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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30, 포도원의 노래
이사야 1-5장은 서론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5장은 서로부분의 마무리 입니다.
1장은 이사야서 전체를 설명했으며, 2-4장은 이스라엘의 현재의 모습과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과의 차이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5장은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사회의 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5장은 두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1-7절, 포도원 비유
8-20절, 포도원 비유의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1-7절, 포도원 비유입니다.
이 포도원 비유는 나단이 다윗에게 밧세바 사건을 표현한 것과 비슷합니다(삼하 12:1-7).
이사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하여 청중들에게 스스로 판단하도록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의식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가장 유효한 가르침의 방식입니다.
즉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제3자의 이야기를 꾸며서 문제를 제기하면 양심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자들은 대개 납득을 하고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 시인합니다.
이 비유는 이사야가 그의 “사랑하는 자”(하나님)을 위하여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대한 노래입니다.
이 구절은 가장 뛰어난 예언 문학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1)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농부는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그는 매우 기름진 산에 터를 구했습니다.
농부는 그 땅을 파고 돌을 제거하며 옥토를 준비했습니다.
(2)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농부는 옥토에 가장 좋은 포도나무 종자를 구해다 심었습니다.
포도원에 원두막을 세우고 거기서 거하며 가꾸고 보호하였습니다.
농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행하였기에 그는 좋은 포도를 기대하며 포도원에 술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농부의 정성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매우 실망적이었습니다.
좋은 포도를 기대했는데 포도나무들은 “들 포도”만을 생산했습니다.
“들 포도”는 어떤 것인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소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들포도는 나쁜 포도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농부의 모든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3)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누가 보아도 농부의 진노가 정당합니다.
나단이 다윗의 마음을 동요 시켰듯이 이사야가 유다 사람들을 동요 시키고 있습니다.
“포도원과 농부 사이를 따져보라”
즉 농부가 기대한 것이 너무 과한 것이었는가?
농부의 실망이 결정적인 수사학적 질문으로 표현됩니다.
“내가 더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
당연하게도 대답은 “아무 것도 없다”입니다.
(5)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결론이 내립니다. 보호하는 모든 것을 거두리라.
농부는 단순히 이 포도원을 버리는데 그치지 않고 일부러 파괴를 돕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라는 테두리가 마치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심판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먼저 교회를 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울타리를 걷는다는 것은 담 위에 자라는 가시덩굴을 거둔다는 의미입니다.
담을 헐러 깃밟히게 합니다.
앞으로 유다에게 임할 심판이 곧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농부이고 유다가 그의 포도원이라면 담이 헐린 후 포도원을 먹고 짓밟는 들짐승들은 누구인가?
(6)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포도원 버리기입니다. 이것은 저주가 곁들어진 버림받음입니다.
이제 농부가 결정합니다.
황무지로 만들리라
가지 자름이 없으리라. 즉 농부의 보살핌이 없게 될 것을 말합니다.
나무 사이의 밭갈이를 하지 않으리라
결과는 질려와 형극이 날 것입니다.
저주합니다. 비가 내리지 말라 하리라.
(7)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등장인물을 소개합니다.
농부는 여호와 하나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들입니다.
기대했던 좋은 포도는 정의와 공의입니다.
맺힌 들 포도는 포악과 부르짖음(착취당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입니다.
이 비유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참 종교를 잘 설명해 줍니다.
참 종교는 인류역사에 심어진 하나님의 문화입니다.
8-25절, 포도원 비유의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구체적으로 5가지로 설명합니다.
이 죄들은 모두 “화 있을 진저”(8,11,18,20-22절)로 시작합니다.
이 단어는 경고와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탄식은 이사야서 28-31장, 하박국 2장, 아모스 5-6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탄식입니다.
그리고 이 “화 있을 진저’에 응답하여 3개의 구절을 “그러므로”라는 말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13-14, 24절).
첫 번째 죄, 탐욕스런 백성들(8-10절).
두 번째 죄, 방탕한 백성들(11-12절).
심판, 다가오는 포로생활(13-17절)
세 번째 죄, 불신앙적인 백성들(18-19절).
네 번째 죄, 진리를 왜곡시키는 백성들(20-21절).
다섯 번째 죄, 공의를 변질시키는 백성들(22-23절).
심판, 망가지는 포도원(24-25절).
첫 번째 죄, 욕심(8-10절).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부유층)에 대한 경고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희면이 되면 압류되었던 땅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8)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이 구절은 부를 축적하고 즐기는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다른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부자들에 대한 심판을 퍼붓고 있습니다.
죄는 일반적으로 재산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희년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9)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욕심은 항상 사람을 비참하게 몰락시킵니다.
욕심을 부려 건축하고 남으로부터 빼앗았던 허다한 가옥들은 황폐하게 됩니다.
아무도 이 크고 아름다운 집에 거할 자가 없게 된 것입니다.
전쟁에 대한 예고입니다.
열흘 갈이 포도원(소 2마리가 열흘을 갈아야 하는 아주 커다란 땅)에서 겨우 한 바트(약 30리터)의 포도주가 생산됩니다.
한 호멜지기(약 21-리터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땅이 한 에바(27리터)를 생산합니다.
즉 도저히 계산이 맞지 않는 상황입니다.
두 번째 죄, 방탕(11-12절).
