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소백산 성혈사(聖穴寺) 나한전
<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 459-99, 성혈사 (덕현리)>
2025.12.28(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영주 부석사 및 소수서원, 선비촌, 소수박물관, 단종복위운동 성지 금성대군 신단 탐방후
소백산 성혈사로 이동하여 약 30여분간 사찰 탐방시간을 갖는다(15:10~15:40)
<소백산 성혈사 일주문>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성혈사에 있는 조선후기에 중건된 사찰로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했다고 추정되는 성혈사는 소백산 국망봉(國望峯) 아래의 월명봉 동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성혈사는 원래 작은 암자였는데 좁은 계곡의 일부를 다진 뒤 승방(僧房)과 나한전을 지형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하여 사역(寺域)을 넓혔다.
성혈사의 명칭인 성혈은 사찰 남쪽에 있는 굴의 이름인데 옛날 이곳 바위 굴에서 성승( 학덕이나 덕행이 높은 승려)이 나온 굴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성혈사 심검당>
성혈사의 가람은 지형에 따라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좁은 계곡의 일부를 지형에 따라 절터로 조성하고 여기에 승방과 나한전을 남향으로 배치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나한전, 산신각, 삼성각, 심검당, 함담정, 누각, 요사 등이 배치되어 있다.
나한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은 근래에 들어 신축하였으며 당호와 현판도 없는 건물이 여러 채 있다.
성혈사는 개창 이후 기록이 없다가 조선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사세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내 중요 문화재로는 성혈사 나한전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신중탱화가 있다.
성혈사 입구의 성혈암(聖穴菴) 누각 성혈루
누각에는 성혈암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누하진입(누각 아래 통로로 들어가는 진입로) 형식의 누각 아래 통로에서 보는 대웅전
성혈사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대웅전 좌측 벽에는 1775년(영조 51)에 제작된 문화재자료인 신중탱화가 걸려 있다
대웅전 뒤로 보이는 큰 소나무는 만지송이라고 한다.
성혈사 산신각
산신각은 1886년 지어진 건물로 1칸짜리 단순 소박한 건물이다.
산신각에는 상투를 틀고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산신할아버지가 있다.
나한전은 1984년 보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553년(명종 8)에 처음 지어졌고 1634년(인조 12)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건물은 기둥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栱包)를 올린 다포(多包)계 건물이다.
건물의 앞면과 뒷면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空間包)가 칸 마다 각각 1구(具)씩 배치되었는데 안팎 모두 2출목(出目)으로 구성되었다.
건물 바깥쪽의 주두(柱頭) 위에 올려진 살미첨차[山彌檐遮]는 모두 쇠서[牛舌]의 모습이며
건물 안쪽의 첨차는 둥근 교두형(翹頭形)의 모습이어서 조선 전기의 특징이 다소 남아 있다.
건물 앞면의 창호는 조형이 뛰어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가운데 칸의 문에는 십장생(十長生)이 섬세하게 뚫새김[透刻]되었는데
주로 불·물·하늘에서 사는 생물인 게·물고기·개구리·학·용·동자상(童子像)·연꽃 등이다.
이러한 장식은 조선 중기 이후에 불교가 점차 서민의 의식을 포용하면서 사찰 건물에 민화적 요소를 강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832호 꽃살문을 간직한 성혈사 나한전
이곳 꽃살문은 단순히 심미적 기능이 아닌 꽃으로 엮은 화엄이며, 생명과 깨달음의 향연이다.
나무에 새겨진 청향과 생명의 맑음이 지금도 ‘향원익청’ 퍼진다.
나한전 꽃살문 앞에는 두 개의 석등이 나란히 서 있다.
석등의 지대석은 거북이가 받치고 간주 대신 두 마리의 용이 엉키어 앙련석과 화사석을 떠받치고 있다.
이 용 문양은 사자 같기도 하고, 해치 같기도 한 표정이 매우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옥개석 위에 보주를 얹은 형식으로 나한전 꽃살문과 어우러지며 천년의 신비스러움을 담고 있다.
형설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