따라서 냉동인간이 부활하기를 꿈꾸는 먼 미래에는 불치병의 치료나 생명 연장뿐만 아니라, 냉동인간을 해동시키는 기술 역시 크게 발전하여 별 문제없이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냉동인간의 부활 여부와는 별개로, 과연 되살아난 인간이 예전의 지능이나 기억들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는데, 이는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인간의 지능이나 기억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도 워낙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냉동과 해동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뇌의 신경망과 프로세스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지, 복잡하기 그지없는 신경세포와 기억회로망을 완벽히 복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냉동인간을 되살리는 것 자체는 앞으로 가능할 것이라 믿는 과학자들도 기억의 유지와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뇌세포와 기억의 복구에 나노기술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얘기하기도 한다. 즉 아주 미세한 나노로봇이 돌아다니면서 뇌의 신경세포와 회로망의 손상된 부분들은 복원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해석이다. 먼 미래에는 나노과학기술 역시 크게 발전하여 나노로봇을 실용화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지금으로선 기대할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옛날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았다는 얘기가 있듯이, 인간의 불로장생(不老長生), 생명 연장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꿈이었다. 생명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평균 수명도 이미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상태이고 앞으로는 100세 이상 사는 경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 얘기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생명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처럼 비칠지도 모르는 인위적인 불로불사(不老不死)가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냉동인간이라는 첨단과학기술을 동원해서라도 생명을 더 이어나아가기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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