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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5
11.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김 시 습
송도(松都)에 이(李)씨 성을 가진 서생이 낙타교(駱駝橋) 옆에 살고 있었다. 나이는 열여덟 살이며 풍채가 말쑥하고 타고난 재주가 비상하였다. 일찍부터 국학(國學)에 다녔는데 길을 가면서도 시서(詩書)를 읽고 다녔다.
선죽리(善竹里)의 지체 있는 집안에 최(崔)씨 성을 가진 처녀가 살고 있었다. 나이는 열대여섯쯤 되었는데 맵시가 요염하고 고우며 자수(刺繡)에 능하며 시부(詩賦)에도 뛰어났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풍류스런 이 공자여,
정숙한 최 낭자여.
그 재주 그 얼굴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구나.”
이 서생은 일찍이 책을 옆에 끼고 국학에 갈 때에는 항상 최 낭자의 집을 지나갔다. 북쪽 담장 너머로는 바람에 간들거리는 수양버들 수십 그루가 둥글게 둘러싸고 있었다. 이 서생은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곤 했다.
하루는 담장 안을 엿보았다.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는 벌들은 붕붕거리고 새들은 지저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자그마한 누각 한 채가 꽃숲 사이로 아른거렸다. 구슬발이 반쯤 가른 누각에는 비단 휘장이 낮게 드리웠는데, 아름다운 한 여인이 수를 놓다가 수바늘을 멈추고 턱을 고이고 시를 읊었다.
“홀로 사창(紗窓)에 기대니 수놓기도 더딘데
꽃 숲 속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 없는 봄바람 부질없이 원망하며
조용히 수바늘 멈추니 떠오르는 상념 하나.
길가는 저 서생 누구 집 도령일까,
푸른 깃 넓은 띠 버들가지 사이로 비치네.
오호라, 이몸 변해 제비라도 된다면
구슬발 후려 걷고 담장을 넘어가리.”
이 서생은 그 시를 듣고 자기의 재주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집의 담장은 높고 가파랐으며 정원은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는 단지 서운한 마음을 품은 채 국학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이 서생은 흰 종이 한 폭에 세 수의 시를 써서 기와 조각에 매달아 담장 안으로 던졌다.
“무산(巫山) 첩첩한 안개
그 위로 솟은 봉우리 형형색색 쌓여 있네.
고뇌하던 양왕(襄王) 그곳에서 잠들었으니
구름 되고 비가 되어 양대(陽臺)에서 만나보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문군(卓文君) 꾀어내듯
사모하는 마음 이미 넘쳐 흘러.
담장 위 만발한 붉은 도리화(桃李花) 요염한데
바람 불어 꽃이 지니 흩어진 곳 어디일까.
좋은 인연일까 나쁜 인연일까,
헛된 이내 시름 하루가 한 해 같네.
이십팔 자 시 한 수에 인연이 맺혔으니
남교(藍橋) 어느 날에 신선을 만날까.
최씨 처녀는 시녀 향아(香兒)에게 시를 가져오게 하여 읽어 보았다. 바로 이 서생이 쓴 시였다. 그녀는 두 번 세 번 거듭하여 글을 읽은 후 마음이 즐거워져 짤막한 종이에다가 몇 자 적어 담장 밖으로 던졌다.
“도련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해질 무렵에 만납시다.”
이 서생은 그 글대로 황혼이 깔리자 처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문득 복숭아나무 가지 하나가 담장 밖으로 넘어와 흔들거렸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넷줄에 매달린 대광주리가 담 밖으로 드리워 있었다. 이 서생은 그것을 타고 담장을 넘어갔다.
동쪽 산에는 밝은 달이 걸려 있는데 꽃 그림자는 땅 위에 머물러 있고 맑은 향기가 그윽히 풍겨 나왔다. 이 서생은 신선들이 사는 곳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은근히 즐거웠지만, 사랑을 위하여 몰래 숨어들어왔음을 떠올리자 머리털이 곤두섰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니 최씨 처녀는 꽃 숲 속에 앉아 있는데, 시녀 향아와 함께 꽃을 꺾어 머리에 꽂은 채 구석진 곳에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녀는 이 서생에게 미소를 띄우면서 먼저 두 구절을 읊었다.
