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온이 공한 자리라야 참다운 삶
무명의 납자와 향엄 스님 선문답청매 선사가 밝힌 견처 주련삼아
광대무변한 천리는 진법계 뜻해
진정한 자유인의 경계는 짝 없음
문경 봉암사 조사전(祖師殿). / 글씨 서암홍근(西庵鴻根 1914~2003) 스님.
龍吟枯木猶生喜 髑髏生光識轉幽
용음고목유생희 촉루생광식전유
磊落一聲空粉碎 月波千里放孤舟
뇌락일성공분쇄 월파천리방고주
(용이 고목에서 우니 오히려 환희가 솟아나고/ 해골에서 광채가 빛나니 알음알이 깊어지네./ 한 자락 벼락같은 큰 소리는 허공을 부수고/ 달빛 파도치는 천 리에 홀로 배 띄우네!)
조선 후기 고승 청매인오(靑梅印悟 1548~1623) 스님은 동진 출가해 청허휴정 스님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명유정 스님과 함께 의승장으로 3년간 참전했다. 부안 월명사, 구례 연곡사에서 수행한 뒤 76세로 입적했다. 이후 문도들이 스님의 글을 모아 1633년 목판본 ‘청매집(靑梅集)’ 상·하권을 간행했다. 상권은 ‘전등록’ ‘벽암록’에 수록된 칠언절구 한시, 스님의 견해를 밝힌 시문 등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당나라 향엄지한(香嚴智閑 ?~898) 스님이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스님의 회상에 있을 때 이야기다.
위산이 묻길 “그대가 지금까지 경학을 섭렵했으니 그대가 태(胎)에서 나오기 이전 본래 모습은 무엇이냐?” 이 물음에 말문이 막힌 남양혜충(南陽慧忠 675~775) 스님이 향엄사를 짓고 수행하던 중 잡초를 베다가 기왓장을 대나무 숲에 던졌는데 기왓조각이 대나무에 부딪히는 소리에 풀지 못하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본래면목(本來面目) 화두를 타파했다는 내용이 ‘향엄격죽(香嚴擊竹)’이다. 이에 대해 이름 모를 납자와 향엄 스님의 선문답에 청매 선사가 밝힌 견처를 주련으로 삼았다.
납자가 향엄 선사를 찾아 “무엇이 서쪽에서 오신 뜻이냐?”라고 묻자 선사가 주먹을 주는 시늉을 하니 납자가 두 손으로 받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선사가 “이게 무엇인가?” 하니 답하지 못했다. 납자가 공손히 묻길 “무엇이 도입니까?” 하니 선사가 이르길 “용음고목(龍吟枯木)”이라 했다. 여기에 청매 선사는 “유생희(猷生喜)”라는 말을 보탰다.
고목에서 용트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고목에서는 움이 트지 아니하므로 잎이 돋아날 리 없다. 움이나 잎은 모두 번뇌 망상이 새록새록 생기는 것으로 번뇌와 망상을 여읜 것을 고목에 비유했다. 용음은 용의 읊조림도 되고 용트림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용은 깨친 이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유생희는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라는 찬탄이다.
납자가 “잘 모르겠노라”고 하자 향엄 선사는 “촉루리안정(髑髏裏眼睛)”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는 해골 속의 눈동자라는 표현이다. 해골은 분명 얼굴 모양을 이루는 골격이다. 그러나 다 뭉그러져 흩어지고 남은 해골에서는 오온으로 인해 육식이 일어나지 아니하므로 오온개공(五蘊皆空)이다. 공(空)은 분별을 꺼린다. 중생이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분별식(分別識) 때문이다. 이를 촉루식(髑髏識)이라고 한다. 오온이 모두 공(空)한 자리라야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다. 촉루식이 사라지면 허망한 감정이 사라진다. 이때부터 참다운 삶이 시작된다.
뇌락일성(磊落一聲)은 돌무더기 무너지는 소리다. 돌은 견고하다. 다시 말하면 좀처럼 깨트릴 수 없는 고지식한 관념이다. 따라서 자신의 견해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소리다. 이를 대오각성(大悟覺醒)이라 하며 이때 자기도 모르게 지르는 외마디를 일갈(一喝)이라고 한다. 허공마저도 부수어 버린다고 했음은 허공도 성품으로부터 나와서다.
월파는 달빛 비치는 물결이지만 여기서 달은 진리를 말하므로 진리가 물결치는 것이다. 천리는 한없이 넓고 커서 끝없는 광대무변(廣大無邊)이므로 진법계(眞法界)를 뜻한다. 방(放)은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속박에서 해방된 경계다. 고주는 걸음걸이에 비유하면 독보(獨步)다. 진정한 자유인의 경계는 누구와 짝하지 않는 것이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