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뉴스 299/1113]역사를 수집하는 컬렉터들
취미趣味가 특기特技가 되고, 이로 인해 ‘돈벌이make money’까지 되는 일이 있다면 이보더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이런 일은 대개 ‘정년停年’도 없기 마련이다. 내가 친히 아는 선배가 그런 분인데, 직업職業이 컬렉터collector(수집가蒐集家)이다. 150여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모든 자료material’들을 모은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모든 자료'는 도서와 신문, 잡지, 개인의 편지 등 온갖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생활용품 등을 일컫는다. 우리도 청소년 시절 한두 번 우표나 성냥갑 등을 모아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생활 전반에 확대해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최근 사직동 근처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한국전쟁을 포함한 그 시절에 남북한에서 뿌린 삐라를 다 모아 펴낸 책을 보여주었다. 광주항쟁때 시민수습위원인 어느 법관의 법복法服도 구해놓았다는 것이 아닌가. 세월이 흐르면 이런 것들의 '가치價値'가 틀림없이 빛이 날 것이기 때문이란다. 대단한 일일 뿐아니라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이지 않겠는가.
그분의 사무실을 가면 지나간 세월의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고 하면 될 것같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일제강점기나 해방 즈음의 다방茶房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이런 컬렉터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방을 차리는데 필요한 커피 기계, 의자, 컵 등 온갖 집기什器를 다 수집해 놓은 이런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저것 보여주는데 너무 재밌어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안중근의사 관련해 당시 일본에서 나온 엽서나 러시아 신문에 실린 기사 한 줄의 역사적 의미도 대단하지 않겠는가? ‘극우반동’으로 치달리는 조선일보는 창간호(1920년 3월 5일자)가 보관돼 있지 않아 늘 애를 태웠는데, 그 창간호를 전국을 다 뒤져 찾아내, 부르는 게 값이었을텐데도, 공짜로 기증했다는 말도 들었다.
대부분 한두 번 보셨으리라. 일요일 11시, KBS1의 ‘TV 진품명품’에 출연하는 ‘근현대관련 감정위원鑑定委員’이 바로 그분이다. 다방면에 걸쳐 아는 게 엄청 많을 뿐아니라, 어느 자료나 물건이든 명쾌한 해설이 뒤따른다. 그런 후 경매가를 정하는 수집분야의 권위자. 얘기를 듣다보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이런 분이 계시기에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렸던 우리의 ‘역사퍼즐history puzzle’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미시사微視史가 때로는 거시사巨視史가 되어 한 시대의 역사가 복원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한 손기정 선수가 대회 종료 후 맨 처음 누군가에서 해준 사인 한 장이 주는 의미를 캐는 것이다<사진>. ‘기테이 손’이라 불리고 일본국가가 울려퍼지는 게 기가 막혀 ‘손긔졍 KOREAN’이라 쓴 빛바랜 사인을 보면 울컥 눈물까지 나려고 한다. 시상식 단상에서 꽃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고 고개 숙인 챔피언의 심정이 고스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던가. 나라를 잃으면 그만큼 슬프다.
아무튼, 얼마 전 상경길에 재밌는 책을 한 권 샀다<표지사진>.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박건호 지음, 291쪽, 휴머니스트 출판그룹 발간, 18000원)가 그것으로, 부제副題가 ‘평범한 물건에 담긴 한국근현대사’이다. 1969년생이니 수집가로서는 젊은 축인 저자는 30여년간 역사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대학 때부터 마니아mania를 넘어 ‘수집병蒐集病’에 걸린 덕분에 자신도 얼마나 수집을 했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역사 컬렉터’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수집 이야기를 통해 대중과 ‘역사 읽기의 즐거움’을 같이 나누고자 쓴 첫 번째 책이라 하여, 알고 지내는 선배님이 떠올라 냉큼 산 것이다.
