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영 壑渚眠鴨(학저면압)
-산골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
하늘은 유인(幽人)에게 무엇을 부쳐줬나
산골에 귀 씻는 법 정성스레 봉함(封函)했지
현사(賢士) 몫 맑은 샘가에 늙은 오리 존다네
* 세이(洗耳); 더러운 말을 들으면 귀를 깨끗이 씻는다. 즉, 속세의 일을 알려고 하지 않다.
天付幽人計(천부유인계) 하늘이 유인에게 부쳐준 계책은
淸冷一澗泉(청랭일간청) 맑고 시원한 산골짜기 샘물이라네
下流渾不管(하류혼부관) 아래로 흐르는 물 모두 자연 그대로라
分與鴨閒眠(부여압함면) 나눠 받은 물가에서 오리 한가히 조네
* 물은 무이도가에서 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려지듯,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위 성인으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통서(統緖)에 힘입어, 한 마리 오리가 ‘타고난 대로 조는’ 도취경이 묘사되었다. 자연과 '도'와의 혼연일체로 이렇게 태평한 세상이다.
* 학저(壑渚): 산골짜기 물가.
* 유인(幽人): 어지러운 속세를 피하여 깊숙한 곳에 숨어사는 사람.
제34영 激湍菖蒲(격단창포)
-세차게 흐르는 여울 물가의 창포
여울은 세차거다 아홉 향 지닌 창포
날리는 초록 방울 얼굴에 뿜어대도
한 잎 꽃 흡족하다오 염량세태 씻음에
聞說溪傍草(문설계방초) 듣자니 여울 물가의 창포
能含九節香(능함구절향) 아홉 마디마다 향기를 지녔다네
飛湍日噴薄(비단일분박) 날리는 여울 물 날로 뿜어대니
一色貫炎凉(일색관염량) 이 한가지로 염량을 꿰뚫는다오
* 선경이야 아홉 가지 향기가 그득하고, 더위와 추위의 구별이 없을 것이다. 권세에 아첨하였다 해도, 세력이 꺾이면 푸대접 받는 것이 세속의 일이다. 세속에서 소쇄원을 일러 이렇게 기린다는 뜻이 은연중 담겨져 있다.
* 격단(激湍): 몹시 세차게 흐르는 여울.
* 염량(炎凉): 더위와 서늘함을 뜻하여 세력의 성함과 쇠함을 비유.
제35영 斜簷四季(사첨사계)
-빗긴 처마 곁에 핀 사계화
꽃 중의 으뜸이라 사계가 온화한데
초가집 낡았구려 비스듬히 기운 처마
장미가 배꼽을 쥐니 매죽(梅竹)조차 떨떠름
定自花中聖(정자화중성) 정작 꽃 중의 으뜸으로 치는 사계화
淸和備四時(청화비사시) 사시로 청화함을 갖추어서인가
茅塹斜更好(모참사갱호) 초가지붕 비스듬해 더욱 운치 있어라
梅竹是相知(매죽시상지) 매화와 대나무도 곧 알아준다네
* 사계라는 꽃을 찬미한 시다. 매화, 대나무와 맞먹는 좋은 꽃으로 칭송했다. 강희안의 ‘화목구품’에 의하면, 일품에는 송, 죽, 연, 국, 매이고 '사계'는 3품에 속한다. 이 꽃을 매죽의 위계(位階)로 부추긴 노래다. 장미의 이칭으로 3, 6, 9, 12월에 개화하여 이름을 얻었다. 비해당사십팔영 중 제 28영 사계화 참조.
* 사첨(斜簷): 비스듬히 빗겨 보이는 초가지붕의 처마.
* 사계(四季): 사계화를 말함. 월계화(月季花), 장춘화(長春花).
제36영 桃塢春曉(도오춘효)
-복숭아 언덕에서 맞는 봄 새벽
복사꽃 만발하고 언덕 위 새벽안개
바윗골 동네 안은 선녀 옷 어슴푸레
돌다리 사뿐 건너니 무릉계곡 예더라
春入桃花塢(춘입도화오) 복숭아 언덕에 봄철이 찾아드니
繁紅曉霧低(번홍효무저) 만발한 꽃들 새벽안개에 드리워 있네
依徵巖洞裏(의징암동리) 바윗골 동리 안이라 어렴풋하여
如涉武陵溪(여섭무릉계) 무릉계곡을 건너는 듯하구나
* 안개는 '도'에 이르는 아득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이구곡'에 표현되어 있다. 여기 무릉은 도학의 경지이지, 선교의 도원이 아니다. 무이도가의 아홉 번째에서 말한 '별유천지'일 뿐이다.
* 도오(桃塢): 도화오(桃花塢)를 말함. 복사꽃 핀 언덕.
