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에서의 어떤 죽음/이상길
약봉지 몇개 쌀 두어 줌과 만 팔천 칠백 삼십원의 유산을 남기고 그는 떠났다
폭염경보가 내려졌던 그날 오후 네시
날개 성치않은 선풍기의 서러운 배웅을 받으며
시신은 행정복지센터의 직원에 의해 사흘만에 발견되었고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연락닿은 연고자는 시신인수를 거부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영정사진은 민증의 빛바랜 마흔쯤의 젊은이가 대신했고
저마다의 지병을 가진 쪽방촌의 늙은이들이 동병상련의 침울한 술잔을 기울이는 빈소의 밤
비가 내렸다
한여름 빗방울은 에어컨 바람보다 낫다며 생전에 그리도 좋아하던 비가 내렸다
죽는날만이 유일한 기쁨이라던
그 없는 하늘아래로 비가 내렸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러시안 롤렛처럼 당겨질 방아쇠 앞에서도 쪽방촌의 그들은 태연했다
죽음보다 나을것 없는 삶
남겨진 자가 떠나간 자를 부러워하는 밤
여전히 비가 내렸다
떠나가는 자의 희비가 얼룩진 비는
그렇게 밤새도록 내렸다
첫댓글 너무 아프고 슬프다...
비를 참 좋아했던 어느 한 사람의 삶도
이렇게 아팠는데...
정말 아프고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