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 번역은 한마디로 간단치가 않다. 중국 주나라 때 시모음집이면서 동시에 유교 經典으로도 읽히기에, 어떤 점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번역 내용이나 스타일이 극단을 오가기 때문이다. 또한 한나라 때는 훈고학적인 해석이, 송나라 때는 의리학적인 면이, 청나라 때는 고증학적 연구가 우세함에 따라 ‘어떤 관점을 따를 것인가’도 번역의 다양성을 낳아왔다. 어쨌든 중국 언어의 다의성과 애매성을 맛깔나게 번역한다는 건 “시 창작보다 어려울 수 있다”라는 학계의 의견이 시경 번역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四書三經에 속하기에 동양철학 전공자들에게도 필수 텍스트이지만, 시경 연구는 주로 중문학이나 한문학 전공에 쏠려 있다. 전공자가 많지 않은 현실이라, 총 9명으로부터 번역본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하나의 견해에 매몰되지 않았다”
“1차 번역조차 제대로 안된게 많다”라는 것이 국내 시경 번역에 대한 연구자들의 첫 반응이지만, 그래도 꼽을만한 성과들은 있다. 김학주 번역이 “가장 무난하”고, “안정성 있다”라며 총 6명의 추천을 받았다. “상세한 주석을 달되, 하나의 견해에 매몰되지 않고 나름대로 소화를 시켰다”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를테면, ‘關雎’편에서 ‘在河之洲’의 ‘河’자에 대해 “河는 黃河, 옛날에는 河가 黃河만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쓰였다”라며 정확성을 기했고, ‘卷耳’편에서 ‘彼周行’의 ‘周’에 대해 “周行은 ‘周나라의 國道’가 본뜻이나 인용되어 ‘대도’, ‘한길’의 뜻”이라며 원뜻과 인용의 뜻을 따로 밝혀두고 있다.
비교하자면, 성백효 번역보다는 주석이 다양하다는 점이, 리가원·허경진 번역과 하정옥 번역보다는 훨씬 풍부하고 상세한 해설로 원문이해를 돕는다는 의견이다.
시경은 원래 노래를 채집한 것으로 이전의 민간구전가요나 구전동요라 할 수 있지만, 오늘날엔 주석없이 읽기 어렵다. 오만종 전남대 교수 등은 시어의 맛에 대해서도 “양주동의 ‘시경초’ 국풍부분을 참조해 번역해 중국 고어의 축자적 의미와 시적 의미를 ‘무난하게’ 잘 살려 번역했다”라고 평가한다.
성백효 번역을 ‘최고’로 꼽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총 5명이 이를 추천했는데, 최석기 경상대 교수 등은 “국내의 시경 번역서 중 상당수가 중국의 백화문 번역이나 일본 번역을 재번역한 수준이거나 장구에 따라 단순하게 번역한” 것이라며, 주자의 ‘詩集傳’을 완역한 성백효 역이 “순수한 국내 지식”이다라고 추켜 세웠다.
‘시집전’은 조선조 내내 표준해석이 되었던 터라 우리 조상들이 이해한 시경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물론 주자의 주를 그대로 따른 것이라 이를 따르지 않고 다양한 해석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성백효 번역은 모든 연구자들이 한번씩 거쳐가는 ‘정석’이 되고 있다. 물론 여타 성백효 번역서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생들이 읽기에는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시어의 운율을 살리는 것도 중요
각각 두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것은 리가원·허경진 공역과 하정옥 번역이다. 리가원·허경진 번역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리가원 외 역을 ‘최고’로 꼽은 심영환 한국학중앙연구원연구원은 “주자 주에 구애받지 않고 중국의 최근 연구성과, 특히 屈萬里의 ‘詩經詮釋’을 토대로 번역했다”라는 점을 높이 산다.
심 씨는 “시어의 운율을 잘 살렸다”는 점도 빼놓지 않는다. 시경의 첫 시인 ‘關雎’를 통해 비교해보자. “關關雎鳩 / 在河之洲 / 窈窕淑女 / 君子好逑”에 대해 성백효는 “關關히 우는 雎鳩새 / 河水의 모래섬에 있도다 / 窈窕한 淑女 / 君子의 좋은 짝이로다”라고 옮겨놓았다.
반면 리가원 번역은 “구륵구륵 징경이는/황하 섬 속에 있고/아리따운 아가씨는/군자의 좋은 짝일세”라고 풀어놨다. 성백효 역이 원문을 살리는데 초점을 뒀다면, 리가원 역은 운율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김학주 역을 추천한 김흥규 고려대 교수는 전반적으로 비교해봤을 때 “리가원 역은 어중간한 수준이다”라고 평가하는데, 즉 “시적인 묘미에서나 또는 시경에 관한 충실한 해석에서 탁월하다기보다는 중간 수준에 머무른다”라며 다른 입장을 보였다.
