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강해]
오네시모로 본 회개의 열매 (몬 1:8-14)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이 시간은 “오네시모로 본 변화”라는 제목입니다. 회개하여 예수 믿고 성령 받아 새 사람이 된 것을 변화라고 합니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뀌면, 성품이 바뀌고 성품을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생각이 그토록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란 헬라어로 ‘메타노이아’입니다. ‘메타노이아’에서 ‘메타’는 ‘다르다’라는 뜻이고, ‘노이아’는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원문대로는 ‘생각이 다르다’라는 뜻입니다. 원문으로만 본다면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이론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삶의 습관과 중심과 운명까지 바뀌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3:7-9에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외쳤습니다.
본문의 오네시모가 그런 사람입니다. 소아시아 골로새에 빌레몬이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 주변에는 6천만 명가량의 노예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가지고 로마로 달아났습니다. 그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하여 다시 체포되었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한 것은 그 감옥에서 바울을 만났고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는 전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변하고 그의 행동이 변하고 그의 삶이 변하고 그의 영혼까지 변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넓고도 좁았습니다. 알고보니 오네시모는 바울의 동역자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너그럽게 받아달라고 친필로 편지를 쓴 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변화를 봅니다.
회개하면 어떻게 변할까요?
1. 유익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11절에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바울에게도 유익할 뿐 아니라 주인 빌레몬에게도 유익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라는 뜻도 ‘유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오네시모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선교사 부인이 남편의 책상을 정리하다가 낯익은 포켓용 성경책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성경은 자기가 미혼 때 갖고 있었던 성경이었습니다. 영문을 캐물으니 선교사는 놀라면서 "사실은 나는 도둑이었소. 7년 전 밤 어떤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쳐 집에 와서 정리하던 중 이 성경책을 펼쳐 들었는데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선한 일을 하라”(엡4:28)는 말씀에 충격을 받고 회개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답니다. 이실직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회개란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회개란 무엇이냐? 그것은 동쪽이 서쪽이 되고, 남쪽이 북쪽이 되고 북쪽이 남쪽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놀랍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도망자가 귀가자로 바뀝니다.
12절에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종노릇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위하여 피해까지 주면서 도망간 오네시모를 회개시켜서 다시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시 노예에 대한 법이 엄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노예를 영혼이 없는 동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살아있는 도구, 두 발 가진 편리한 동물이라고 여겼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사유재산이기에 마음대로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도망간 노예가 잡히면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사지를 잘라서 죽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운이 좋은 노예는 라틴어 Fugitivus(fjúːdʒətiv, 퓌~졑) 즉 도망자라는 머릿글자인 F자를 이마에 찍어 일생 핍박당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오네시모는 그럴지라도 회개하고 자기 주인에게로 돌아가 다시 섬기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보통 결심이 아닌 생명을 건 결단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돌아가야 원칙이고,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하여야 원칙입니다. 그러나 빌레몬은 오네시모에게 분을 품고 있었고,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응어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빌레몬에게 마냥 용서하라고 강요할 수 없고, 오네시모에게도 돌아가라고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중간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3. 배반자가 심복으로 변화됩니다.
11절에 “저는 나와 네게 유익하다.” 12절에 “저는 내 심복이라.” 13절에 “저를 내게 머물러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등의 말씀과 같이 복음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동역자를 넘고, 심부름꾼을 넘고, 심복이 되었습니다.
심복은 원어로 ‘스플랑크나’인데 이는 내장이나 간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장이 없다면 살 수가 없습니다. 간장이 없다면 당장 죽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오네시모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는 지 모를 정도입니다.
전해오는 전승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에베소의 감독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순교 당하기 위하여 시리아로 호송되고 있었을 때 에베소의 감독 오네시모에게 감사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바울의 편지로 인하여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드렸을 것으로 믿습니다. 빌레몬의 뜻은 ‘사랑을 간직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이였기에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네시모를 받았을 뿐 아니라 노예에서 해방시켰을 것으로 봅니다.
이처럼 회개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3:8에 세례요한은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고 하면서,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 (세리들에게는)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 (군인들에게는)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눅3:10-14)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9-10절에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했습니다. 갇힌 중에서 낳았습니다. 당시 감옥의 환경이란 인간이 살 수 없는 토굴입니다. 그 상황만 가지고도 견딜 수 없는 고난입니다. 그 고난 속에서 오네시모는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회심자들 가운데 또 다시 옛날의 습관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난의 환경과 말씀과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깊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불멸의 히트곡을 지은 죤 뉴톤 목사는 방탕하다가 부친의 권유로 해군에 입대했으나 견디지 못하고 탈영한 후 잡혀서 노예선에 팔려가다가 극적으로 노예장사까지 하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지만 대서양에서 광풍을 만나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뉴턴은 자신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한 때 이교도였으며 탕자였고 아프리카 노예상이었던 존 뉴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긍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크게 변화되어 마침내 성직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부인했던 바로 그 믿음을 전파하며 버킹검에서 16년간을, 올니교회에서 27년간을 봉사하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회개하여 예수 믿고 변화 받는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말씀과 기도의 사람 바울을 가까이 하여 변화 받았듯 말씀과 성령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그것밖에는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기도를 생명으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오네시모처럼 진실한 섬김의 자리를 자청할 수 있는 참된 변화를 경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