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흔적, ‘주름’의 생성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마리나 수필의 우수성은 ‘파란’의 ‘흔적’이 어떤 ‘배치’ 속에 들어가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마리나에게 맞는 주름은 바로 ‘파란’이다. 주어진 삶의 조건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미시적인 배치의 변경이 아니라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는 배치까지 포함된 그녀의 아장스망은 자신을 새로운 배치 속으로 밀어넣는 적극적인 행위인 다양한 ‘마주침’ 속에서 새로운 흔적이나 주름을 생성시켜내고 있어 감동을 준다. 이마리나 수필의 가장 큰 강점은 파편화된 사람들의 정서를 치유해 줄 유일한 통로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녀에게는 ‘문학은 인생에 대한 질문’이라고 하는 나름의 문학관이 있다. 이를 통해 문학적 성취를 담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 수필집은 여타 수필집의 한계를 잘 극복하고 있어 보인다.
이마리나의 수필을 읽을 때마다 무릎을 타닥 칠 정도로 그 굽이치는 굴곡의 ‘파란’에 놀랐고, 독자라면 누구나 새로운 울림을 느낄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마리나의 흔적과 주름은 휴머니즘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각의 자동화로부터 대상을 해방시키고, 언어를 부리고, 이렇듯 변용의 기술로 사건이나 사태와 의미적 교합을 이루고 들뢰즈의 생성미학으로 격한 울림을 창출한다. 매 순간 가족들과 관계 맺으면서 새로운 접점을 일으키는 극적 변주는 작가의 내면 풍경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그녀의 올곧은 삶의 압축파일에는 진한 영혼이 서려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열정이 뿜어내는 거친 호흡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있어 삶의 진경을 찾아나서는 그녀를 뒤따라 나서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삶은 누구에게나 벅차고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학의 존재 당위를 더욱 뚜렷이 해야 한다는 각오가 문맥 곳곳에 담겨있는 듯해서 기쁘다. 무엇보다도 이마리나의 문학세계는 이 부조리한 현실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의 바탕 위에서, 괄호 안에 감금당한 즉자존재와 대타존재를 구체적으로 해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고 하겠다. 다양한 읽을거리가 웅숭깊은 인간미를 통과하면서 서늘한 울림을 자아내기에 한마디로 그녀의 글은 짓밟힌 토착정신의 원형을 고분 속에서 발굴하고, 되찾는 고된 작업의 결과물로 요약될 수 있겠다. 튼튼한 삶을 더 단단히 다지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인간화의 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영혼의 치유가 필요한 현대인의 필로우북이라 해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