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과 인생
(딤후3:15-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빛이 있으라”였습니다. 이렇게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하셨다고 창세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그 말씀이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그리스도가 되시어서 이 세상에 오셨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또 다른 분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14:16,17).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고 이 땅에서 떠나시면, 예수님 대신 땅에 있는 사람들의 힘이 되실 성령을 보내 주시게 하나님께 부탁해 본답니다. 그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랍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은 모두 진리인데,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의 진리가 깨달아지게 하시겠답니다. 말씀이 깨달아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서 책상에 앉아서 생각하면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서기관들의 서재에 계셨겠지요. 비린내 나는 바닷가에, 죄인이라고 소외하는 병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에게 들어가셔서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거기서 천지를 지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지으십니다. 말씀이 어떻게 우리를 지을까요? 성령이 알려주시는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지혜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마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5). 성경은 지혜가 있게 한답니다. 어린아이를 가지면 태교를 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심성도 곱게 가지고, 험한 꼴도 안보고, 머리가 좋으라고 수학문제도 풀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려고 노력합니다. 머리 좋으라고, 아이큐(IQ) 높으라고, 공부 잘 하라고 하는 일입니다. 머리가 좋으려면 머릿 속이 어때야할까요? 산 뇌와 죽은 뇌의 차이는 물리적으로 보면 똑같습니다. 산 뇌는 머릿속 세포와 세포 사이를 흐르는 신경간의 전기 자극이 있고, 죽은 뇌는 겉 모습은 똑같은데 겨울에 정전기 일어나듯하는 전기 스파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머리가 좋은 뇌와 머리가 나쁜 뇌의 차이는 무엇일가요? 이것은 인간이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뇌를 두고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는데, 전기 자극이 사라진 뇌를 다시 살려서 전기자극반응이 일어나도록은 할 수 없습니다. 제습기 코드를 꼽으면 돌아가고, 코드를 빼면 제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소용없습니다. 전기자극이없는 뇌는 코드를 뽑은 제습기처럼 아무리 주물러도 소용없습니다. 다시 살리는 코드는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그래서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주인께서 사람의 지혜도 주관하시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지혜를 얻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 답니다. 지혜는 지혠데, 구원에 이르는 지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머리만 좋으면 그만인 줄 압니다. 학교에 가면 공부 잘하면 모든 것이 통과입니다. 공부를 못하면 아무것도 통하는 것이 없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공부도 아닙니다. 외우기입니다. 공부는 두루두루 인격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지식이란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지적 축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됨은 없이 문제를 잘 풀면, 머리로 외우기만 하면 잘 한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더 이상 공부가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그 시절의 아이들에게 전부인양 하는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지혜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질 때 참 지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섬길 줄 아는 것이 참 지혜이고, 이 지혜가 그 인생을 구원합니다.
교육
사람을 가르치는 교과서는 인류가 후대에게 꼭 전수하고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천에서는 서희장군의 이야기가 유명해 졌는데, 작은 채구로 북방민족과 피흘리는 싸움을 하지 않고 말로 설득해서 북방의 영토를 회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도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가자지구에서 포탄을 서로 주고받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벌써 1천명이 넘게 죽었답니다. 그런데 서희장군은 문관이면서도 영토를 얻은 장군이랍니다. 서희동상 오거리 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 얼마나 당당합니까? 후대 사람들도 여기에 감동을 받으라고, 그래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평화를 유지하자고, 지금도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과서라는 것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참된 교육은 하나님의 감동에 있습니다. 사람이 감동을 해도 후대에 길이길이 미치고자하는데, 하나님이 감동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감동’이라는 말을 달리하면 ‘영감’이랍니다. 영감을 받고 곡을 지었다는 말, 시를 썼다는 말,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하는데, 뭔가 인간의 경지에서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체현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체현(體現),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몸으로 느끼게 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받는 지혜는 보이는 현상 그 너머를 보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그 이상을 보게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체현하고는, 불꽃 가운데서 몸으로 만나고는, 지팡이를 던지지 뱀이 되고 드니 또 지팡이가 되고, 품에 손을 넣으니 문둥병이 걸리고 또 넣었다가 빼니 멀쩡해지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지혜를 가졌습니다. 광야를 가는 동안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충실한 지도자가 된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을 체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영감을 가졌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만나 심령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1:7). 가르칠 것이 많은 세상에서 가장 먼저 가르쳐야할 것이 하나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답니다. 이것이 평생 왕을 하고, 온갖 부귀와 영화를 다 가지고 살았던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그 바탕이 없으면 모든 교육이 허사입니다. 공든탑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무서운 줄 알면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온전
온전케 되는 것은 예수님의 첫 설교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온전하다는 것은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빨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개인화기 손질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총을 언제든지 쏠 수 있도록 정비해 두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언제든지 끌고 나가도 되도록 바퀴에 바람도 채우고, 기름도 넉넉히 넣어 놓고, 자동차 열쇠도 출입구에 걸어 놓고, 사용하고자할 때는 언제든지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온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는 온전케 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은 우리를 복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이 쓰시기에 온전했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듣고는 분개할 줄 앓았고, 그런 골리앗에게 나가도 두렵지 않은 담력이 있었고, 믿음으로 나갈 용기가 있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겸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할 때에 다윗을 들어서 골리앗을 무찌르고, 온 천하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온전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 쓰시든지 쓰임받을 준비가 된 것을 말합니다. 식기 바구니에는 언제나 깨끗한 상태로 설거지가 되어 있어야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도 하나님께 언제나 찬양을 드리도록 무슨 일을 만나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늘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만나고 값진 것을 가져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는 천국을 소유하거나 누릴 수가 없습니다. 바울에게 욕심이 있었다면 귀신들린 처녀를 고쳐주고도 고소를 당해 싫컸 얻어맞고 감옥에 갇혀서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을 것이고, 감사의 기도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가 옥문을 열어 주지도 않았을 것입니다(행16:26).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 지면, 그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쓰시기만 하면 하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돌아보지 않으시냐고 항변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해지면 됩니다. 말씀은 지혜이고, 교육이고, 온전해지게 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