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을 정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단1:8,9)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물들지 않기 위해 무엇을 정합니까? 뜻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가만히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의 것들에 물들어 갈 수밖에 없으나, 뜻을 정하고 노력하면 능히 물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자(前者)입니까? 아니면 후자(後者)입니까? 가만히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서서히 세상의 것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것에 물들지 않고자 뜻을 정한 채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뜻을 정하기를 원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단1:8)
그들은 무엇을 위해 뜻을 정했습니까?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입니다. 왜 이 같은 것들을 멀리하기로 한 것입니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 왕의 진미에서 나오는 고기가 피를 뿌려서 잡은 고기였거나 둘째, 부정한 동물의 고기였거나 셋째,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도 세 번째가 가장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신12:23,24) /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낙타는 새김질을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레11:4~8) /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레11:10,11) /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전10:20,21)
만일 그들이 이런 음식을 그냥 먹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다른 소년의 경우처럼 철저히 바벨론 사람이 다 되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언어도, 이름도 다 바벨론식이었는데, 먹는 것마저도 바벨론식을 따른다면 어찌 바벨론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기는커녕 바벨론 사람이 다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겨우는 어떤 것들이 우리를 더럽힐 수 있습니까? 혹 술이나 담배, 게임중독, 관음증, 음담패설, 욕설, 거짓말, 학교폭력, 따돌리기 중 하나입니까? 요즘에는 마약이나 불법동영상, 몰카 등에 노출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까?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접했다가 나중에는 아예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이런 것들로 더럽히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노력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노력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뜻을 정하지 않으면 자꾸만 뒷걸음치게 되고 하나 둘씩 타협하게 되다가 결국 세상에 물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다니엘과 그 친구들처럼 뜻을 정하기를 원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단1:8 상) 이를테면 술이나 담배를 끊고 멀리하기, 욕설 금지, 음담패설이나 거짓말 하지 않기, 게임 시간을 정해놓고 하거나 다른 건전한 것으로 대체하기, 핸드폰 보는 시간 줄이기, 불건전한 영상물 보지 않기 등입니다.
물론 뜻을 정했다고 해서 마냥 평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련이나 역경이 닥칠 수 있습니다. 유혹이 더 심해지거나 주변의 회유가 더 집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일찌감치 우리의 뜻을 접거나 포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뜻을 정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해주십니다. 즉 주변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단1:9) 언제까지 그리 하십니까? 우리가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실행에 옮길 때까지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뜻을 정하되, 유혹이 더 심해지거나 주변의 회유가 더 집요해져도 그것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까? 원컨대 끝까지 인내하고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잘 이겨내면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열 배의 복, 즉 하나님께서 남들보다 열 배가 더 나은 복을 부어주십니다.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단1:19,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원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니엘과 그 친구들처럼, 세상의 것들에 물들지 않도록 뜻을 정하되, 어떠한 시련이나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잘 이겨내고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열 배의 복 주실 것을 소망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