역시 재밌어 사기를 참 잘 했다. 어제 하루 가을햇볕을 맞으며 통독을 했다. 거창하게 몇 십년만에 발견된 외교문서 등이 아니고, 보통사람들의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엽서나 편지, 일기, 사진, 수첩, 사직서 한 장 등으로 풀어내는 역사이야기가 어찌 흥미롭지 않겠는가.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이 펴낸 최초의 영어교재 『아학편』을 수집해 다산 정약용의 『아학편』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자유당때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기리는 온갖 행사를 바라보는 중학교 3학년생의 일기에서 ‘독재정치’의 실제를 엿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이순이 범국가적으로 벌인 이순신 장군과 김유신 장군 숭모사업의 허와 실을 사진 한 장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한국전쟁중 강원도에서 열린 육상경기대회 기념사진 한 장으로 전쟁 속에도 피어나는 민중의 삶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반탁운동을 벌이며 쓴 사직서, 북한포로가 된 경상도 17살 학생이 부모에게 쓴 편지 한 장으로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꿰맞출 수도 있다. 1946년 전국을 휩쓴 콜레라로 수천명이 죽어가는 가운데, 휴교를 하고 고향으로 가라는 학생 귀향명령서 한 장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정미의병때 사라진 통역관을 찾으라는 훈령서를 보면서 몇 년 전 방영된 <미스터 션사인>의 의병 사진(외국특파원이 찍은)도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자료들이야말로 우리의 굴곡 많은 근현대사를 끝내 몸으로 살아낸 민중들의 아픈 흔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록은 어떤 기록이 됐든 소중하다. 그 기록들이 소실되지 않고 보관되어 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그 모든 기록들을 찾아내려고 전국을 뒤집고 다니며 모으고 있는 컬렉터들의 ‘숨은 노력’이 있다. 집안에 있는 무엇이든 허투루 버리지 마시라. 그것이 또한 역사가 될 수도 있을지니. 무료한 시간에 읽기에는 딱 안성맞춤인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굳이 책을 살 필요는 없다. 가까운 도서관(요즘엔 흔해 빠진 게 여기저기 도서관이다. GNP 3만달러 국가가 실감나는 세상인데, 사람들이 이제 책을 구시대 유물처럼 읽지 않는 것이 문제다)에서 빌리면 된다. 책이 없으면 사달라고 신청하면 금세 사준다. 백년을 산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제가 장담하는데요. 우리나라가 GNP 5만달러가 돼도 선진국은 절대 못됩니다.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죠” 칠판에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영국과 독일, 일본의 독서률을 보여주며 하신 말씀이다. 너도나도 반성해야 할 일인저!
첫댓글 중고시절 한동안 우표를 모으려 남의 편지통을뒤져 침발라서 우표를 떼어내는 정성을 보이며 죽어라 수집해봤고. 담배 피우던 시절엔 다방에서 준 성냥갑을 제법 모았었지?
군대에서 받은 위문편지도 한 봇따리 모아서
제대할때 가져왔었고.사연깊은 연애편지도 잘 감춰두고 군대갔다오니 울엄마
불쏘시개로 잘 태웠단다ㆍ
어른이 돼서도 동전을 수집하다가 점차 모으는 양이 늘어나 무거워서 책상서랍이 부서지고
커다란 생수통에 동전을 모았더니 백만원 되드라 그 후 수년간 외국 동전만 모았는데 양이 많아 골치꺼리 큰손주 시원이가 어서 크기만 기다려 물려줘야겠다.
모으는게 취미가 아니라 몰두하는것 같다.카세트 테입 .CD을 천여개 모았었고 인생이 모으는게 아니라 나누며 살라했는데
아마도 되돌아보면 모았던 종류가 수십가지는 됐을것 같다.
지금도 지갑속을 채우려 모으고 살아가니
제대로된 인생을 살아가는지 신령님께 물어봐야겠다.
아마도 우포성님도 서랍을 뒤져보면 당구쵸크가 수십개 쌓였을껄 ㅋㅋ
대단한 사람들이 있게마련이지.
늘 인식하며 사는 것은 아닐지라도, 결국은 모두가 추이를 함께하며 조화롭게 흘러가는 세월일세.
서로 다른 자신의 몫이 있기에.
훌륭허네.
아침에 항상 꼬끼오 행복 벗님들의 글을 읽노라면 맘에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오, 해피! 오늘도 따르릉님이 여동생들 군대 위문편지로, 역사 컬렉터에 합을 맞추네그려. 우천이 책으로부터 받는 그 느낌과 행복은 내가 훈련하면 쫌이라도 닮아 가겠지. 느낌 깨달음 훈련 그 다음 자기 내공! 활터에 가서 활을 당겨보니 엄청 힘이 들어간다.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그 떨림가운데서 정적인 찰나 140메터 과녁에 백발백중, 우보야 얼마나 노력했겠냐, 따르릉님 역사는 문무를 다 섭렵한 것 같소이다.
5만불 선진국 코리아 발전을 위해 온몸과 맘을 바쳐보세!