“복숭아나무 배나무 사이 꽃송이는 탐스럽고,
원앙금침(鴛鴦衾枕) 위론 달빛이 곱도다.”
이 서생은 이어서 읊기를,
“어느 때인가 봄소식이 샌다면
비바람 무정하고 또한 가련하리.”
이 서생이 시 읊기를 마치자 여인은 안색을 고치고 말하기를,
“본디 도련님과 더불어 평생을 기추(箕箒)처럼 받들며 영원히 즐거움을 나누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도련님께서는 어찌 그런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까? 소첩은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아무 의심하는 마음이 없거늘, 장부의 의기를 지니신 도련님께서 그런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하시다니요? 다른 날 규방에서의 일이 부모님께 알려져서 책망을 받는다 하여도 소첩이 감당할 것입니다. 향아는 방안에 들어가 술과 과일을 내오너라.”
향아가 분부대로 떠나자 사방은 조용하여 사람의 소리라고는 들리지 않았다. 이 서생인 묻기를,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인이 답하기를,
“여기는 북쪽 정원 가운데 있는 작은 누각 아래입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외동딸인 저 하나를 매우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부용지(芙蓉池) 못 가에 따로 누각을 지어주셨습니다.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니 저로 하여금 시비와 더불어 그 경치를 즐기도록 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집안 깊숙한 곳에 거처하시니, 비록 웃고 떠든다고 한들 쉽게 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인은 이 서생에게 향기로운 술을 한잔 따라 권하면서, 고풍시(古風詩) 한 편을 읊었다.
“난간에 몸 내밀고 부용지 바라보니
물 위 연꽃 무리 사람과 함께 속삭이네.
향기로운 안개 자욱하고 봄빛은 따스한데
새 노래 지어 내어 백저(白紵)를 부르도다.
달빛은 꽃그늘 비쳐 모포에 스며들고
긴 가지 잡아당기니 꽃비가 뿌리도다.
부는 바람 향기 날려 옷자락에 묻어나고
가녀(賈女) 봄나들이 봄볕 아래 즐겁도다.
비단 소매 한 번 떨쳐 해당화를 희롱하니
꽃 속에 잠든 앵무새 놀라서 깨어나네.”
이 서생이 즉시 화답하기를,
“우연히 도원(桃源)에 드니 꽃들은 만발하니
사모하는 마음이야 말로 할 수 없구나.
취환(翠鬟) 갈래 머리 금비녀 낮게 꽂고
선명한 봄 적삼 새로 지어 푸르도다.
봄바람 산들 불어 꽃봉오리 꺾었으니
많고 많은 꽃가지에 비바람 불지 마오.
나부끼는 선녀의 소매 너울너울 흔들리고
계수나무 그늘 속엔 항아(姮娥)가 춤을 추네.
좋은 일 마치기 전에 근심이 따르는 법,
새로이 노래 지어 앵무새 깨우지 마오.”
이 서생이 읊기를 마쳤다. 여인이 이 서생에게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분명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도련님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어 우리의 정을 맺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여인이 북쪽 창문으로 들어가자, 이 서생도 여인을 따라갔다. 누각에는 방이 하나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과연 그 안에 들 수 있었다.
방 안에 있는 문방제구(文房諸具)를 펼쳐 놓을 수 있는 책상은 매우 깔끔했고, 한쪽 벽에는 ‘연강첩장도(煙江疊嶂圖)’ 한 폭과 ‘유황고목도(幽篁古木圖)’ 한 폭이 걸려 있었다. 모두 이름난 그림이었다. 그림 위에는 시가 적혀 있었는데 누가 썼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그림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었다.
“그 누가 붓 끝에 힘이 넘쳐
깊은 강 첩첩한 산을 이렇게 그렸을까.
웅장도 해라, 방호산(方壺山) 삼만 장,
구름 위로 솟아나니 높고도 높구나.
산자락 멀리 뻗어 아득히 몇백 리,
눈앞의 가파른 모양은 푸른 소라 같네.
