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와 가시덤불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겪는 문제와 질문을 두고 김선일 교수와 이금주 교수, 두 신학자가 대화하며 그 답을 찾아 나선다.
대담을 위한 질문 선정 및 내용 정리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는 김선일 교수가 맡았다. 이금주(Jewel Hyun)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핵물리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도미하여 세계적 금융투자사인 피델리티 매니지먼트에서 28년 근무했다. 그후 고든콘웰신학교에 진학하여 신학석사와 목회학박사를 취득하고, 아프리카의 여성과 교육을 위한 선교단체인 Matthew 28 Ministries를 설립하였다. 일의 신학과 변혁적 리더십을 전문으로 하는 바키대학원대학교(Bakke Graduate University의 한국어 과정 위원장이며, 미국과 한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의 신학을 가르쳐왔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일의 즐거움과 소명’ 강연에 참여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일터를 소명으로 삼는 것은 알겠는데,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은 알아서 하겠는데 일에서 즐거움을 못 느끼겠어요. 많은 일들을 하는 가운데서 즐거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의 즐거움을 어떻게 찾고 누려야 할까요?
김선일: 이 질문은 일터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겠네요. ‘일의 즐거움’이라는 사상은 마태복음에서 충성된 종들에게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라고 한 말씀에 근거하는데요.
이금주: 일의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이론이지 실제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다른 문제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렵습니까?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것도 실제로는 얼마나 힘듭니까?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나는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는 일의 신학에서 근본적인 질문이자 일터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를 조망하는 큰 그림입니다.
김: 그렇군요. 유독 일터에서만 겪는 문제는 아니겠어요.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도인만이 처한 고민도 아닐 수 있고요.
이: 우선은 왜 내가 일에서 즐거움을 못 찾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에 문제가 있는지, 일의 요구가 너무 많은지, 일터에서 동료와 불화를 겪기 때문인지, 상관의 부당한 대우나 지시 때문인지, 아니면 일 외의 요인들 때문에 즐거움을 못 누릴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아이가 말썽을 부리거나 배우자와 사이가 안 좋다거나 하는 문제들이 우리의 일 뒤에서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일 자체가 내 적성과 안 맞을 수도 있죠. 사무직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장사하는 일을 하면 적성이 안 맞아서 괴로울 수 있습니다. 먼저 나에게 왜 일이 즐겁지 않은지 실제적인 이유를 찾아서 열거해 보세요. 그리고 가장 먼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부터 다뤄야 합니다.
김: 일로 인한 괴로움인지 일 외의 문제로 인한 괴로움인지를 분별하는 게 중요하겠군요.
이: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좁혀 가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초점을 바꿔야 합니다.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지 마십시오. 즐거움은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지 내가 찾아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즐거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은 ‘하나님께서 무슨 뜻을 갖고 나를 이 자리로 보내셨는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하는 이 일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분의 목적을 위해서 내가 쓰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김: 그래서 일의 소명을 모르고서는 일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 제가 직접 겪은 경험을 예로 들겠습니다. 저는 미국 회사에서 일할 때 즐겁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저를 시기하고 뒤에서 제 흉을 보며, 심지어는 제 상관에게 저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업무 성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김: 혹시 그때는 인종차별도 겪으신 것 아닌가요?
이: 예, 인종차별뿐 아니라 저는 삼진아웃 당할 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아시아인에다, 여성에다, IT 전공자도 아니었으니까요(웃음). 일은 많았지만 제 시간과 역량을 잘 조절해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문제였습니다. 만일 그때 제가 일의 신학을 알았다면 아마 즐거움을 찾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옮기기도 힘들어서 하는 수 없이 참고 일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서는 즐거움을 못 찾았고, 대신 나중에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 즐거울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김: 그래서 은퇴 무렵에 신학 공부를 하러 가신 것이고 선교단체도 설립하신 거군요.
이: 나중에 신학 공부를 하면서 일의 신학을 배우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좀 더 일찍 일의 신학을 알았다면 그때 힘든 일 속에서도 초점을 바꿔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먼저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통해서 어떤 소명을 주셨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일을 합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거나 고객 관리하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십니다. 또는 하나님을 내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소명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위해서 기도하는 소명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잘 못했습니다(웃음).
김: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그러한 위로자와 격려자의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이: 자신이 하는 일의 궁극적인 결과를 생각하십시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일하는 택시 기사가 어떻게 기쁨을 찾겠습니까? 피곤하기만 할 겁니다. 하지만 그 기사가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 손님을 인도하고, 그 결과로 그의 일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기쁘지 않겠습니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오전 내내 바쁘게 일하다가 오신 분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그들이 힘을 얻고 일로 복귀하도록 돕는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습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만 일한다고 즐거움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억지로 일터로 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김: 하나님께서 바로 이곳에서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것이 초점이 돼야 하겠군요. 즐거움 그 자체가 초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내 일을 통한 소명을 발견하면 일의 즐거움을 찾는 길에 들어설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목회자들이 일터에서 힘들어하는 교인들에게 단순히 믿음으로 견뎌라, 기도하라고만 할 것이 아니네요.
이: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일을 통한 하나님의 소명을 찾는 과정은 미래의 다른 일을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회사에 다닐 때 미래에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저는 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매니지먼트, 그리고 실행 결정과 평가 과정에도 참여했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고 억지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가 케냐에 가서 대학 안에 신학부를 설립하기 위해 총장, 부총장과 같은 리더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고 펀드레이징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일에 참여할 때 과거 피델리티 매니지먼트에서 일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금주 박사는 케냐 세인트폴 대학교(Saint Paul University) 신학부를 재건하는 일을 주도했다.]
이: 우리의 일터 경험으로부터 이러한 열매가 나올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는 평생 고용이 없어지고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의 일터에서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다는 인식은 내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일을 대할 때 즐거움이 옵니다. 저는 과거에는 성-속 이원론에 빠져서 이러한 원리를 몰랐습니다. 견디고 견디다 신학교에 가서 나중에 선교 일을 하다가 일의 신학을 배우고는 무릎을 치면서 깨달았습니다. 생각의 초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일에서 즐거움을 찾기보다, 일에서 하나님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십시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라고 했습니다. 견디기 힘든 일터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초점을 둘 때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쓰임 받는 나의 위치와 내가 하는 일을 조명해야겠네요. 이 어마어마한 우주에서 티끌만도 못한 나를, 그리고 극히 작은 내가 하는 아주 작은 일을 통해서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의 일을 이루신다는 것이 놀라운 기쁨입니다.
이: 그래서 우리 일터의 그리스도인들은 아침에 출근할 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에게 건강을 주셔서 오늘도 일하러 갑니다. 비록 힘든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기도하고 이제 출발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이고 청지기일 뿐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니, 저는 그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겸손히 따르기를 원합니다. 오직 저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김: 아멘!
첫댓글 내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극히 작은 내가 하는 아주 작은 일을 통해서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의 일을 이루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