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헤밍웨이는 1953년에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 상(Pulitzer Prize for Fiction)을 받고,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을 받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 지루해서 몸이 배배꼬인다는 사람도 있다. 이 소설은 소설인데 스토리가 없다. 그냥 망망대해에서 청새치 잡는 이야기만 하다가 끝난다. 영화엔 여자도 한 명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노인과 바다'를 안소니퀸과 스페서트레시가 주연한 두 편 다 보았다. 헤밍웨이의 바다는 인생을 의미한다. 바다를 인생이라고 설정해놓고 보면 영화가 이해된다. 마침 두 사람 다 천재 배우라서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었다.
영화는 이렇게 진행된다. 샌디에고라 부르는 노인은 멕시코 만에 조각배를 띄우고 혼자 고기 잡으며 살았다. 그런데 84일 동안이나 고기 한 마리 못 잡자, 소년의 부모는 노인을 무시하고 소년을 다른 배에 태운다. 어부들은 노인이 84일동안 고기 한 마리 잡지 못 하자 노인을 놀려댄다. 이 첫장면이 암시적이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늙고 가난해지면, 주변 사람들은 우릴 무시한다.
그 다음 장면은 가난한 사람도 친구가 있어 의지하고 사는 따뜻한 모습 보여준다. 노인과 소년은 친구다. 소년은 늘 노인을 마중 나가서 노인의 낚시줄, 갈퀴, 작살, 돛 등을 챙기는 일을 도와준다. 둘은 야구를 좋아한다. 둘은 양키즈의 디마조를 좋아한다. 소년이 간 후 노인은 잠 들었다가 아프리카 사자 꿈을 꾼다. 헤밍웨이는 격동적인 삶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야구나 사자 모티브는 작가 자신 실제 경험에서 따온 것이다.
바다에 나간 지 85일째 되던 날, 노인은 운에 한 번 맡겨보기로 한다. 깊은 바다 앨프만에 도착한 그날 오후 그는 마침내 낚시에 큰 청새치를 걸게 된다.
그러나 노인은 청새치를 보트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청새치에 보트가 끌려간다. 정말 엄청나게 큰 고기다. 고기는 미끼를 입에 물고 날이 밝도록 계속 북을 향해 달려갔다. 끌려가는 도중에 노인은 갑자기 소년이 옆에 있어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마침 배 위로 날아온 새가 있었다. 노인은 사람과 이야기 하듯 새와 이야기 한다. 그러다 노인의 유일한 벗인 새는 날아가버렸다. 세상은 고독한 것이다. 망망하기는 대해와 인생이 비슷하다. 노인의 고독한 모습이 부각된다.
고기가 워낙 커서 노인은 하룻 밤 하루 낮을 끌려 다녔지만 고기는 멈출 기세가 아니었고 노인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두 번째 밤이 밝을 무렵 마침내 고기를 끌어 올려 배에 붙들어 맸다. 노인은 청새치를 보트에 매달자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팔 걸 생각하며 흐믓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바다는 인생이 그렇듯 항상 위험하다. 얼마 후에 청상아리의 습격을 받는다. 상어는 사정없이 고기를 뜯어 먹는다. 노인은 노 끝에 칼을 매어 상어와 싸운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혼자 중얼거린다. '사람은 죽음을 당하지만 지지는 않는다'는게 헤밍웨이의 철학이다. 그 철학이 헤밍웨이로 하여금 1차대전후 소위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우상이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물고기의 상처에서 흘러나간 피냄새를 맡고 달려든 상어들 여러차례 습격으로 물고기는 너덜너덜해졌다. 밤에 청새치를 뼈만 남기고 다 먹어치워버렸다. 가지고 있던 작살과 밧줄, 칼까지 상어에게 몽땅 다 빼앗겼다. 항구에 돌아왔을 때는 물고기는 뼈만 앙상히 남은 빈털털이였다.
이 장면은 그냥 상어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인생에서 죽을 고생하고 뭔가 이루어도 그걸 너덜너덜 해지도록 뜯어먹는 악질분자가 있기 마련이다. 고기를 시장에 가져가 높은 가격에 팔 꿈은 매번 허사가 되기 마련이다.
그가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집집마다 불빛이 다 꺼진 캄캄한 밤이다. 무거운 돛대를 어깨에 메고 혼자 자신의 판잣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든다. 아침에 소년이 올 때까지 노인은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항구에서 노인이 잡아 온 고기의 뼈를 구경하고 있었다. 다들 고기의 크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식당 주변에 있던 여행객들은 그 뼈를 상어의 뼈라고 주장한다. 이 장면도 의미 깊다. 망망대해에서 홀로 치른 사흘간 사투가 무슨 의미 있는가. 사람들 착각의 대상이다. 작가들이 목슴 걸고 만든 작품도 대개 엉뚱한 평가를 받는다.
마지막 장면이 눈시울 뜨겁게 한다. 아침에 찾아온 소년은 사흘만에 집으로 돌아온 노인이 지쳐서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울기 시작한다. 소년은 노인이 염려되어 날마다 이 통나무집을 찾았을 것이다. 따끈한 커피를 가져와 곤히 자고 있는 노인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건넨다.
노인이 일어나자 커피를 내민다. 다음부터는 노인과 절대 떨어지지 않고 함께 배를 탈 것을 약속한다. 작살도 칼도 다 잃은 노인에게 소년은 자기가 다시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노인의 손에 바를 약과 음식과 신문, 깨끗한 셔츠를 가지러 내려가며 소년은 하염없이 운다. 노인은 다시 잠이 들었고 꿈결에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