드넓은 푸른 물결 하늘가에 닿았는데
해질녘 바라보니 고향 생각 솟아나네.
그림 바라보니 쓸쓸하고 삭막해
상강(湘江) 비바람에 배 띄운 듯하네.”
또, 다른 그림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바람 부는 그윽한 대숲 구슬픈 소리 울리고
우뚝 솟은 고목나무 사모의 정 품은 듯.
이리저리 굽은 뿌리 푸른 이끼 끼어 있고
구부러진 늙은 가지 벼락에 시달렸네.
가슴 속 담겨 있는 조화로운 뜻,
묘한 이 풍경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할까.
위언(韋偃)과 여가(與可) 이미 죽었으니
드높은 조화로움을 몇 사람이나 알까.
활짝 갠 창 너머로 그윽히 마주 보니
환상적인 그 경지 볼수록 사랑스럽네.”
한쪽 벽에는 사시(四時)의 경치를 읊은 시가 한 폭 걸려 있었다. 그 또한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필법은 송설(松雪)을 본받아서 서체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그 한 폭에 쓰인 것은 다음과 같았다.
“부용장(芙蓉帳) 은은한 향기 실처럼 걸려 있고
창 밖에는 살구꽃 비 내리듯 뿌려지네.
누대 위 하룻밤 꿈 파루(罷漏) 소리에 사라지니
신이화(辛夷花) 짙은 둑에 백설조(百舌鳥) 울어대네.
제비 나는 긴 하루 규방은 깊숙하니
게으름만 늘어 말없이 수바늘 멈춘다네.
꽃가지 아래로 쌍쌍이 나는 나비,
그늘진 동산에서 지는 꽃 다퉈 좇네.
서늘한 산들바람 푸른 치마 스쳐가니
부질없는 봄바람에 애간장이 끊어지네.
말 못하는 이 심정 누가 알아줄까,
온갖 꽃 피어난 뜰엔 원앙새 춤을 추네.
봄빛 깊게 들어 세상에 가득한데
붉은 빛 푸른 빛은 사창(紗窓)에 비치도다.
정원을 바라보며 봄기운 이기지 못해
주렴을 살짝 걷고 지는 꽃 바라보네.”
또, 두 번째 폭에 쓰인 것은 다음과 같았다.
“피어나는 밀싹 위로 어린 제비 파닥이고
남쪽 정원 곳곳에는 석류꽃 피는구나.
푸른 창가엔 아가씨 가위 소리
자주 구름 잘라내어 붉은 치마 만든다네.
매화 열매 익는 시절 가랑비 뿌리고
홰나무 그늘 꾀꼬리 울고 주렴으로 날아드는 제비.
이 한 해 풍경은 또 지나가니
동화(棟花) 떨어지고 새 죽순 솟아나네.
푸른 살구가지 집어 꾀꼬리를 깨우니
마루위 서늘한 바람 해 그림자 뉘엿뉘엿.
연잎 향기롭고 못물은 가득해,
푸른 물결 깊은 곳에 노자 목욕하네.
등(藤) 평상 대자리에 물결 아른거리는데
소상강(瀟湘江)에 조각구름 떠 있는 병풍 한 폭.
고달픔 못 이겨 낮잠을 설치고 나니
창가에 비끼는 해 서산으로 뉘엿뉘엿.”
세 번째 폭에 쓰인 것은 이러했다.
“가을바람 싸늘한데 찬 이슬 맺히고
달빛은 선연한데 강물은 푸르도다.
한 소리 두 소리 기러기 날아오니
또다시 들리는 금정오동(金井梧桐) 지는 소리.
평상 밑에 온갖 벌레는 구슬프게 울어대고
평상 위 예쁜 여인은 구슬 같은 눈물만.
고운 임 멀리멀리 싸움터에 가셨으니
오늘밤 옥문관(玉門關)에도 저 달빛 비추려나.
새옷을 만들려니 가위가 싸늘해
나직히 시녀 불러 인두를 청했지만,
인두에 불 꺼진 줄 미처 몰랐으니
나직이 혀를 차고 머리 한 번 긁적이네.
