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re the two "objective symptoms" of Stern’s "discovery"? What is the discovery?
답 : 스턴의 발견(Stern's discovery)은 발견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과 어휘가 두배로 증가하는 것이다. 이름을 묻는 행위는 생물학적 발달이라고 볼 수 있는 계통발생(phylogenesis)에서 개체발생(ontogenesis)에서 사회적발달(sociogenesis)의 단계라고 생각된다. 아동이 자신과 주변 사물과의 관계에서 사물을 객관적인 표상인 상징적 언어체계로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해는 말이 생각으로 변화하는 교차점(Vygotsky)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Stern is ONLY talking about ontogenesis, Mr. Yun. Kohler is very interested in phylogenesis. Vygotsky is very interested in sociogenesis. But Stern is a proud parent, watching his children learn language and grow up: he is only interested in child development.
The two “objective symptoms” are HERE:
4-2-11] 말이 지적인 것이 되고 생각이 말로 표현되는 것이 시작되는 그 결정적 계기(момент)는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두 징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징표들을 가지고 우리는 이 단절이 말 발달에서 발생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그리고 (말의 비정상적이며 지체된 발달의 사례들에서) 어떻게 이 계기가 정상적인 어린이의 발달과 비교하여 시간적인 차이를 보이는지를, 타당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계기는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
Buhler compares naming with the "inventions" of chimpanzees. In both cases there is a structured whole. What is the structured "whole"of the naming problem?
답: 형태주의자인 불러(Buhler)는 침팬지의 도구를 전체의 장(field)에서 그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naming(명명하기) 역시 말의 발달이라는 전체 장에서 문제의 해결의 하나인 발달의 단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Buhler is really not a formalist but a GESTALTIST, that is, a kind of structuralist. The Gestaltists saw development as a matter of acquiring STRUCTURES. For example, phonology can be seen as a structure made of vowels and consonants. Grammar can be seen as a structure made up of noun phrases and verb phrases (the early Chomskyan view). And so on.
Like structuralists today, they liked two-part structures of one kind or another. So for example in analyzing perception, the Gestaltists would divide the visual field into “figure and ground” or “foreground and background”. In analyzing practical activity (problem solving) they would divide the child’s activity into “problem and solution”.
Now, with NAMING, the structure is the name and the object. But what is the whole? Let’s have a look:
4-2-17] 뷜러(Bühler)는 이 발견을 침팬지의 발명에 비유한다. 그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에 따라 이 상황을 이런 식으로 혹은 저런 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늘 결정적인 지점에서 우리는 침팬지의 발명과 심리적으로 평행한 것이 드러남을 발견할 수 있을 것”(22, p. 55)이라고 말한다. 똑같은 발상이 코프카(K. Koffka)에 의해 펼쳐진다.
4-2-18] “명명하기 기능은” 코프카가 말하길, “침팬지의 발명과 완벽하게 평행함을 드러내는, 어린이의 발견이며 발명이다. 우리는 침팬지의 발명들이 구조화된 행위로 나타남을 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명명하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구조화된 행위를 볼 수 있다. 우리는 과일을 획득하고자 원하는 상황의 구조에 막대기가 들어간 방식으로, 낱말이 사물의 구조로 들어간다고 말하고자 한다(23, p. 243).”
When a child learns TWO names for everything (e.g. mother tongue and foreign language) does this alter the structured whole or not?
답 : 구조화된 전체(structured whole)를 형태심리학(gestalt) 하나의 장(field)이라고 생각할 때 모든 것(everything)에 대한 두가지 이름(two names)을 배우는 것은 구조화된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부분과 전체는 역동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Careful: in English “everything” is singular. It really means “each thing”. So the question is,when the child learns that each thing has two names, does that change the structure?
I don’t really know the answer (I’m not a structuralist). But it seems to me that this is a big problem with structuralism. It’s much less of a problem for Vygotsky, because for him the meaning of a name is always changing in development: the word “어마” means one thing for a one year old and something very different at age two.
Many of these changes are in fact differentions. So for example the word for each thing at age one might be “Dis” or “Dat” or even “This” or “That”. The child learns to differentiate a lot more when the child learns names. And then the child differentiates between names and nouns and so on.
So it seems to me that the structure DOES change. And for a structuralist, that is a problem. But not for a functionalist. And for a genetic account, change is the object of study, not the structure.
Vygotsky began this section by "laying aside"the question of whether phylogenesis and ontogenesis resemble each other. He ends with a NEGATIVE resemblance. What is it?
Remember that the KEY problem is this:
Are thinking and speech brothers or cousins or NOT RELATED AT ALL?
What’s the answer? Well, look at THIS:
4-2-20]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우리의 결론을 공식화할 수 있다.
4-2-21] 1. 생각과 말의 개체발생에서 우리는 또한 두 과정의 다른 근원을 발견한다.
4-2-22] 2. 어린이의 말 발달에서 우리는, 생각 발달에서 “말 이전 단계”를 설정할 수 있었듯이, 분명하게 “전(前)지적 단계”를 확정할 수 있다.
4-2-23] 3. 특정한 계기까지 전자와 후자는, 서로 독립적으로, 다른 노선을 따라 발달한다.
4-2-24] 4. 특정한 지점에서, 두 노선은 교차하고, 그 후에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지적인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