하정옥 번역은 김학주 번역과 유사한 체례를 갖추고 있으며 주석과 평설이 자세하다는 점에서 추천됐다. “시어가 토속적이다”라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각 편마다 모시의 해설과 그 밖의 중요한 해석에 대해 설명과 비평을 하고 있어 중국전통 시경해석에 대한 이해를 아우를 수 있다. 시구 해석에서도 다양한 해석 가능성과 역자의 취사선택의 근거를 드는 것도 장점이다. 가령, ‘靜女’편의 ‘愛而不見’의 해석에 대해 하정옥은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못해'로 풀이한 이가 많은데, 근인 李辰冬의 ‘詩經通釋’과 馬持盈의 ‘詩經今註今譯’, 그리고 ?文開 裵普賢 공저 ‘詩經欣賞與硏究’에서는 淸 馬瑞辰의 ‘毛詩傳箋通釋’의 설에 따라 (愛를 ?(숨길 애)나 ?(어렴풋할 애)의 假借字로 봄) '그녀가 고의로 숨어서 보이지 않아'로 풀이 했다. 후자의 해석이 연인간의 친근미를 훨씬 돋보이게 해주고, 시 자체의 맛도 더욱 살려 준다"라고 설명한다.
이기동, 신영복, 신석초 번역은 나름의 특징이 있어 각각 한명으로부터 추천됐다. 장세후 영남대 교수는 신영복의 풀이가 “요즘 대학생들을 위한 시안이다”라며 그 의의를 말한다. 시경의 역사적 배경 및 쉬운 풀이가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다. 신석초 번역을 추천한 신두환 성균관대 강사는 “시경 번역은 난해하기로 소문났는데, 시경 주해서인 毛詩, 鄭箋, 集傳 을 토대로 하여 시인으로서 아름다운 시어를 구사해 번역했다”라며 문학적 가치를 높이 산다. 원문에 토를 달고, 어려운 시구에 상세한 주를 단 것도 큰 장점이다. 이기동 번역은 우선 철학전공자의 성과물이란 점이 눈에 띈다. ‘강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만큼 풀이가 자세해 “학부생 수준의 이해를 돕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편 이기동 번역은 몇몇 점에서 “아쉽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만종 교수는 “전통 해석을 최대한 탈피하고, 시가 자체에 근거해 해석을 했다”는 점을 높이 사면서도 “전통해석의 탁월한 성과를 반영하지 못했다”라며 그 소홀함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汝墳’편의 첫 장과 둘째 장 사이에 반복구가 출현하며, 이 반복구에서 단지 한 글자만 바뀌었다는 것(遵彼汝墳, 伐其條枚. 未見君子, ?如調飢/遵彼汝墳, 伐其條肄. 旣見君子, 不我遐棄). 이는 枚(줄기)와 肄(곁가지)를 단순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숨겨진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漢代의 모시주석에 이미 이 두자에 대해 "줄기를 枚라 한다(幹曰枚)", "베고 난 후 다시 자란 것을 肄라 한다(斬而復生曰肄)"라고 의미를 밝히고 있다. 즉 이 두 구 사이에는 일년이라는 시간의 경과를 글자 하나를 바꿈으로써 표현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시경 번역은 여러 논쟁지점이 있지만, 그중 음시부분이 늘 논란이 된다. 비정상적인 관계의 남녀간 애정을 읊은 시들을 ‘자신들의 감정을 읊은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군자나 현인이 세속의 음란함을 풍자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그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순수한 애정시로 보려고 하는 입장이 많아진 것은 ‘큰 변화’이다. 또한 다른 유교 경전에 비해 뛰어난 번역들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정상홍 동양대 교수는 “시의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대체로 답습되고 있”으며, “시제가 없고 격변화가 분명하지 않은 관계로 모시서나 주자의 해석을 기본으로 하면서 말이 조금씩 바뀌고 있을 뿐이라는 인상이 짙다”라며 현 시경번역 풍토를 비판한다. 나아가 연구자들은 “다산의 해석 등 국내 경학 연구성과가 반영된 것이 거의 없다”라며 시경번역의 독자적인 해석을 기대하고 있다.
>>추천인 명단 김흥규 고려대(고전시가), 신두환 성균관대(한문산문), 심영환 한국학중앙연구원(역사학), 심경호 고려대(한문산문), 오만종 전남대(중국시), 이병찬 충남대(고전비평), 장세후 영남대(중국시), 정상홍 동양대(중국고전문학), 최석기 경상대(한국경학) 이상 9명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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