작은 못 연꽃 지고 파초잎도 퇴색하고,
원앙(鴛鴦) 새긴 기왓장은 첫서리에 젖었다네.
묵은 근심 새 정한(情恨) 막을 길이 없는데
구슬피 들려오는 골방 귀뚜라미 소리.”
또, 네 번째 폭에 쓰인 것은 이러했다.
“매화 가지 하나 창가에 어른거려
바람 센 서쪽 행랑 달빛은 밝구나.
화롯불 아직 살아 부저로 뒤적이고
고개 돌려 아이 불러 차솥을 바꾸도다.
간밤에 내린 서리 나뭇잎 놀래키고
돌개바람 눈을 날려 긴 복도에 뿌려대네.
부질없는 하룻밤 임 그리는 마음,
옛적 싸움터인 빙하(氷河)를 헤매이네.
창에 가득 붉은 햇빛 봄날처럼 따사롭고
근심 어린 예쁜 눈썹 졸음 마저 엿보이네.
병에 꽂힌 작은 매화 봉오리는 반만 피어
부끄러워 말 못하고 원앙새만 수를 놓네.
서리 바람 싸늘히 불어 북쪽 숲을 뒤흔들고
달밤에 우는 겨울새 근심만 더해 주네.
등불 앞 떨어지는 임 그리는 눈물에
가는 실 젖어 꺾여 바늘 꿰기 힘들구나.”
한편으로 따로 작은 방이 있었다. 각종 침구가 매우 정결했고, 휘장 밖에는 사향(麝香)을 피우고 난고(蘭膏) 등잔불을 밝혔는데, 그 빛이 환하여 대낮과 다름이 없었다.
이 서생은 여인과 더불어 사랑의 환락을 마음껏 누리며 며칠을 머물렀다. 이 서생이 여인에게 이르기를,
“옛 성현들께서도 부모님이 계시면 놀러 나갈 때에는 반드시 가는 곳을 알려야 한다고 하셨소. 나는 집을 나온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니, 부모님께서 반드시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실 것이오. 어찌 사람의 자식으로서 할 도리라 하겠소.”
여인은 서글프게 여기면서도 이에 따를 수밖에 없어 담을 넘어 보내주었다. 이 서생은 그 이후로 저녁이면 최 처녀의 집을 찾지 않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이 서생의 아버지가 꾸짖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것은 장차 성현의 인의(仁義)의 격언을 배우려는 것인데, 요사이 저녁에 나가서 새벽에 돌아오는 것은 어찌된 일이냐? 필시 경박한 무리들을 흉내 내어 남의 담장을 엿보고 규방의 처자를 희롱하는 것일 테니, 이 일을 사람들이 알면 모두 내가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할 것이요, 그 처자의 집이 지체 높은 명문이면 반드시 네 미친 행동 때문에 문호(門戶)를 더럽히고 가문에 누가 될 것이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니, 너는 속히 영남(嶺南)으로 내려가 집안 노비들이 농사하는 것을 감독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거라.”
그리고 다음날 아침 즉시 울주(蔚州)로 아들을 떠나보냈다.
최 처녀는 매일 저녁 화원에서 이 서생을 기다렸다. 몇 달이 지나도 오지 않자 무슨 병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 하여 향아에게 명하여 몰래 이 서생의 이웃에게 물어보게 하였다. 이웃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집 도령은 아버지께 죄를 지어 영남으로 떠난 것이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오.”
최 여인은 이 말을 전해 듣고 병이 생겨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일어서질 못하고,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며,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고, 얼굴색은 생기를 잃고 초췌하였다. 부모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그 상태가 어떤지를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처녀 방에 있는 상자를 뒤져 보니 이 서생과 주고받은 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릎을 치며 놀라 말하기를,
“아이구, 자칫하면 딸을 잃을 뻔했구나.”
딸에게 묻기를,
“이 서생이 도대체 누구냐?”
