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을 걸으며(불암산길)
(당고개역∼화랑대역, 2017년2월9일)
瓦也 정유순
서울둘레길 제1구간 수락-불암산코스2를 걷기 위해 지하철6호선 화랑대역을 향해 지하철4호선 당고개역에서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고 아침 찬 공기를 가르고 출발한다. 지명에 당(堂)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대개 성황당(城隍堂)이나 유명한 굿을 하는 집이 있었던 곳으로 지명의 앞이나 뒤에 부쳐지는데 당고개와 팔당이 좋은 예이다.
<당고개역>
팔당(八堂)도 여덟 개의 당집이 있어 유래된 지명이고, 당고개도 옛날 성황당과 미륵당이 있었던 고개라 하여 한자이름으로 당현(堂峴)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미륵당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조선 영조 때 궁에서 사도세자를 모셔온 궁녀 이 씨는 사도세자가 죽은 후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눕자 내의원 봉사 한 사람이 죽었다고 거짓 진단하여 노원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몸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당고개역사>
이에 이 씨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봉사의 조카 남매를 수양아이로 삼았다. 그런데 이 씨의 신분을 안 동네사람이 어느 날 일하고 돌아오는 이 씨를 고개 밑에서 겁탈하려 하자 갑자기 사도세자가 나타나 구했으나, 이 씨는 곧 기절하였다. 효성이 지극한 수양남매는 마을사람들과 고개에서 기절한 이 씨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미륵불이 이 씨를 안고 있었다. 그 후 마을사람들은 이 고개에 미륵당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서울지명사전에서 발췌) 이 고개에 세워진 지하철4호선 역이 당고개역이다.
<당고개역 부근 상가>
당고개역 1번 출구 쪽으로 하여 서울둘레길 스탬프가 있는 철쭉동산 입구에서 날인을 하고 화살표 방향을 따라 길을 재촉한다. 일전에 내린 눈이 녹다가 다시 얼어 길바닥과 계단은 유리처럼 반들반들하여 걸음이 웅크려지고 걸음이 더뎌진다. 길을 걷는 도반 일부는 아이젠으로 무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다.
<철쭉동산 가는길>
<수락-불암2코스 스템프>
그리고 이 구간은 서울시 테마산책길인 <불암산 설화길>로 지정된 구간이다. 이구간은 “중계동의 신령스런 두 은행나무 이야기, 임진왜란 당시 대승을 거두었던 노원평 전투이야기, 학도암에 얽힌 명성왕후의 이야기 등 역사와 삶의 이야기로 가득 찬 구간이며, 불암산 전망대에서 탁 트인 조망과 소나무 숲 쉼터에서의 휴식,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과 마나는 것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산책길”이라고 안내판에 나와 있다.
그러나 몇 구비 돌아 나와도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이 보이질 않는다. 아마 ‘은행나무 이야기’는 중계동 은행나무사거리를 이야기 하는 것 같고, 임진왜란 당시 대승을 거둔 ‘노원평이야기’도 유정 사명당(惟政 四溟堂)의 승군(僧軍)과 관군(官軍)이 합동으로 왜군을 향해 대승을 거둔 마들평야 전투를 가리키는 것 같다.
<불암산 설화길 안내판>
시설을 제법 그럴듯하게 갖춰 놓은 도암샘(생성)약수터는 물줄기가 꽁꽁 얼어 한 방울도 보이질 않는다. 길을 따라 반 얼음 위를 앙금앙금 걸어가는데 근육질이 단단한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나온다. 안내판에는 남근석(男根石)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남근석은 오래된 우리의 토속신앙의 하나로 풍년과 자식 얻기를 기원하는 남근숭배의 직접적인 신앙물이다.
<생성약수터>
<남근석>
몇 마장 앞으로 더 나아가니 불암산 자락길이 나온다. 자락길은 서울둘레길에서부터 불암산생태학습관까지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보행 약자를 비롯한 모든 계층이 쉽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경사가 완만하게 데크로 만든 팔자(8)자형 순환 숲길이다. 그냥 버려두었으면 보통 숲 일진데, 자연을 보호하면서 생태학습관과 연계하여 친환경적으로 데크길을 만들어 놓은 발상이 좋아 보였다.
