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Radio)의 발명

라디오의 발명은 마르코니(Marconi, M.G.)의 무선통신법 발명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라디오는 다양한 기술자들과 발명가들, 사업자들이 함께 이루어낸 업적이다. 특히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는 마르코니보다 먼저 1894년 최초로 무선통신을 실현시켰다. 무선통신의 발명을 시작으로,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는 마이크로폰 개발에 따라 전파방송의 가능성이 열렸으며, 1906년 ‘라디오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드포리스트(Lee DeForest)가 신호를 증폭하고 전송하는 3극 진공관(audion tube)을 발명한 이후부터 라디오 방송이 가능해졌다.
방송과 더불어 수신기의 보급이 늘어났고, 진공관을 포함한 통신공업의 성장이 촉진되었다. 또 방송은 다른 무선통신과는 달리 수신음성을 감상할 수 있는 품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기술상의 문제를 안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1920년 1월 미국 워싱턴의 아나고스티아 해군비행장으로부터의 군악대 연주방송이 방송전파로 발사되었다. 정규 라디오 방송은 같은 해 11월 웨스팅하우스사(社)의 KDKA국(피츠버그)이 개국하여 제29대 하딩(Warren Gamaliel Harding) 대통령 선거날을 기해 선거결과 속보를 방송하였는데, 이것이 고정 방송국의 시초이다.
오늘날과 같은 광고방송을 하는 방송국의 시초는 1922년 개국한 WEAF국(局)이다. 영국에서는 1920년에 마르코니 무선회사에 의해서 실험방송이 행하여졌으나, 현재의 영국방송공사(BBC)가 1922년에 설립되어 최초의 뉴스 프로그램 방송을 개시하였다. 또 프랑스 국영방송의 방송개시는 1921년이고, 독일방송회사는 1923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무선전화 송수신 시험은 1915년경 서울 명동 입구에 있던 경성 우편국과 세종로에 있던 체신국 사이에서 실시되었으며, 최초의 무선방송시험은 1925년에 체신국 구내에 설치한 무선방송 실험실에서 출력 50W로 실시되었다. 최초의 정규 라디오 방송은 1927년 2월 16일 사단법인 경성방송국(JODK)이 출력 1kW, 주파수 690kHz로 정식으로 개국하면서인데, 세계 6번째이다. 당시 방송내용은 일본어방송으로는 경제시황보도와 한국어방송으로는 물가시세, 일기예보, 공지사항 등이었다.
당시의 라디오 수신기는 수화기식과, 많은 사람이 함께 들을 수 있는 전지식 수신기로서 확성기가 달린 수신기였다. 한국에서 최초로 라디오를 자체 생산한 시기는 1959년 11월 15일로 지금의 LG전자인 금성사에서 진공관식 A501형 라디오로서 80대를 생산한 것이다. 1935년 9월 부산방송국이 개국, 1936년 11월에는 평양방송국이 개국하였다. 8·15광복과 6·25전쟁 등 격동기를 거쳐 민간방송인 기독교방송(CBS)이 1954년 12월에 840kHz 5kW로, 문화방송(MBC)이 1961년 12월에 900kHz 5kW로, 동아방송(DBS)이 1963년 4월 1,230kHz(나중에 792kHz로 변경) 10kW로 개국하였다. 1964년 5월 1,380kHz 20kW로 개국한 라디오서울은 같은 해 9월에 주파수를 640kHz로 바꾸고, 1966년 동양방송(TBC)으로 개명하였다.
FM 겸용 라디오가 나온 시기는 1966년이며, FM 스테레오 라디오는 1970년에 등장하였다. FM방송은 서울 FM방송국이 1965년 6월 89.1MHz 1kW로 개국한 것이 시초이며, 그 후 문화FM·한국FM 등의 민간방송과 FM방송이 개국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일본의 패턴에 따른 민방의 다양화 형태는 1980년 12월을 기해서 유럽 여러 나라와 같은 공영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한편, 먼 곳의 방송까지 들을 수 있는 단파 라디오의 시판은 북한의 대남 단파방송으로 시판이 금지되었다가 1993년에 허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라디오의 역사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