이에 이르자 최 여인은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부모에게 사실을 아뢰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를 키워 주신 은혜가 깊사온데 어찌 숨기겠습니까. 소녀가 가만히 생각하건대 남녀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인간의 정리(情理)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떨어지는 매화 열매처럼 좋은 날 놓치지 말라’고 《시경(詩經)》‘주남(周南)’에서 노래하였고, 여자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흉하다는 것은 복희씨(伏羲氏)가 쓴 《역경(易經)》에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냇버들과 같이 여린 몸으로 뽕잎이 시드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옷에 이슬을 묻힘으로써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되었습니다. 덩굴과 이끼가 나무에 의탁해 피어나는 것처럼 이미 위아(渭兒)처럼 한 남자의 아낙이 되었으니, 죄가 이미 가득하여 그 누가 가문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저 짓궂은 도련님과 하룻밤 정을 통하였으니 원망만 까마득하게 쌓일 따름입니다. 보잘것없고 약하기만 한 소녀의 몸으로 홀로 괴로움을 참으려 하니, 사모하는 그리움은 날로 더하고 마음의 병은 날로 깊어가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장차 원한 맺힌 귀신이 될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제 남은 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나, 만일 거절하신다면 죽음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마땅히 이 서생과 더불어 황천(黃泉)에서 만날지언정 다른 가문으로 시집가지는 않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부모는 이미 그녀의 굳은 의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두 번 다시 그녀의 병에 관해 묻지 않고 한편으로 경계하고 한편으로 달래며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또한 중매쟁이를 시켜 예를 갖추어 이 서생의 집으로 보내니, 이 서생의 아버지는 이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우열에 대해 물은 후 말하기를,
“우리 집 망나니가 비록 어려서 바람난 짓을 하였지만 학문에 정통하였고 신수가 제법 사람답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뒷날 용두(龍頭)를 차지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날릴 수 있겠지요. 그러니 그 배필을 급히 구할 생각은 없습니다.”
중매쟁이가 돌아와 이 말을 전하니, 최씨는 중매쟁이를 다시 보내어 말하기를,
“지금 친구들이 모두 그 댁 아들이 재주가 뛰어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찌 평범하게 묻혀 지내겠습니까? 의당 빨리 혼례를 치러 두 가문이 하나가 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중매쟁이가 다시 이 말을 이 서생의 아버지에게 전하자,
“나 역시 젊어서는 책을 끼고 다니며 글을 익혔지만 다 늙도록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노비들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친척들도 도와주지 않는데다가 생활이 짜임새가 없어 가계가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권세있는 대가에서 어찌 이런 빈곤한 선비의 자식을 사위로 삼으려 한다는 말입니까. 이는 필시 허튼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가문을 과하게 꾸며 말하여 지체 높은 집안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중매쟁이가 이를 최씨 집안에 전하니 최씨가 말하기를,
“납채(納采)의 예(禮)에 관한 예물 일체는 우리 집에서 다 처리할 터이니, 좋은 날을 가려서 아름다운 인연을 맺기를 희망합니다.”
중매쟁이가 다시 이 이야기를 전하니 이씨 집안에서도 마침내 고집을 꺾고 사람을 보내 이 서생을 불러 그의 뜻을 물었다. 이 서생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시 한 수를 지었다.
“깨진 거울 다시 합칠 때가 왔으니
은하수엔 오작교 우리 만남을 돕는구나.
마침내 월하노인(月下老人) 붉은 실 맺어주니
봄바람에 우는 자규(子規) 원망일랑 말지니.”
최 처녀는 이 사실을 알고 병세가 차차 나아졌다. 그녀 또한 시를 지으니,
“나쁜 인연이 이제는 좋은 인연 되어
다짐했던 그 맹세 드디어 이루었네.
임과 함께 녹거(鹿車) 끌고 갈 날 언제일까.
아이야 날 일으켜 다오, 꽃비녀 매만지리라.”
이에 길한 날을 선택하여 혼례를 치르니 인연의 실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부부가 된 이후부터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손님을 대하듯 하니 비록 홍광(鴻光)이나 포환(鮑桓)이라 한들, 그들의 절개와 의리를 따를 수 없었다. 이 서생은 다음해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니 그 이름이 조정 구석구석에 알려졌다.
