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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가톨릭회관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청소년자활작업장 카페 립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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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카페 립입니다.”
커다란 나뭇잎으로 장식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두 명의 직원이 인사를 건넨다. 인천 가톨릭회관 1층에 자리 잡은 테이블 다섯 개의 아늑한 이 카페는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이 운영하는 청소년 자활작업장 카페 립(立)이다.
2010년 인천광역시로부터 위탁 받아 시작한 카페 립은 처음엔 냉난방도 전혀 되지 않는 작은 테이크아웃 전용 바였다. 재단 사무실이었던 1층 공간을 카페 립에 내주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면접을 거쳐 선발된 5명의 청소년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카페면서 동시에 교육장이죠.”
소장 구본영 신부는 “카페 립은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키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카페 립에서는 자립의지가 있는 청소년을 뽑는다. 한 기수에 6명씩 1년에 3번. 면접을 거쳐 뽑히면 한 달간 교육을 받는다. 교육에는 사회성 향상, 노동과 인권, CS교육 등이 포함된다. 교육을 담당하는 김이슬 간사는 “어느 직장에 가더라도 필요한 내용들”이라 설명한다.
그렇지만 카페를 운영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해야 하다 보니 구 신부와 두 명의 상담사는 커피 전문가가 다 됐다. 면접 땐 지원자들에게 “커피를 좋아하느냐”는 질문도 잊지 않는다. 김이슬 간사는 “면접 땐 전부 좋아한다고 답하지만 사실 전부 단 음료들”이라고 말한다.
“카페 모카, 카라멜 마끼아또 같이 단 커피들이죠. 카페 메뉴를 전부 만들 줄 알아야 하니까 교육하면서 하루에 한 잔씩 연습하고 마셔요. 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린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죠. 처음엔 쓰다고 맛없어 하는데, 신기하게 이쪽 일을 고민하는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게 돼요.”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드는 바 안에 들어가면 구 신부와 상담사들은 엄격해진다. 딸기 주스에 들어가는 딸기가 몇 그램인지, 음료를 매뉴얼대로 잘 만드는지 아이들에게 묻고 또 묻는 건 물론이거니와 후각과 미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담배도 금지, ‘사내 연애’도 원칙적으로 안 된다. 자체 테스트에 통과하지 않으면 손님들에게 나가는 커피를 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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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김이슬 간사, 구본영 신부, 임솔 상담사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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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격함은 교육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3개월씩 계약을 갱신하고 기본교육 기간 한 달을 포함해 총 10개월을 일할 수 있지만 구 신부는 “도중에 나가는 아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한 달 간의 어려운 이론 교육을 버거워하거나 바리스타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아이들도 있지만, 불안정한 생활 탓에 아무 연락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구 신부는 “규칙을 지키는 게 몸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제도권 안에 있던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게 쉽지 않죠. 의지를 갖고 자기소개서도 쓰고 면접도 보지만 오랜 시간 거리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거든요.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사랑과 관심을 오랫동안 받지 못해서 어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예의를 어떻게 갖춰야 하는지 배워본 적이 없는 거예요. 시간이 많이 걸리죠. 어려워요.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니까.”
이런 ‘부적응’은 카페 립을 시작한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장기 쉼터에서 나름의 의지를 갖고 자격증을 딴 아이들은 직장에 가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해고됐다. 사회를 더 경험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도울 공간과 사람이 필요했다. 구 신부는 “아이들의 욕구는 다양하기 때문에 카페뿐만 아니라 이미용, 네일아트, 제과제빵 등 다양한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희는 허브의 역할을 하면 어떨까 고민 중이에요. 상담이나 사회성, 서비스 교육 같은 기본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실제 기술을 배우고 일하는 건 기업체에서 하는 형식이죠. 그러려면 저희가 많은 기업들과 인프라를 구축해야겠죠.”
그런 시도 중 하나로 청소년자활작업장은 다음 달 인천의 큰 미용실과 협약을 맺는다.
구 신부와 김 간사는 입을 모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는데 매장 운영뿐 아니라 아이들의 상담, 교육 등 쉼터의 역할과 행정적인 부분까지, 이 모든 것들을 동시에 하려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고. 하지만 이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순간순간 아이들이 보여주는 변화에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어떤 변화인데요?”
“음, 그게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데…… 말하자면 아이들이 사람 눈을 바라보면서 말하는 것,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 예전엔 대답을 듣기까지 20초 기다렸어야 하는데 이제는 바로 자기 의견을 말해주는 것,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것, 이런 모습이에요. 그럴 때, 아, 여기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곳이구나 하고 느껴요.” (구본영 신부) “카페 립의 과정을 마친 아이들이 찾아와서 소식도 전하고, 자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고 그러거든요. 그럴 때 좋죠.” (김이슬 간사)
같이 있어본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미세한 변화에 기뻐하는 이들은 아이들에게 커피가 아니라 커피로 상징되는 힘을 길러주고 싶어 했다. 거친 풍파 속에 던져진 나룻배처럼 흔들리며 살아온 아이들이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아이들은 곧 어른이 되고 혼자의 힘으로 만만치 않은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바 안에서는 오늘도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연습이 한창이다. “○○아, 오늘은 에스프레소 한번 연습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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