<불암산 자락길 안내도>
<불암산생태학습관>
불암산 자락길을 걸으면서 좀처럼 불암산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나무숲에 가려 보지 못했거니 하며 나아가는데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 정상에서 사방을 돌아보니 북쪽으로 수락산이, 서쪽으로 빌딩 숲을 건너 도봉산, 북한산 능선이 길게 뻗쳐 있고, 서울 동북부의 시가지와 남양주시 별내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불암산 전망대>
<수락산>
<북한산 능선>
불암산(佛巖山, 509.7m)은 큰 바위로 된 정상의 봉우리가 마치 납의(衲衣)를 입은 승려의 송낙(松蘿)을 쓴 부처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한다. 또한 불암산은 서울 노원구와 남양주시 별내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원래 ‘필암산(筆巖山)’이라고도 하였으며, 먹골[墨洞]∙벼루말[硯村]과 함께 필(筆)·묵(墨)·현(硯)으로 지기(地氣)를 꺾는다는 풍수지리(風水地理)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불암산>
길옆에는 공룡을 닮은 공룡바위가 나오고, <불암산횡단형건강산책로>를 따라 학도암(鶴倒庵) 가는 길옆에는 여근석(女根石)이 서있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이를 ‘밑바위’ 또는 넓적바위라고도 부르는데, 이 바위에 “돌멩이 하나라도 끼어 있으면 마을남자들이 바람을 피워 과부가 생긴다”는 속설이 있고, “처녀들이 모두 바람이 나 미혼모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바위 둘레에 가시나무를 겹겹이 심어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남근석이나 여근석은 일종의 토템으로 잉태와 다산을 상징한다.
<공룡바위>
<여근석>
학도암 가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경사가 가파른 길이다. 학도암(鶴倒庵)은 1624년 무공(無空)스님이 불암산에 있던 옛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자세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바튼 숨을 몰아쉬며 올라간 학도암의 위치는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말처럼 시야가 확 트이고 경관이 빼어나다. 아마도 이곳은 불암산의 감추어진 비경이 아닌가 싶다.
<학도암 전경>
학도암이 가까워질수록 암자 중앙계단 양옆에 심겨진 향나무 사이로 거대한 암벽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단청이 아직 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중창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대웅전 사이로 계단을 급하게 올라가니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鶴倒庵 磨崖觀音菩薩坐像)>이다.
<학도암 대웅전>
거대한 바위 면을 다듬어 돋음 새김으로 새긴 조선조를 대표하는 장대한 마애관음보살상이다. 높고 화려한 꽃무늬와 불상이 새겨진 감부형 보관을 머리에 쓰고, 약간 각진 얼굴에 눈은 가늘고 코는 유난히 큼직한 대신 입은 작게 표현하여 긴 상체와 격식 있게 앉아 있는 결가부좌(結跏趺坐)는 비록 장대하지만 안정감이 있는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마애보살은 1870년(고종 7)에 명성황후가 발원하여 높이 22.7m, 폭 7m로 조성했다고 한다.
<마애관음보살좌상>
학도암에서 내려와 다시 둘레길로 접어들어 완만한 능선을 따라 쭉 내려오면 휴전선 보다 더 견고하게 쳐져있는 철조망이 보인다. 조그마한 푯말에는 모 공기업의 인재개발원이라고 쓰여 있다. 계속하여 내려오니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가 보이는 공릉산백세문(孔陵山百歲門)이 나오고 도로건너에는 원자력병원이 보인다. 오늘의 종점인가 싶었더니 도로를 따라 약1㎞ 더 가야 오늘의 종점인 지하철6호선 화랑대역이 나온다. 교통신호를 여러 번 기다리며 가는 마지막 코스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공릉산백세문>
<원자력병원>
<내부순환고가도로-화랑대역 부근>
<화랑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