신축년(辛丑年)에 홍적(紅賊)이 서울을 침략하여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신하였다. 도적들은 집을 불태우고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잡아먹으니, 부부와 친척들은 서로를 지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가 각자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서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깊은 산중에 숨어 있었는데, 한 무리의 도적이 칼을 빼들고 쫓아왔다. 이 서생은 겨우 달아날 수 있었지만, 그 아내는 도적들의 포로가 되었다. 도적들은 그녀를 겁탈하려 하였지만 그녀는 크게 꾸짖기를,
“호랑이에게 잡혀먹은 귀신같은 놈들아! 나를 죽여 씹어 먹어라. 차라리 이리 뱃속에 들어갈지언정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될까 보냐!”
도적은 노하여 그녀를 죽이고 살을 발라내어 황야에 흩뿌렸다.
이 서생은 간신히 몸을 보전하여 도적들이 이미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가 살던 옛집으로 돌아갔지만 집은 전란통에 이미 불탄 후였다. 여인의 집으로 찾아가니 행랑은 황량한데 찍찍거리는 쥐, 울어대는 새소리만이 요란했다. 이 서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작은 누각에 올라 눈물을 참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쓸쓸히 홀로 앉아 옛날 즐겁게 놀던 일들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인 것만 같았다.
이경(二更)이 되자 어슴푸레한 달빛이 깔리니 그 빛은 누각 안의 대들보를 비췄다. 어디선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곁에까지 다가오니 바로 최씨 여인이었다. 서생은 그녀가 이미 죽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절실해 의심하지 않고 물었다.
“어디서 난리를 피하여 온전히 목숨을 보전했소?”
여인은 이 서생의 손을 잡고 구슬피 울더니 사정을 이야기했다.
“첩이 본디 양가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어버이의 가르침을 받들어 자수(刺繡)와 재봉(裁縫)에 힘쓰고, 시서(詩書)와 인의의 도리를 배웠으니, 다만 규중의 법도만 알고 있을 뿐 어찌 바깥세상의 돌아가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서방님께서 우연히 붉은 살구꽃이 핀 담장 안을 엿보신 후 저는 스스로 서방님께 몸을 의탁하였고, 꽃 앞에서 한 번 웃자 평생의 인연을 맺었으며, 휘장 안에서 다시 만났을 땐 그 사랑이 백 년을 넘쳐흘렀습니다. 아아, 이렇게 말씀드리려니 슬픔과 부끄러움을 견딜 수가 없군요. 장차 고향집에서 만나 백년을 해로할 생각이었지만, 어찌 그 뜻이 꺾여 도랑으로 곤두박질할 줄 알았겠습니까. 끝까지 이리 같은 놈들에게 몸을 더럽히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진창 속에서 육신이 찢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타고난 천성 때문이지만 인정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궁벽한 산골에서 서방님과 한 번 이별한 것이 한이 되어 짝 잃은 외기러기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집안이 망하고 가족들이 죽었으니 피곤한 혼백은 의지할 곳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의리는 중하고 목숨은 가벼운 법, 쇠잔한 몸뚱어리로 치욕을 모면한 것은 다행이오나 조각조각 난 소첩의 마음을 누가 가련히 여겨 주겠습니까. 다만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입니다. 뼛가루는 황야에 널려지고 간담은 땅에 버려졌으니, 생각해보니 옛날의 즐거움은 오늘의 슬픔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이제 깊은 골짜기에 바람이 불어와, 소첩도 청녀와 같이 다시 밝은 세상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방님과 소첩은 봉래일기지약(蓬萊一紀之約)으로 맺어진 몸, 취굴(聚窟)에 약속한 삼생(三生)의 향기는 존엄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한을 오늘에야 풀어 전날 맹세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만일 소첩을 잊지 않으셨다면 끝까지 즐거움을 누릴까 합니다. 서방님께서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 서생은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는 감동하여 말하기를,
“내 소원과도 같소.”
