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즉, 산 믿음이냐? 죽은 믿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믿음도 있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요, <순교자>이기도 했으며, <의인 야고보>로도 불리운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하신 말씀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죽은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야고보는 죽은 믿음은 마치 "영혼없는 몸"과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영혼 없는 몸도 분명 몸은 몸입니다.
그래서 헬라어에서는 몸이나 시체를 둘다 [σῶμά 소마]라고 하고,
영어에서도 몸이나 시체를 둘다 <body>라고 합니다.
그러나 몸과 시체는 분명히 다릅니다. 곧, 몸은 움직일 수 있지만, 시체는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체 속에는 영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없으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죽은 믿음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실례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에게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니라."
"이와 같이"란 뜻은 "행함이 없으면"이란 뜻입니다.
헐벗고 굶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은 하지만, 막상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줄줄 모른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는 것입니다.
그를 염려하는 마음이 진정성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주지는 않으면서 말만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죽은 믿음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입으로 "믿습니다." "믿습니다"한다고 해도 실천이 없으니 그러한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헛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약2:20)
비록 말씀을 알고는 있을지라도 그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은 없으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함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고, 선후관계요 보완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즉, 참된 믿음은 행함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함을 유발하고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22)
그런 점에서 참된 믿음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맺게 만들어 성도를 완성시켜 가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인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행함을 유발합니까? 성령의 인도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2:22)
그런 점에서 참된 믿음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맺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인가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