제37영 桐臺夏陰(동대하음)
-오동나무 언덕에 드리운 여름 그늘
해묵은 오동줄기 벼랑에 이어지고
비 이슬 혜택이라 늘 맑게 그늘지니
세월은 참 태평하고 여름바람 시원타
巖崖承老幹(암애승로간) 묵은 오동줄기 바위 벼랑까지 이어 있어
雨露長淸陰(우로장청음) 우로의 혜택이라 항시 맑게 그늘지네
舜日明千古(순일명천고) 순임금의 은혜 길이길이 밝혀져서
南風吟至今(남풍음지금) 온화한 남풍 지금까지 불어주네
* 제4단락의 첫 시다. 제1단락에서 '도'에 나아가는 실상을 노래했다면, 이 단락에서는 무젖은 도취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이 무르익은 선경은 요순시대를 말하는 이상세계다. 위로는 임금님의 은덕이요, 순일과 남풍은 '도'가 실천되던 시대를 말하고 있다.
* 순일(舜日): 중국 순임금이 나라 다스리던 태평한 때.
* 남풍(南風):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으로, 임금의 덕이나 은혜를 비유.
제38영 梧陰瀉瀑(오음사폭)
-오동나무 녹음 아래 쏟아지는 폭포
하 짙은 오동 그늘 시냇가 비 내렸네
난무한 폭포 사이 성긴 가지 비치고
흰 봉황 춤사위 벌려 주인 넋을 뺏누나
扶疎綠葉陰(부소녹엽음) 무성한 나뭇가지 녹엽의 그늘인데
昨夜溪邊雨(작야계변우) 어젯밤 시냇가엔 비가 내렸네
亂瀑瀉枝間(란폭사지간) 난무하는 폭포 가지 사이로 쏟아지니
還疑白鳳舞(환의백봉무) 돌아보건대 봉황새 춤추는 게 아닌가
* 무이도가의 일곱 번째에서 ‘온고지신’ 하는 전통의 맥락을 그린 것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는 학도의 전통을 상징한다. 오동나무를 심는 뜻은 봉황을 기다림이다. 그 사이로 보이는 폭포를 ‘봉황의 춤’으로 비유해 노래하고 있다.
* 사폭(瀉瀑): 쏟아지는 폭포.
* 부소(扶疎):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무성하게 뻗어가는 모양.
제39영 柳汀迎客(류정영객)
-버드나무 물가에서의 손님맞이
나그네 문 두드려 몇 마디에 낮잠 깨
의관을 정제(整齊)하다 미처 인사 못했는데
버들에 말을 매놓고 물가에서 서성대
有客來敲竹(유객래고죽) 나그네 찾아와서 사립문 두드리매
數聲驚晝眠(수성경화면) 몇 마디 소리로 낮잠을 깨었네
扶冠謝不及(부관사부급) 관을 쓰고 미처 인사드리지 못했는데
繫馬立汀邊(계마립정변) 말 매놓고 버드나무 물가에 서 있네
* 버드나무를 심고 거기서 손님을 맞이한다. 벼슬은 양산보와는 무관한 것, 찾아오는 이도 세속의 문제를 안고 오는 이가 아니다. 남도 부러워하는 승지에서 '도'와 더불어 사는 양산보를 기린 시다.
* 고죽(敲竹): 고죽비(敲竹扉). 고문(叩門)으로, 집 앞에 이르러 대 사립문을 두드림.
제40영 隔澗芙蕖(격간부거)
-골짜기 건너편 연꽃
조촐히 서있는 연(蓮) 한가해 볼만 하고
향기는 골짝 건너 은근히 풍겨오니
내친 김 방안에 들여 서안(書案) 위에 놓으리
* 서안(書案); 책을 펴 보거나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서실용 평좌식 책상. 사랑방에서 주인과 마주앉는 사람 사이에 놓여, 주인이나 윗사람으로서의 위치를 지켜주는 구실을 한다. 서상(書狀)·서탁(書卓)·궤안(几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연에 대한 찬사는 무수하나, 필자는 그 중 ‘처염상정(處染常淨)’을 가장 좋아한다. “더러운 물에 염색되지 않아 언제나 깨끗한 모습”이다.(필자 주)
淨植非凡卉(정식비범훼) 조촐하게 섰는 게 훌륭한 화훼(花卉)로다
閒姿可遠觀(한자가원관) 한가로운 모습 멀리서 볼 만하고
香風橫度壑(향풍횡도학) 향긋한 기운 골짝을 건너와 풍기네
入室勝芝蘭(입실승지란) 방안에 들이니 지란보다 더 좋구나
* 주무숙이 애련설에서 '진흙구덩이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사롭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비의 바른 모습이다. 양산보를 꽃에 비유하였다.
* 부거(芙蕖): 부용(芙蓉). 연꽃을 달리 이르는 말.
첫댓글 산골의 비경이 눈에 비치네요.
사진이라도 한 장 잘 찍어서
벽에 걸어두고서 감상하고 싶답니다. 감사합니다.
네! 현장에 소쇄원에 대한 좋은 그림이 있을 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