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박목월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구에 그들은 떼를 져 물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위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는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치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이,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한국 대표 명시 1, 80쪽. 빛샘]===
유성에서→조치원 →공주 →온양 →서울로 여행하시며
나무의 모습에서 묵중, 침울, 고독을 보고 어느새 마음 깊숙이 이러한 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나무!
태어난 곳에서 결코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바람을 막아주며 뿌리로 주변의 흙을 감싸 앉아 든든하게 집을 보호합니다.
생을 다하면 땔감이 되어 연기로 하늘에 올라 이리저리 방황하다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오기도 하며,
기둥으로, 책상 걸상으로, 부처로, 십자가로, 장승으로, 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한 권의 시집도 나무였습니다.
나무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