(11)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계속하여 부유층에게 경고합니다.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겨도 표가 나지 않는 부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루종일 포도주를 마시고 술자리에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음악 도구)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은 영적인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이런 쾌락만 추구하다보면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심판, 다가오는 포로생활(13-17절)
이들이 부귀 용화를 추구해서 얻게 되는 결과가 무엇인가?
포로 생활입니다.
(13)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14)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15)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17)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
여기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땅 주인은 땅에서 쫓겨납니다.
그들의 교만함은 수치로 변합니다.
이유는 그들이 지식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시대 때부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특권과 영광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하나님을 알았다면 결코 착취와 부정이 정의와 공의를 대치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선지자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알지 못한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공평하신 분
거룩하신 분
의로우신 분
심판의 혹독함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양들이 곧 유다의 황폐해진 땅에서 풀을 먹습니다.
이 땅은 부자들의 땅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축적된 재산의 비참한 종말입니다.
이제부터 처음 두 죄 보다 더 심각한 죄들이 제시됩니다.
앞으로 언급되는 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음에서 시작되는 죄악들입니다.
세 번째 죄, 교만(18-19절).
(18)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19)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이들은 자신의 죄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자랑하고 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끌고 있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수확물을 시장으로 가져가는 대신 그들의 죄를 묶어 소달구지에 실어 시장으로 가져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너무 많아 달구지에 실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달구지 자체가 의문을 제기하는데, 그 이유는 거짓이 달구지와 소를 묶은 끈이기 때문입니다.
그 끈은 썩은 밧줄과 부정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그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선지자와 하나님을 조롱하며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속히 행하심으로 그들이 볼 수 있게 해보라고 말할 만큼 악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네 번째 죄, 왜곡(20-21절).
(20)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1)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의 방종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들은 좋은 것을 나쁘다고 말합니다. 악한 것을 선하다고 말합니다.
죄라는 것은 결코 의와 같이 공존하는데 만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가 만족할 수 있을 때는 정의와 공의가 완전히 무너졌을 때입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런 가르침이 누구에게서 시작되는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 스스로 슬기롭다고 하는 자로부터 비롯됩니다.
즉 왜곡은 인간의 지혜와 슬기의 한계입니다.
다섯 번째 죄, 부정(22-23절).
(22)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3)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이 다섯번째의 죄는 그동안 언급된 4가지 죄를 절정적으로 요약합니다.
투기, 방탕, 교만, 왜곡은 결국에 부정을 낳게 됩니다.
남을 보살피고 섬겨야 할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라
이런 자들이 제판관으로 정치인으로 존재하는 나라의 분위기는 어떠할까?
방탕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뇌물을 받게 됩니다.
심판, 망가지는 포도원(24-25절).
(24)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25)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그들 위에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에 분토 같이 되었도다 그럴지라도 그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
위와같이 포도원은 나쁜 포도를 내놓았으므로 하나님께서 나무의 생명력을 완전히 거둔 뒤 불에 태울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것입니다.
결과는 다가올 미래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손을 들어” 이들을 치십니다.
전쟁을 불러 오십니다.
“산이 진동하고 사람의 시체가 거의 한 가운데 버려진 쓰레기와 같다”
이러한 심판을 행하는 하나님의 감정이 25절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진노하셔서”
“주께서는 진노를 풀지 않으시고”
“심판을 계속 하시려고 여전히 손을 들고 계신다.”
심판의 도구는 외국군대(26-30절)입니다.
(26)또 그가 기치를 세우시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 보라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
분노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칠 외국 군대를 친히 부르십니다.
이 군대는 먼 곳, 땅 끝에서 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군대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심판이 곧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진군하는 침략군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27)그 중에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그들의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그들의 들메끈은 끊어지지 아니하며
군대의 군기가 설명됩니다. 그 누구도 지쳐있거나 비틀거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졸거나 잠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허리띠가 풀리거나 신발끈이 끊어진 사람이 없습니다.
즉 확실한 군기가 잡혀 있는 훌륭한 군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예군 중에서도 엘리트 들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28)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고 모든 활은 당겨졌으며 그들의 말굽은 부싯돌 같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 같을 것이며
군대의 무기가 설명됩니다. 화살촉이 예리합니다. 활시위는 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달리는 말발굽은 부싯돌과 같습니다.
병거 바퀴는 회로리바람과 같이 구릅니다.
역시 최고의 살인 무기들이 빈틈없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9)그들의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들의 소리지름은 어린 사자들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먹이를 움켜 가져가 버려도 건질 자가 없으리로다
군대의 사기입니다.
함성이 암사자의 포효와 같습니다.
고함이 새끼 사자의 으르렁 거림과 같습니다.
이럼 함성을 지르며 물건을 탈취하면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사기가 하늘에 닿는 모습입니다.
(30)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이 군대가 유다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성난 파도와 같은 소리로 달려듭니다.
그날에는 모든 것이 폐허가 되고 불에 탑니다.
빛마저 구름에 가려져 어두운 날이 될 것입니다.
전쟁의 결과로 온 땅이 불타게 되고 이 불에 의하여 발생하는 연기들이 하늘을 자욱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살벌한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군대는 여기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7:17에서 앗시리아군으로 밝혀집니다.
또한 이 부분은 이방군대까지 통치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고 있습니다.
13장 이후부터 이방의 심판이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에 제한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