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그릇 예찬
나는 하얀 식탁보 위에 옥바리 놋식기로 상차림을 한다. 밥그릇과 국그릇,
수저와 수저받침, 접시와 쟁반, 조치기, 보시기, 종지, 물컵과 주전자….
은은한 금빛으로 번쩍이는 식기들.
‘질리도록 닦기 힘들고 무거운 식기’라는 이 사무친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육순을 넘긴 나이에 또 관절염으로 고생하면서도 도자기 식기를 놋식기로
깡그리 바꾸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특이한 형태의 놋주발을 보고 홀라당
반했기 때문이다. 그릇 전체가 항아리처럼 동그스름하고 뚜껑에는 콩알만한
꼭지가 달려 있으며, 밑 부분에는 굽이 붙어 있는 그릇이었다. 몸매에서는
단아함이, 꼭지에서 앙증맞음이, 굽에서는 품격이 느껴지는 옥바리라는 형태의
그릇이다.
그 때부터 명품 핸드백, 화장품, 옷에는 탐심이 솟구치지 않아도 놋그릇은
내 눈앞에서 늘 어른거렸다. 골동품 가게, 인터넷 경매 사이트, 방짜그릇 판매소,
민속품 경매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옛 것도, 현대 것도, 중고도, 새 것도 구입하였다.
신들린 사람마냥 소유욕에 겨워 사들이고 난 다음에 주어진 괴로움은 무엇이었던가?
세월의 때를 벗겨야 했다. 세월의 때를 벗겨내는 고통과 고충을 어디에다 비하랴!
중고나 옛 것의 묵은 때가 있는 놋그릇의 경우에는 하나의 그릇을 들고
30분 내지 1시간 이상을 씨름한다. 녹색 스카치 수세미로 한 군데를 힘주어 오래도록
문질러대어야 겨우 은은한 속살이 보이기 시작한다. 왼팔, 오른팔 바꾸어 가며 앙가슴에
땀이 배이고 이마에 땀방울이 솟구칠 즈음이면 그릇은 은빛 미소를 보여주고
나는 금빛 미소로 화답한다. 그릇의 안팎, 상하, 좌우, 문지르기를 수백 번 하고나서야
드디어 은은한 광채를 발하니 그때의 그 황금빛 환희심이란 !
다행한 것은 괴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식기에 밥을 담아 먹으면서,
식기를 닦으면서, 타임머신(time machine)을 타고 과거로 여행하는 즐거움이다.
이 식기들이 존재했던 옛 시대를 만나고, 이 식기들을 사용했던 옛 선인들을 만나고,
이 식기들을 만들어내었던 옛 장인들을 만나서 알콩달콩 대화도 나누는 것이다.
놋그릇, 천 년 전부터 존재해 온 웰빙그릇이다. 생긴 모양도 미려하거니와 식중독균을
없애주고, 독성에 반응하며, 보온 보냉 효과가 탁월하며, 미네랄을 내포하기에 생명의
그릇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단연 한국 식기를 대표하는 식기지왕(食器之王)이
되지 않겠는가?
유리 식기는 맑으나 언제 다칠지 모르는 어린이 같으며, 알루미늄 식기는 소탈하나
소인배 같고, 스테인리스 식기는 믿음직하나 감정 없는 냉혈한 같다. 도자기 식기는
화려하나 위태로운 처녀 같고, 옥돌 식기는 귀티가 나지만 사치스런 귀부인 같다.
그것들에 비해 놋식기는 버겁고 무거우나 사랑방 대감마님이다.
잘났기에 예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에게서 세상 사는 법도 배운다. 튼실한 멋을
지녔기에 가볍게 부서지거나 무너지는 세류(世流)에 아랑곳 않는 의사(義士)의 모습이다.
과묵한 멋을 지녔기에 세사(世事)에 말 많아도 초연한 도인(道人)의 모습이다.
중후한 멋을 지녔기에 철새 같은 세태(世態)에도 지조를 지키는 선비의 모습이다.
은은한 광택의 멋을 지녔기에 튀는 색깔이 만연한 세습(世習)에
자신의 고유한 빛을 지키는 지사(志士)의 모습이다.
식탁 곁에 앉았다. 개수대 선반에 놓여 있는 놋그릇들을 바라본다.
조선시대 어느 양반댁이나 여염집 밥상 위에 놓여 있었을 저 그릇들,
근대 어느 가정집에서 사용했을 저 그릇들, 인연 따라 돌고돌아서 현대에 이르러
어느 얼빠진 주부가 곁에 두고 지극히 사랑하여 쓰다듬고,
즐길 줄은 저 놋그릇들도, 나 또한 몰랐었던 일이 아닌가?
나의 식기지락(食器至樂)은 장락무극(長樂無極)으로 펼쳐지고 있다.
오늘도 놋식기로 밥을 먹고, 놋식기를 닦아 내고, 마음을 닦아 낸다.
팔힘이 다하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식탁에서 놋그릇을 내리게 되리라.
=김경남(수필가.문학평론가) 土壁(토벽)2012.제9호 중에서=
사랑하는 약산님들!!
조용한 목요일 오후네요.~~
하얀 눈이 그립긴 하지만 출퇴근이 자유로운 이점도 있군요.~~
오늘 하루 마무리 잘하시길!!~~~
첫댓글
"감기 조심하세요--판피린 에프"
유 열씨와 같은해 MBC 대학가요제 출신인 이정석씨가 7080에 얼마전에 나와서
그의 대표곡인 이 곡을 불렀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파란 바탕에 블랙 폴커닷의 양산(우산)을 쓰시고 계신 봄향기님이 무척 추워보이십니다. ㅎㅎㅎ
감기 조심하세요.
저도 기제사나 명절제사에 앞서 놋그릇을 부지런히 닦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멋진 목욜 저녁되세요.
그동네는 첫눈 맞으셨나요..친구는 잘있나요..안부 좀 전해주세요
넵, 선생님!!
얼마전 친정엄마가 주신 스텐 밥그릇 국그릇기등 받아 왔지요
무겁긴 해도 우리 어릴때 양식의 그릇이 되어 주었던 고마운 그릇..
어제 밤에 아쉽긴 했지만 첫 눈을 조금 볼 수 있었지요감질 날 만큼
어제 매스컴을 타셨던데 어제 밤 내린 눈이 선생님께는 서설(瑞雪)이 되었군요.^^
축하에 축하를 드립니다.
쥐구멍 찾고 싶습니다 갑자기 하게 되거라
저는 감동먹었습니다. 최고 최고!!
어제 뭔일이 못봐 아십당울 미경씨 무조건
쌤!! 혹시, 놋그릇 예찬 바로 앞글 자유게시판 871번 못 보셨나유?^^ 헤헤
이미지클릭해봐도 기사내용 안뜨고 엑스만 표시되네요..사진은 있는데..ㅜ
나는 잘 보고 들었는데,...말씀도 잘 하시고,..생각도 확실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