하고는 함께 즐거운 심정을 나누었다. 이야기가 도적들에게 노략질당한 가산에 이르자 여인이 말하기를,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산 어떤 골짜기에 묻어두었습니다.”
“우리 두 집의 부모님들의 유골은 어디에 있소?”
여인이 대답하기를,
“어느 곳에 버려져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잠자리를 함께하니 그 극진한 즐거움은 옛날과 다름이 없었다.
다음날 여인은 서생과 함께 옛날 살던 곳을 찾아가니, 과연 몇 덩이의 금과 은, 그리고 약간의 재물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양가 부모들의 유골도 수습할 수 있었다. 금과 재물을 팔아 오관산(五冠山) 기슭에 각각 합장해 드리고 나무를 심고 제사를 올려 모든 장례의 예를 갖출 수 있었다.
그후 이 서생은 관직을 구하려 하지 않고 최씨 여인과 더불어 함께 살았다. 뿔뿔이 도망갔던 노복들도 다시 돌아왔다. 이 서생은 이후 세속의 일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며 비록 친척과 손님들이 찾아와도 문을 닫고 나가지 않은 채, 언제나 최씨 여인과 더불어 때로는 술잔을 나누고 때로는 시구를 주고받으며 금슬 좋게 살았다.
어느덧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저녁 여인이 이 서생에게 말하였다.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세상일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즐거움을 다하기도 전인데 슬픈 이별이 닥쳤습니다.”
그리고 슬피 우는 것이었다. 이 서생은 놀라며 물었다.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여인이 대답하기를,
“저승의 율법은 피할 수 없습니다. 천제(天帝)께서 첩으로 하여금 서방님을 모시게 한 까닭은, 연분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또한 지은 죄가 없는 탓입니다. 그래서 이 몸을 환생시켜 서방님의 근심을 잠시나마 덜어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 세상에 머물 수 없는 것은 혹시 멀쩡한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시녀에게 명하여 술상을 마련하게 하고 옥루춘(玉樓春)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부르며 서생에게 술을 권했다.
“도적들 밀려온 어지러운 싸움터,
꽃은 찢기도 원앙은 짝 잃었네.
흩어진 백골 누가 묻어줄까.
피투성이 떠도는 혼백 말할 곳 없구나.
고당(古堂) 누대 아래 무산선녀(巫山仙女) 될 수 없고
깨진 거울 다시 나뉘니 마음은 쓰라리네.
이제 이별하면 두 사람 모두 아득히 떨어져
저승과 이승 사이 소식조차 모르겠지.”
가락마다 몇 번씩이나 눈물을 삼키느라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 서생 또한 슬픔을 이길 수 없었다.
“차라리 부인과 함께 구천(九泉)으로 들어가겠소. 어찌 쓸쓸히 남은 인생을 살겠소. 지난번 난리를 겪고 난 후 친척과 노복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잃어버린 부모님의 유골이 들판에 널렸을 때에도 부인이 없었다면 누가 능히 수습하여 장례를 치를 수 있었겠소. 옛 성현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 생전에 예절로써 모시고 죽은 후에도 예절로써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하였소. 이런 일을 모두 부인께서 다하셨으니, 이것은 부인의 천성이 순효(純孝)하고 인정이 독후(篤厚)하기 때문이오. 나는 이미 감격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있소. 원하건대 사람의 세상에 오래 머물다가 백 년이 지난 후 함께 죽는 것이 어떻겠소?”
여인이 말하기를,
“서방님의 수명은 아직 남아 있지만 첩은 이미 귀신의 명부에 오른 몸이라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사람 세상에 미련을 둔다면 그것은 하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죄는 오직 제 한 몸뿐만 아니라 서방님에게까지 누가 미칠 것입니다. 단지 저의 유골이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면 비바람이나 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서방님 귀체를 보중하십시오.”
말을 마치자 점차 사라져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이 서생은 여인의 유골을 거두고 부모의 무덤 곁에 장사를 치러 주었다.
장사가 끝난 후 이 서생은 부인에 대한 지극한 애정 때문에 병을 얻어 몇 개월 만에 죽게 되니,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 슬퍼하고 탄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그 신의를 추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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